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담대종사‘발고여락’의 고불총림 이념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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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담대종사‘발고여락’의 고불총림 이념 계승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12.0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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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담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이중표 전남대 교수

묵담대종사문도회(대표 수열 스님)는 11월 28일 <묵담대종사, 그의 선.교.율> 출판 봉정식 및 학술대회를 춘강대강당서 개최했다. 이날 16명의 학자들이 묵담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소중유품에 대해 발표했는데 이를 요약 정리한다.<편집자주>

 

묵담 대종사는 1896년 담양군 수북면 남산리 출생으로 법명은 성우, 법호는 묵담이다. 10세전에 부모를 잃고 11세에 장성 백양사의 천경순오 선사를 의지해 출가득도 했으며 사미계사는 종산선사였다. 17세에 해인사 해명학교를 졸업하고 18세에 증오사이신 금해 노스님을 시봉하면서 사미과와 사집과를 수료했다. 19세부터 25세까지 백양사 불교전문강원을 비롯 여러 강원을 역참하면서 사교과와 대교과를 졸업하고 27세에 선문염송을 이수하였고, 29세에 내장사 금강계단에서 금해 노스님의 전계로 구족대계를 받아서 해동 칠불암의 계맥을 이어 받아 해동 제9대 율사가 됐다.

대종사의 불교정화운동 
방향은‘발고여락’

묵담 대종사는 해동율맥을 이은 제9대 율사로서 전계화상으로, 그리고 모든 불사에 작법증명하는 증명법사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종사의 일면일 뿐 진면목은 아니다. 오랜 기간 가까이서 지켜본 백양사 문중 서옹 스님과 범어사 석정 스님은 대종사가 단순한 율사가 아니라 선교를 겸한 대선지식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내외의 평가는 형식적인 미사여구가 아니라 대종사께서 남긴 여러 법문과 글에서 확인된다. 대종사는 계맥을 전수한 엄정한 율사이면서 동시에 불교의 이론과 실천을 겸전한 불교사상가이며 실천가였다.
필자는‘불교란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물음은 불교정화운동과 종단분열이라는 혼란과 격변의 시기를 관통한 대종사의 삶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중심축이다.
조계종은 불교의 목적을 견성성불에, 대종사는 발고여락(拔苦與樂, 자비로써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주고 즐거움을 주는 일)에 두었다. 불교정화운동의 방향은 큰 차이를 보인다. 필자는 엄정한 율사이며 청정 비구인 대종사께서 정화운동과 그에 따른 종단분규의 과정에서 비구를 표방하는 현 조계종단에 합류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불교는 견성성불이라는 도그마에 빠져 바른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필자는 발고여락을 불교의 목적으로 보는 대종사의 불교사상이 한국불교가 나아갈 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근대사 격변기의 
묵담 대종사의 삶

묵담 대종사는 격변의 시기를 살았다. 대종사께서 탄생하신 1896년은 조선이 외세의 강압에 견디지 못하고 개항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1897년에 성립한 대한제국은 1910년에 일제에 병합되었고, 1945년 우리 민족은 35년 간의 일제에서 벗어났지만 해방군으로 들어온 미군정은 기독교 우위의 종교정책을 실시했다. 이승만은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의 원칙을 무시하고 기독교 우위의 미군정의 종교정책을 답습하면서 8차례에 걸친 위헌적인 담화를 통해 불교의 내분을 조장한다. 이에 비구승을 자처하는 일부 수좌들이 이승만 정권의 비호와 협력에 의지해 정화라는 이름으로 분규를 일으켰다.
이러한 격변의 시기에 대종사는 10세에 동진출가하여 오직 불법에 의지해 계율을 목숨처럼 호지하면서 해동율맥을 계승했다. 선교의 모든 과정을 여법하게 수습해 스스로 안심입명처를 깨달아 일제강점기에 절망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대중들의 교화에 헌신했다. 그리고 광복 후에는 종단 분규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만암스님을 모시고 올바른 불교정화와 교단화합을 위해 진력했다. 그러나 대종사의 노력에도 교단은 분열했고, 전통은 파괴됐다. 대종사는 이러한 현실을 보고 인과를 알고 도덕이 높은 진정한 불자가 전문한 것을 한탄했고, 비애의 눈물을 흘리며 열반에 든다. 

