보리도를 이룬 것을 따라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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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도를 이룬 것을 따라 배우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10.1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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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도를 구하는 자세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용맹정진‘제일’

중생들이 가장 큰 인생목표라 할 수 있는 성불에 이르는 길은 과연 가능할까를 물었을 때 보현행원품 수학분을 설하시는 광덕 스님은 두말 할 필요 없이 부처님을 따라하라고 하신다. 특히 부처님의 용맹정진을 따라하는 것이 필경 보리도를 이루는 길이라 강조하시는 것이다. /편집자 주

 

광덕 스님(1927~1999)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하였다. 암울한 민족의 격동기였던1950년대 범어사에서 당대의 대선지식인 동산 스님을 만나 참선을 시작, 위법망구의 구도정신으로 수행정진하였다. 1974년 9월 불광회를 창립하고, 같은 해 11월 월간“불광”창간, 불교의식문 한글화, 경전 번역, 찬불가 작시, 불광사 대중법회 등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인의 품으로 돌려주며 대중을 일깨웠다.

선남자여, 또한 항상 부처님을 따라 배운다고 하는 것은, 이 사바세계의 비로자나 여래께서 처음 발심하실 때부터 정진해 물러나지 아니하고 불가설불가설의 목과 목숨을 보시하시되, 가죽을 벗겨 종이로 뼈를 쪼개어 붓을 삼고 피를 뽑아 먹물을 삼아서 쓴 경전을 수미산 같이 쌓더라도 법을 존중히 여기는 고로 신명을 아끼지 아니하거든 어찌 하물며 왕위나 성읍이나 촌락이나 궁전이나 정원이나 산림이나 일체 소유나 가지가지 난행고행일 것이며, 내지 보리수하에서 대보리를 이루시던 일이나 가지가지 부처님 몸을 나투사 가지가지 중회에 처하시되, 혹은 모든 대보살 중회도량에 처하시고 혹은 성문과 벽지불 등 중회도량에 처하시고 혹은 전륜성왕 소왕 권속 등 중회도량에 처하시고 내지 천룡팔부와 인비인 등 중회도량에 처하시면서 이러한 가지가지 회중에서 원만하신 음성을 마치 큰 우레 소리와도 같게 하여 그들의 좋아함을 따라서 중생을 성숙시키시던 일이나 내지 열반에 드심을 나투시는 이와 같은 일체를 내가 다 따라서 배우기를 지금의 세존이신 비로자나불께와 같이 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하여 진법계 허공계 시방 삼세 일체 불찰의 모든 미진 중에 계시는 일체 부처님께서 또한 다 이와 같이 하여 염념 중에 내가 다 따라 배우느니라.

이와 같이 하여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해도 나의 이 따라 배움은 다함이 없이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일에 지치거나 싫어하는 생각이 없느니라.

 

보현행원의 여덟 번째는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것이다. 발심하고 수행하고 온갖 명예나 재산을 버리고 나아가 목숨까지도 보시해 무상도를 구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경에는 한량없는 목숨을 보시한다 하였고, 또한 가죽을 벗겨 종이를 만들고, 뼈를 쪼개어 붓을 만들고, 피를 뽑아 먹물을 만들어 경전을 써서 수미산같이 쌓는다고 말씀하셨다. 무상도를 구하는 자세가 어떠한 것인가를 우리는 여기서 읽을 수 있다.

구도자에게는 무상도를 구하는 일 이외에 다른 것이 없다. 그 앞에는 몸도 목숨도 모두가 몽환과 같으며 티끌 같은 존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하거늘 어찌 세간의 지위나 재산이나 내지 소소한 난행 고행일까.

일체 보살이 이와 같이 발심해 이와 같은 정진 자세로 오로지 순수하게 법 하나를 지상 가치와 지상 목표로 삼아 오직 한 길로 정진하였다. 이 구도자의 순수한 정신, 용맹정신, 결단적 행동 정신을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한다. 일체 보살이 이와 같이 수행하셨고 이와 같이 성불 하셨으니 수행자세가 이러고서야 어찌 다른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에게는 오직 성불만이 있는 것이다.

경에 의하건대 석가모니 부처님은 삼세제불 가운데 ‘용맹정진에 있어서 제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여래의 용맹정진을 몸소 배우라.”하셨으니 “이것 없이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라고 하셨다. 사바세계에서 도를 구하려 할진대 이와 같은 순수한 용맹정진은 필수 불가결임을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설사 조그마한 세간적 성공을 거두는 데도 불굴의 인내심이 필요하거늘 어찌 무상도를 구하는 데 있어 해이한 정신으로 가히 공업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용맹정진이야말로 일체시를 성취시키는 제일 요건임을 깊이 배워야 할 것이다.

첫째는 이 세간에 제불이 몸을 나투심은 큰 서원력의 나툼이며 대자비심의 방편적 표현이다. 몽환 속에 악몽에 시달리는 중생을 깨우치고자 짐짓 세간에 출생하시는 상도 나투고 성도도 하며 열반에도 드신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의 출생과 내지 열반에 이르는 일대사는 이것이 부처님의 대법문이며 대감로수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한 토막 한 토막 내지 낱낱의 사건 속에 담긴 부처님의 곡진하신 자비와 지혜의 말씀을 알아들어야 한다.

둘째는 부처님의 그와 같은 발심 수도 내지 시현열반이 바로 일체 중생이 닦아갈 표준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지가지 법문은 그것이 청정 자성을 나투는 표격이며 공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 공도를 따라 이 표격을 기준으로 하여 배우고 의지하고 따르고 닦아갈 때 거기에는 청정본법신의 본연상이 함께 있으며 그 위신력이 함께 있는 것이다.

만약 도를 이루었다 하여 이와 같은 표현도 이와 같은 열반도 없다면 일단은 정도 여부를 살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래 멸함이 없는 부처님이시며 원래 출몰이 없는 법성신이지만 사바중생에게 각성 광명을 떨쳐 내실 때는 대개 위 경에 보이신 바 자비광명 법식이 따르는 것이다. 경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그러하심을 말씀함으로써 근본불의 활동법식이 그러함을 보여주었고 우리의 청정 자성의 본연적 발현 양식이 그러함을 말씀하고 있다.

부처님을 따라 배우자.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하실 때부터 용맹정진하여 물러서지 아니하고 보리를 이룬 것을 따라 배우자. 그리고 가지가지 방편을 열어 일체 중생을 성숙시킨 그 모두를 따라 배우자. 이것이 깨달음의 행동이며 청정 자성을 구김없이 드러낸 양상이다. 이것이 함이 없는 땅에 이르는 방법이며, 함이 없는 땅에 도달한 소식이며, 함이 없는 큰 법을 굴리는 소식이다.

 

▲대중들과 함께 한 광덕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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