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시론-老年의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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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시론-老年의 당신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11.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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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시인. 수필가. 아동문학가, 본지논설위원)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라고 공자의 어록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칠십 세에 이르러 뜻대로 하여도 도(道)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과거 대가족제도에서는 어르신은 질서와 화목, 인간의 도리와 윤리를 전승하는 주체였다. 노인들에 의해 공동체의 질서가 유지되었고, 나이듦이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시간은 가만두지 않았다. 가부장제가 몰락하고 핵가족화한 지금, 누구도 늙음을 칭송하지 않는다. 현실은 온통 젊음을 미화하고, 늙으면 추하고 사회에 쓸모없는 대상으로 삼는다. 유행과 음식, 광고는 젊은 층을 위한 것이고, 거리는 젊은이들만의 이용물로 꾸며지고 있다.
나이 들면 구세대‘꼰대’로 치부하며, 정치권에서도‘노친네’라고 비하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노인이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은연중 깔려 있다. 젊은이들에게 귀찮음의 대상이 되었으며, 자식들에게 학대당하고 사회비용을 축내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심지어 갈수록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니 참으로 두렵고 꺼림칙하다. 
고령화 시대에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은퇴 없이 평생 현역으로 일하는 것은 미덕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어르신들의 상황은 OECD 선진국과 크게 다르다. 노인 빈곤율은 OECD에서 가장 높다. 나이 들어 일정한 직업이 없으니 수입이 없고‘늙엉 버는 건 세 살’이라는 제주 속담도 있다. 엄살, 몸살, 주름살’의 세 살만 늘어날 뿐 친했던 말벗도 하나둘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면 외로움만 곁에 쌓인다. 
노후 연금 수입이 없으니, 고령에도 쉬지 못하고 적은 돈이라도 생활비에 보탤 요량으로 벌이에 나서는 것이다. 잡초를 제거하고 휴지와 담배꽁초를 줍는 공공근로사업이나 환경미화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것마저도 녹록치 못한 현실이다. 노인취업교육센터를 운영하고 맞춤형 노인 일자리 사업을 펴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연금 역사는 짧은데, 고령사회는 벼락처럼 닥쳐왔다. 제주도의 고령사회는 가파르다. 일부 읍면인 경우 올해 3월말 현재 노인 인구 65세 이상 20%를 넘어 30%까지 이르러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100세 시대다.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인간 수명이 급격하게 길어져 사회 인프라가 이를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고 70대 노인이 90대 부모를 모시고, 치매에 걸린 부부 중 정도가 덜한 사람이 더한 상대를  돌보는 게  현실이다.`
장병(長病)에 효자가 없다는 얘기는커녕, 짧은 병에도 간병을 서로 미루는 자식 간의 갈등이 말년에 상실감을 더하게 한다. 죽음의 질을 따질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얼마나 아프지 않고 편안하게 세상을 떠나느냐 하는 거다. 익숙한 환경에서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가족, 친구와 함께, 고통 없이 죽어 가는 것이다.
지난 9월 28일 노인의 날 축제가 한라체육관에서 열렸다.  
‘요란하게 잔치도 허지말곡 제대로 오몽하지 못하는 늙은이들 나무래지나 말아시멘 좋구다’라고 되뇌는 어느 한 어르신의 말이 기억난다.
  늙는다는 건 우주가 하는 일이다. 불로를 꿈꾸지만 누구나 늙는다.
웰빙(well being) 과 함께 웰 다잉(well dying)을 가르치는 강좌를 들으러 복지관이나 경로당, 주민센터로 발걸음을 파는 것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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