대처승 배제는 정체성 기반 축소, 
한국불교 이념의 협소 

이제 대종사가 제시하는 한국불교의 나아갈 길을 살펴보고자 한다. 1954년에 이승만의 담화에서 비롯된 종단의 분규를 과연 불교정화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대종사는 그것을 불교정화운동으로 인정하지 않고, 이승만의 위헌적 유시에 의한 불법행위로 본다. 그리고 이것은 3천년 불교역사에 유례없는 오점이라고 평가한다.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회복하자는 취지의 봉암사결사는 불교개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참다운 수행이 필요하다는 전제 아래 공동 수행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봉암사결사는 3년이라는 짧은 기간 이뤄졌지만 소위 선학원 수좌들이 주도하는 불교정화의 방향타가 됐다. 혁신파들은 대처승을 교단 중심부에서 배척하고, 수도승 중심의 교단으로 탈바꿈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전체 승려의 90% 이상이 대처승임을 감안할 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대처승 배제, 계율 수호 등은 근본불교 및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에 최소한의 기초이지 그것이 이념이나 노선 혹은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대처승 배제만을 유독 강조함으로써 저절로 정체성의 기반 축소, 한국불교 이념의 협소를 가져왔다. 또한 이것은 미군정의 기독교 우위정책에 대응하여 불교계가 단합하고 역량을 결집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불교계 자체 내에 갈등에 역량을 소진함으로써 새로운 종교지형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게 한 측면도 있다. 결국 비구 중심의 승단 운영이란 것은 하나의 명분이었고, ‘사실은 종권획득이 목표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무튼 봉암사 결사의 이념을 가지고 정화운동을 전개한 선학원 수좌들의 불교정화는 대처승을 축출하고 종권과 수행공간을 획득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불교 정화운동의 본질인 한국불교의 전통과 근본불교의 정신을 확립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종사가 계승한 
고불총림의 불교정화운동

만암 스님이 이끈 고불총림 정화운동은 묵담 대종사로 이어져 태고종이라는 종단을 이뤘지만 현재의 태고종도 고불총림의 정신은 망각되고 있다. 대종사의 생애와 사상을 논하는 이 글에서 필자는 대종사가 계승한 고불총림의 불교정화운동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봉암사 결사와 고불총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회복하자는 취지는 동일하나‘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라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선승들이 주도한 봉암사 결사는 참선을 통한 견성성불을 불교의 목적으로 보고, 여타 전통이나 현실을 무시하고 수행공간 확보에 치중한다. 그 결과 정화운동은 한국불교의 전통을 파괴하면서 대처승의 축출과 종권의 획득을 목표로 진행됐다. 한편 비구승과 대처승이 각자의 직분을 정하여 일치단결함으로써 시대적 난관을 극복할 것을 주중한 고불총림 이념은 만암 스님이 제3대 교정으로 추대되면서 교단 운영 방침이 된다. 그러나 고불총림의 이념은 수좌들이 종단의 방침을 거부하고 이승만의 담화에 의지하여 분열, 획책함으로써 좌절된다. 대종사는 이 과정에서 고불총림의 이념을 계승해 종단의 운영에 실현시키고자 노력한다. 대종사는 선학원 측이 분규를 일으킨 후에 만암 스님을 이어 기존 조계종단의 종정으로 추대되어 종단을 이끌면서 분규를 종식하기 위한 혼신의 노력을 경주했지만 교단은 조계종과 태고종으로 분종되어 결별하게 된다. 
계율을 목숨보다 중히 여긴 청정한 비구임에도 대종사가 조계종을 거부하고 태고종에 합류한 이유는 대처승을 두둔하고 비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조계종이 고불총림의 이념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분종하기 전에는 교단을 화합하여 고불총림의 정화이념을 실현하고자 했지만 선학원 측이 고불총림의 이념을 따를 수 없음을 확인한 대종사는 고불총림의 불교정화 이념을 태고종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대종사는 분규 이후 고불총림의 이념을 교시로 내리지만 종단에서는 이를 받아 실천할 의지가 없었다. 그 결과 고불총림의 정화 이념을 계승해야 할 태고종은 대처승 종단으로 전락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세간에서는 태고종 승려는 모두가 대처승이라고 알고 있으며, 대종사도 태고종 종정을 지냈으니 당연히 대처승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다. 
★다음호에 계속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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