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법문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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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법문 (25)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7.12.2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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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③ :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은 아무 원인 없이 그냥 일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절대자가 있어서 존재를 괴롭도록 만드는 것인가? 만일 괴로움만 강조하고 괴로움의 원인을 설명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리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성제의 두 번째 진리는 이러한 괴로움이 왜 일어나는가,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진리이다.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dukkha-samudaya ariya-sacca)에서 일어남의 원어는 사무다야(samudaya)인데, 그 뜻은 일어남, 발생, 원인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집集(모일 집)으로 옮겼다.
부처님께서는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갈애tanhā 渴愛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딴하(tanhā)의 문자적 의미는 ‘목마름’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부처님께서 갈애는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근본 원인이라고 말씀하신 점이다. 물론 갈애만이 괴로움의 원인은 아니다. 무명과 성냄, 질투, 인색 등의 불선법不善法들은 모두 괴로움의 원인이 되고 생사윤회의 원인이 되지만 부처님께서는 갈애를 가장 대표적인 원인으로 들고 계신다.

「초전법륜 경」(S56:11)에 갈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그것이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과 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즉 ⑴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欲愛, ⑵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⑶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주석서에서는 이 세 가지 갈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⑴ 욕애欲愛는 눈·귀·코·혀·몸의 다섯 감각기관을 통해서 인식되는 대상에 대해서 생기는 탐욕을 말하는데, 이는 욕계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매 순간 일어나고 있다.
⑵ 유애有愛는 색계와 무색계에 대한 갈애이다. 이는 존재를 열망함에 의해서 생긴 상견常見이 함께하는 것으로 색계의 존재-범천과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탐욕과 선禪을 갈망한다. 색계와 무색계는 선 또는 본삼매를 닦아서 태어나는 세상이다. 이처럼 선을 닦아서 태어나는 색계와 무색계 존재에 대한 탐욕과 이러한 곳에 태어나기 위해서 선정과 삼매에 대한 강한 갈망을 일으키는 것을 유애라고 한다.
⑶ 무유애無有愛는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이다. 이는 단견斷見이 함께하는 탐욕과 같은 뜻이다. 존재하는 것 자체에 염증을 느껴서 자살에 대한 충동을 일으키는 것 등을 무유애라 한다. 복잡다단한 삶과 존재의 관계에 대해서 염증과 절망을 일으키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이러한 무유애가 더욱 많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무유애도 엄연히 갈애의 하나이다.
 
  어떤 종류의 갈애든 갈애가 있는 한 중생은 다시 태어난다. 진정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고 싶다면 이 세 가지 갈애가 남김없이 소멸된 경지, 즉 열반을 실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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