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법문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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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법문 (16)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10.1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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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음알이의 무더기 ⇔ 오온 ⑥
각묵스님

 

‘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오온五蘊이다. ‘나’라는 존재는 물질[色], 느낌[受], 인식[想], 심리현상들[行], 알음알이[識]의 다섯 가지 무더기[蘊]의 집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빠알리 어語인 윈냐나(viňňāna)를 우리말로 ‘알음알이’라고 번역하고 있고, 영어로는 consciouness로, 한자로는 식(識)으로 표기한다.

 

우리말 알음알이를 몇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초기불전에서부터 아비달마와 유식에 이르기까지 마음(citta, 心)과 마노(mano, 意), 알음알이(viňňāna, 識)은 동의어이다. 다만 역할이나 문맥에 따라 다르게 쓰이고 있을 뿐이다.

<둘째> 초기불전에서 마음은 단지 대상을 아는 것일 뿐이다. 마음은 일어나고 멸할 때 반드시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과 함께 일어나고 멸한다. 마음은 느낌과 인식과 심리현상들이라는 마음부수의 도움으로 대상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아비달마와 유식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느낌이 없으면 마음은 결코 대상을 경험할 수 없고, 인식이 없으면 마음은 결코 대상을 인식할 수 없고, 의도라는 심리현상[行]이 없으면 마음은 대상을 알려는 어떤 작위도 할 수 없다. 마치 왕이 그 수행원들과 함께 오듯, 이와 같이 마음이 일어날 때는 절대 혼자 일어나지 않고 항상 마음부수와 함께 일어나고 멸한다. 마음은 눈의 대상에 일어났는데 마음부수들은 다른 대상에 관여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는 말이다.

<셋째> 마음은 찰나 생生 찰나 멸滅이다. 부처님께서는 ≪앙굿따라 니까야≫ 『바르게 놓이지 않음 품』(A1:5:8)에서 마음은 어떤 마음이든 모두 빨리 변한다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 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빨리 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 비구들이여,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그 비유를 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러한 가르침은 주석서와 아비달마에서 찰나khana 刹那로 정착됐다. 이에 더하여 주석서는 이 찰나도 다시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는 세 아찰나 sub-

moment 亞刹那로 구성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칫 빠질지도 모르는 찰나의 실재성마저 거부하고 있다.

<다섯 째> 마음은 흐름santati 相續이다. 마음이 찰나 생 찰나 멸이라면 지금 여기에서 생생히 유지되고 있는 이 마음은 무엇인가? 초기불교에서는 지금 여기에서 생생히 전개되는 이 마음을 ‘찰나 생 찰나 멸의 흐름’으로 설명한다.

이를 주석서는 심상속citta-dhāra 心相續 등으로 강조하고 있고, 삼장법사 현장 스님은 「금강경」에서 심주류心主流로 옮겼다.

<여섯 째> 알음알이, 즉 마음은 무상無常하다. 그리고 실체가 없다[無我]. 알음알이를 위시한 오온의 무상은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강조되고 있다. 무상·고·무아에 사무쳐야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가 일어나서 깨달음을 성취하고 열반을 실현하여 성자가 된다.

마음을 절대화해버리면 자아가 있다는 견해, 즉 유신견有身見에 떨어진다. 유신견은 중생을 중생이게끔 얽어매는 열 가지 족쇄 가운데 첫 번째요, 「금강경」의 네 가지 상相 중의 하나이다. 유신견이 이는 한 성자의 첫 단계인 예류자도 되지 못한다.

- 다음 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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