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려관 스님같이 강직한 성품 지녀…대중들의 의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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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려관 스님같이 강직한 성품 지녀…대중들의 의지처
  • 이병철 기자
  • 승인 2017.11.29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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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불교 주춧돌, 당신을 모십니다- 도남 보덕사 주지 혜전 스님<2>
봉려관 스님이 수행자를 넘어 제주여성 특유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치열한 삶을 추구한 것처럼 혜전 스님도 안봉려관 스님의 모습을 닮아가며 대중들의 의지처가 되고 있다.

 

 혜전 스님은 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장 소임을 맡은 지난 10여 년 동안 도내 비구니스님들과 매년 연말이면 이웃들에게‘자비의 연탄’을 전달했다. 비구니회는 연탄 뿐 아니라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병원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이 입원한 병원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하는 한편 경전을 독송하며 어르신들이 병고서 조속히 완쾌되기를 부처님께 기원 한다.
 혜전 스님은“한해를 정리하는 연말이면 사회 전반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이어서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관심이 줄 수밖에 없다”면서“이웃들을 보듬기 위해 성품을 직접 전달하게 됐다”고 자비나눔 실천 배경을 설명했다.

 

10여 년 동안 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장 맡아 
연말이면 소외된 이웃에 연탄 등의 자비선물
 


 혜전 스님은 지난 2003년 전국비구니회 중앙운영위원으로 추대된 뒤 2006년 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장 소임도 겸임했다. 이어 2007년 중앙 수석부위원장을 맡아, 원만히 그 역할을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스님은 제주불교의 독특한 문화적 특색을 감안해 종단을 초월, 도내 비구니 스님들이 참여해 화합과 상생의 모범 사례를 만들었다.
 또한 혜전 스님은 지난 2013년 백흥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길위에서’제주상영도 적극 추진했다. 당시 영화‘길 위에서’는 제주서 상영관을 잡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혜전 스님은 비구니 스님들의 의견을 모아 전국비구니회 제주지회 주관 하에 제주상영을 결정한다. 혜전 스님의 선견이 있었던 걸까. 영화는 사흘 동안 12차례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에서 상영되는 동안 제주불자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소위‘대박’을 쳤다. 매회 상영마다 줄줄이 매진사례가 이어졌다.
“사흘 동안 어린이와 학생들을 비롯해 4500명이 영화에 그려진 스님들의 출가의 인연과 수행 과정을 보면서 불교와의 선근 씨앗이 싹텄으리라 믿어요. 또한 타종교에 이해심을 넓히기 위해 천주교의 수녀님과 원불교의 교무님 등을 초대, 영화를 통해 상대의 종교를 이해하고 상생의 길을 마련하는 토대가 됐다고 봅니다.”
 혜전 스님이 수행자로서의 삶을 다하는 그날까지 놓을 수 없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蓬廬觀, 1865∼1938) 스님에 대한 재조명이다.
 남성중심인 근현대사 역사 속에서 봉려관 스님은 1990년대 이르기까지‘스님’이란 호칭보다‘화주’, 심지어‘무당’이라 불렸다. 봉려관 스님의 5대 법손인 혜전 스님은 이 같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훼손된 명예를 되찾는데 헌신한다.
“봉려관 스님의 명예 회복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어려웠습니다. 봉려관 스님의 부족한 문헌기록을 발굴해 이를 증명해야 했죠. 봉려관 스님의 문헌기록과 증언자를 찾아 20여년 전 부터 일본을 비롯해 부산, 통영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자료수집에 나섰습니다. 비로소 통영의 한 사찰서 봉려관 스님이 화주한 탱화를 찾아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지난 2006년 6월 1일 서울 비구니회관서 열린‘한국비구니 수행전통포럼’에서 발표한‘제주불교 중흥과 봉려관 스님’이었습니다.”
 이 포럼서 혜전 스님은 1919년 3·1운동 보다 5개월 앞서 1918년에 일어난‘무오법정사 항일운동’에 봉려관 스님이 깊숙이 관여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주장을 제기했다.
 봉려관 스님을 통한 제주불교 역사 바로 세우기는‘봉려관 선양회’출범으로 더욱 탄력을 받는다. 지난 2010년 11월 출범한 봉려관 선양회는 도내 사부대중이 종파를 초월해 스님의 업적과 행적을 널리 알리겠다고 천명한다.
 혜전 스님은“봉려관 스님은 200년의 명맥불교를 마감하고 제주 땅에 불심을 심고 가꾼 것은 물론 법정사 항일항쟁 주역인 스님들께 자금을 지원하는 등 참된 애국자요, 선각자”라며“하지만 열반한 지 72년이 지난 지금 스님의 이름마저 잊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창립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스님은“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20년 전부터 한용운 스님의 선양사업을 펼치며 만해대상 시상을 비롯해 장학·포교·청소년문화·학술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며“봉려관선양회도 스님의 일대기를 정립하고 재조명하는 세미나 및 강연회 등을 통해 업적을 널리 홍포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불교역사 바로 세우기‘봉려관선양회’출범
강연회.신행수기.책 출판 등 봉려관 스님 선양


 선양회 창립 후 2011년 8월 봉려관선양회는 이향순 교수(미국 조지아대)를 초청,‘봉려관 연구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했으며, 지난 2012년 7월 관음사 경내에서는 봉려관 스님이 관음사 창건을 위해 기도한 해월굴에 스님의 행적비를 세웠다. 또한 2015년 12월에는 관음자비량합창단의 불음을 통해 봉려관 스님의 항일항쟁 업적을 기린‘칸타타(교성곡)’를 제작했고, 격년제로 음성공양하며 그 행적을 찬탄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5년부터 근대제주불교 중흥조 봉려관 스님 탄신 150주년을 기념해 제주불교신문과 (사)봉려관선양회가 주최하고 제주불교문인협회가 주관 하에 전국의 불자들을 대상으로 신행수기 공모를 실시하고 있다. 그야말로 안봉려관 스님이 불심으로 200여년 동안 꺼진 제주불교를 일으켰듯이 불자들이 부처님을 의지해 사업실패나 자살 문턱까지 갔던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는 도구로 사용되면서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한 사)봉려관선양회가 올해 6월 근대제주불교 중흥조 해월당 봉려관 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책『해월당 봉려관 스님』을 펴내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200년의 무불시대에서 근대 제주불교를 일으킨 봉려관 스님의 기적같은 삶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혜전 스님은“봉려관선양회가 그 어떤 걸림이 없이 나아갈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김수진, 조명철, 오영호 선생 같은 선양회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면서“그동안 마음에만 지고 있던 빚을 지면을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혜전 스님은 스님은 한 없이 자신을 낮추지만 선양회원들은 혜전 스님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도내 외 많은 사부대중이 이제는 봉려관 스님을 제주불교의 중흥조요,‘관음사’개산조로 칭송하고 있다. 
 이처럼 혜전 스님은 조선중기 200여년 간 끊긴 제주불교를 다시 일으킨 안봉려관 스님같이 강직한 성품을 닮았다. 봉려관 스님이 수행자를 뛰어넘어 제주여성 특유의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치열한 삶을 추구한 것처럼 혜전 스님도 안봉려관 스님의 모습을 점점 닮아가며 대중들에게 의지처가 돼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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