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일붕 큰스님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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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일붕 큰스님과의 인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11.01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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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석(혜향문학회원, 어울림터 원장)

필자의 고향은 서귀포시 도순동이다. 세 살 때 부모님께서 이곳에 정착하면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 어려웠던 시대를 살아온 잊지 못할 고향이다. 
도순하면 기억나는 게 지방기념물로 보호되고 있는 녹나무 자생지가 마을 상징물로 되어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당시 학교 정문 입구에 식재해 놓은 것이 지금은 우람하게 자라 학교 역사와 함께하고 있어 기억이 새롭다. 또한 도순하면 대표적인 인물로서 서경보 스님을 꼽는다. 어렸을 때 흔히 스님호칭을 서 박사로 주위에서 많이 불러 왔던 게 기억나는데 필자가 고등학교시절 스님이 가끔 언론에 등장 하실 때와 어디선가 본 이상야릇한 액자 글씨에 빠져드는 듯한 묘한 감정이 생기면서 아! 스님 한 번 뵙고 싶다는 마음이 울컷 솟구치기도 했다. 
그러던 차 80년대 중반 필자가 방송국에 근무할 당시 스님을 섭외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때 처음 뵌 게 오늘날 불교와의 인연으로 맺어진 계기가 됐다. 
누가 뭐래도 일붕 큰스님은 제주가 낳은 학승으로 평생 남북 평화통일 및 세계 인류평화를 위해 헌신해온 대승정으로서 크나큰 족적을 남기신 분이다. 
잠시 스님의 행적을 정리해보자.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서귀포시 도순동에서 태어난 스님은 19세 때 산방굴사에서 혜원 선사로부터 계를 받으면서 불가에 입문하게 된다. 그 후 화엄사와 완주 위봉사 강원에서 사미과, 사집과 수료, 서울 개운사에서 3년을 거쳐 사교과, 대교과의 가르침을 받는다. 또한 해방 전 일본 유학길에 올라 교토 임제전문학교 철학과를 수료한 후 귀국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편입 1950년에 졸업했다. 
40세가 되던 1953년 마침내 스님께서는 한국불교계에 명성을 발하기 시작, 동국대를 시작으로 부산대, 동아대, 해인대, 전북대, 원광대 등에서 불교 및 철학을 강의했다. 스님께서는 이와 함께 승복 입은 외교관으로도 유명했는데 1958년 방콕에서 개최된 국제불교도 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미얀마 상카대학 교환교수, 미국 템플대학 종교학 주임교수로 한국불교의 선사상을 널리 알렸다. 
이처럼 왕성한 해외포교에 온 열정을 보여 준 스님께서는 1996년 열반하시기 전까지 무려 157개국을 방문 1969년 미국 템플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한 후 26개 분야 126개의 국내외 박사학위 취득, 1042권의 저서와 757개의 평화통일비 건립 50만여점의 선필, 최대 석굴법당 건립 응 5개 분야에서 기네스북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남북평화 통일을 늘 염원하고 세계 평화를 주창했던 스님께서는 1988년 일붕선교종을 창종 한 후 계속 추진해오던 세계불교 법왕청을 1992년에 설립 창립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초대 법왕에 추대되었고 부처님오신날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제정하기에 이른다. 
더욱이 주목되는 것은 뉴 멕시코주에서는 동양인으로 처음으로 1979년 8월17일을 ‘서경보박사 기념일’로 제정 큰 화제가 됐으면 지금도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 한국불교의 위상과 평화통일의 염원을 남긴 제주가 낳은 서경보 큰스님의 업적이야말로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오늘날 기틀을 마련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와 같이 감히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엄청난 수행력과 법력은 이미 외국에서도 기념일을 제정할 정도로 그 업적을 기리고 있는데 정작 제주서는 단순히 조촐한 추모재만 치러지고 있으니 제자로서 도민으로서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다. 
스님께서 열반하신 후 일부에서 출생지 생가복원, 기념관설립, 장학회 등 여러 가지 기념사업을 추진하는 듯 했으나 어느 누구 선뜻 나서는 자가 없다. 그동안 종단을 대표하는 여러분들이 거치면서 이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는 있었으나 뭉쳐지지 못하는 게 오늘까지 흐지부지 해온 것이다. 
역사적인 한 인물을 기리고 그 철학을 계승하는 일은 특정 종교인을 기리는 기념사업이 아니라 세계평화의 섬 제주가 낳은 세계적인 인물에 대한 예우 차원이라 본다면 당연히 종단과 불제자들이 동참과 관심이 우선이겠고 제주도차원의 기념관 설립으로 또 하나의 대표적 브랜들로 거듭 나야 되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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