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일반적으로 절대적인 존재에게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청하는 행위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하기도 전에 의문을 제기한다.“정말 기도가 이뤄질까?”라고. 이에 대해 틱낫한 스님은 말한다.“기도는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깨달음을 통해 지금의 상황보다 좋게 만들려는 마음의 자세”라고 말이다. 본지는 불기 2562년 무술년 새해를 맞아 신년 특집으로 기도의 힘을 믿고 정진해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불자들의 사연을 통해 2018년에는 정진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다시 엄마로 태어난다면 꼭 가해 학생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야 그들처럼 내 자식이 학교의 관심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깐.”
현정선(47) 산방산 보문사장학회 총무는 학교폭력의 피해 엄마다. 10여 년 전 중학생이던 둘째 아들이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집에 온 것. 사연인 즉, 아들이 사탕을 갖고 있는데 친구가 안주자 아들의 얼굴에 발길질을 한 것이다. 그리고 아들의 귀에서는 피멍이 들어 한눈에 봐도 심각한 지경이었다. 아들의 그런 모습에 하늘이 노랗고 가슴이 갈기갈기 찢긴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그들은 장난으로 여겼단다. 나중에 알았지만 학교는 가해 학생을 불러 “사이좋게 지내라”고 훈계한 게 전부였다.
부부의 희망이고 꿈이었던 아이가 그렇게 당하고 오자 집안의 미래와 꿈이 사라진 듯 했다. 내가 애써서 노력하면서 자식 잘 키우자고 하는데, 그게 무너지면서 일하고 살 의지까지 상실하게 된 현 씨. 당시 남편까지 서울 출장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엄마로써 아이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없는 자신이 싫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적이 전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던 큰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자 방황하기 시작했다. 스포츠토토 게임에 빠져들어 헤어 나오질 못했다.
아이들이 빗나가는 모습에 ‘내가 이러려고 밤낮으로 뛰어다녔나’라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현 씨는 보험업을 하며 승승장구했다. 1억이 넘는 연봉을 받았던 현 씨는 돈도 필요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점에는 믿었던 지인에게 사기까지 당해 심적 고통은 더 심했다. 돈도 날리고, 자식들도 현 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내 마음은 점차 좁아졌어요. 대인기피증이 생기면서 집에만 있는 날이 많아졌죠. 그러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과 보살집에 가서 운세를 보러 갔는데 ‘집안에 머리 아픈 귀신이 있다’며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라고요. 하도 걱정이 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했는데 결국 돈만 날린 결과를 낳았어요.”
그러나 결국 지인의 소개로 산방산 보문사 ‘500나한 100일 기도’ 동참을 권유받는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는 갔지만 사찰 예절을 전혀 몰랐던 현 씨는 서귀포불교대학의 문도 두드리게 된다.
학교폭력과 게임에 빠진 자녀 때문에 부처님께 의지
“아이들 자신만 인생의 길 걷는 것, 기도의 큰 공덕”
“오백나한의 명호를 계속 부르는데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오로지 이에 집중하다보니 1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르고, 기도 후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됐는데 나의 모든 번뇌가 땀으로 빠져나간 뒤에 청정한 기운이 깃든 것 같아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깃털같이 몸도 가벼웠고요.”
이 같은 수행은 몸에 익어갔다. 서귀포불교대학 수계법회에 앞서 진행된 1080배에서 1배도 빼먹지 않고 온 몸을 다 불사른 현 씨는 오히려 몸이 무겁기보다 나비같이 가벼웠다.
이처럼 수행의 깊이를 알음알음 깨친 현 씨는 보문사 진여행 대표의 권유로 ‘관세음보살 보문품’ 독송 기도를 하게 된다.
관세음보살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생각하고 부르면 반드시 가피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기도하고 염불할 때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탐욕을 가지고 또는 산란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업장이 녹지 않기에 모든 소망과 집착을 내려놓고 일심으로 일념으로 집중했다. 한글로 된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독송하다보니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 한 일들이 벌어졌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빛으로 나투는 등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지만 나의 기도를 방해하는 마장이라 생각하고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오직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 열반에 이르기를 서원하며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기를 서원하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직장이 제주시에 있기 때문에 보문품을 차에서 듣고 간절한 마음으로 ‘저를 지켜주십시오’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남을 원망하고 비방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고, 나를 힘들게 했던 상대방들의 요구를 지혜롭게 거절하는 마음도 생기더라고요. 참으로 신기했어요.”
이제는 자신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백(?)이 생겼다는 현 씨. 그 백이 바로 부처님이란다. 그래서 그 어떤 자리에도,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감으로 무장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기도의 힘이라고 말하는 현 씨다.
가족들도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절에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들과 남편이다. “나 자신을 믿어야지, 누굴 믿어”라고 말하던 부정적인 남편도 “부처님이 당신을 지켜줄거야”라고 긍정으로 변했다. 우선 가장 먼저 변한 것은 현 씨였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생각 먼저 강요했다면 이제는 아이의 생각을 먼저 물어보는 엄마로 변해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기대주였던 큰 아들과 가슴 한 켠에 가장 미안했던 둘째, 그리고 칠삭둥이로 태어나 부모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셋째가 이제는 자신들만의 인생의 길을 잡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게 기도의 가장 큰 공덕이라 현 씨는 생각했다.
“이게 행복이구나. 사는 게 행복이구나. 엄마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준 아이들이 정말 고마워요. 이 모든 게 내가 행복해서 그런 것 같아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하루종일 동동거리며 살다보니 긴장이 연속이었어요. 봄에 새싹이 피어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데 그 순간순간이 얼마나 행복하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중이에요.”
100일 기도를 한 후 보문사장학회 총무 소임을 맡게 된 현 씨는 처음엔 회비 100만원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봉사를 통해 감사하는 마음을 바로 알게 됐단다. 소외된 이웃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앞으로 그동안 받은 가피를 되돌려 주고 싶다는 현 씨는 현재 세무회계로 일하지만 절에서 공부하며 청소년들의 상담사가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갖게 됐다.
“자식이 부처라고 하잖아요. 기도를 열심히 해서 그래서 그런가요. 이제는 자식위해 기도하지 말고 부모님 위해서 기도해야겠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