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 두륜산 대흥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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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두륜산 대흥사 (5)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1.1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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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사찰순례(55)

 제주도에 올레길이 만들어진 이후 전국은 걷기 열풍에 휩싸였다. 지자체들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올레길과 같은 걷기 코스를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산 둘레길, 한양 도성을 걷는 순성길, 지리산 둘레길 등 지역 역사와 관련된 곳이나 경관이 좋은 곳을 골라 올레길처럼 만들었다.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지자체에 관광객을 많이 유치해 살림을 풍족하게 하려는 방편이라는 점에서 비판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그냥 두었으면 좋은 길을 파괴하면서까지 주차장을 만들고 길을 넓히고 곳곳에 온갖 안내문으로 치장하는 것까지 박수쳐줄 수는 없다. 최근 육지에 사는 지인들로부터 제주도에 더 이상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탁 트인 자연 경관을 보며 쉬러 제주도를 찾았는데 가는 곳마다 개발되지 않은 곳이 없다며 한 해가 다르게 변하는 제주의 모습에 화가 나서 보기 싫다는 것이다. 정작 제주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제주 섬에 있지 않고 제주 섬밖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보 제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미륵불좌상

 대개 오래된 사찰들은 한적한 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곳을 찾아가고 싶어도 차편이 준비되지 않으면 쉽게 가지 못 한다. 설령 차량이 준비되어도 일주문 밖 주차장에서 사찰 경내까지 한참 걸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젊은 사람이야 괜찮지만 연로한 분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행이나 사찰 순례는 좀 더 건강할 때 많이 보고 나이가 드시면 가까운 데를 찾는 것이 순리인 것 같다. 오래된 사찰들이 있는 곳 주변을 굳이 거창하게 둘레길이니 순례길이니 하는 이름으로 붙이지 않아도 된다. 우리 조상들이 치성을 드리기 위해 삿된 생각이나 부정한 것을 보지 않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제물을 가지고 절로 가는 길이 곧 순례길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찾기 위해 걸었던 길, 당신이 깨달은 것을 같이 수행하던 다섯 비구에게 알려 주기 위해 찾아간 녹야원(사르나트)으로 가는 길,  그 길이 순례의 길이고 깨달음의 길이다. 오래된 사찰의 길들은 그 절이 만들어진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절을 찾아 걸었던 길이다. 그들의 걸음걸음이 그 땅을 단단하게 굳혔다. 그런 마음으로 걸어야 하는 길인 것이다.
대흥사 경내에서 등산로를 따라 두륜산 정상 쪽으로 1.6㎞ 올라가면 북미륵암이 나온다. 바윗길도 있고 해서 한 시간가량 조금 땀이 배어나올 정도로 걸어야 닿는다.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차가 올라갈 수 있는 진불암까지 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 올라가기도 한다. 30분 정도 시간과 땀을 줄일 수 있지만 순례는 그 과정도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직접 걷는 게 좋다.        
북미륵암에는 미륵부처님이 계시다는 용화세상을 의미하는 용화전과 스님들의 요사 및 삼층석탑 두 기가 있다. 용화전 안에는 커다란 바위에 부처님을 새긴 마애불상이 모셔졌는데 오랫동안 미륵불로 불려졌다. 언제부터 불렸는지는 모르지만 북미륵암이라는 명칭도 이 부처님을 미륵불로 보고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과거 보물이었다가 2005년 그 중요성이 더 인정되어 국보로 승격하여 국보 제308호로 지정되었다. 본존불상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직전 깨달음을 방해하는 마군들을 물리치는 순간을 표현한 항마촉지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원래의 항마촉지인상은 석굴암 불상처럼 가부좌를 한 채 배꼽 아래 모았던 두 손 중 오른 손 검지를 무릎 아래 지면에 대는 모습인데 이 불상에서는 오른쪽 무릎을 감싼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이 불상은 평편한 돌에 불상의 모습을 새기는 마애불상 중 양감이 있고 조각 수법도 좋은 드문 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불상의 양 무릎과 얼굴 옆에 4체의 천인상을 조각하였는데, 체구가 크고 둔중한 중앙의 본존 불상과 달리 날렵한 모습의 천인상은 하늘거리는 천의 자락과 편안한 자세에서 부드러움과 세련미를 보여준다. 이처럼 천인이 주변에 조각된 예는 통일신라 불상에는 많지만 고려시대에는 드물다. 본존 불상의 양 무릎에 표현된 옷주름은 사실감이 떨어지는 반복적인 표현으로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로 이행하는 불상에서 보이는 모습이다. 이처럼 이 불상에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에 나타나는 모습과 고려시대 불상에 보이는 모습이 섞여 있다. 그래서인지 북미륵암에 있는 불상을 소개하는 안내 간판에는 이 불상이 만들어진 시기를 신라하대(850~935)로 보고, 문화재청에서 낸 안내서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소개하고 있다. 북미륵암에 있는 두 기의 삼층석탑이 통일신라 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이 불상도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는 입장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순례객에게는 이 불상이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든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이든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높은 곳에 와서 불상을 만든 발원자와 도공의 정성과 불상을 찾아 온 순례객에게 천 년을 넘게 변함없이 보여주는 불상의 자애로움을 느끼며 그만이다. 그리고 온 정성을 들여 한 배 한 배 절을 올리며 자신의 연원과 어찌 하겠다는 서원을 미륵부처님께 드리면 될 것이다.

▲국보 제308호 대흥사 북미륵암 미륵불좌상 좌우 하단 천인상


순례길도 등산과 마찬가지다. 오르는 곳이 있으면 반드시 내려가는 곳도 있다.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북미륵암으로 올라오는 길이 부처님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힘이 덜 들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부처님을 만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염원하고 서원한 후에 내려가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더 가벼울 것이다. 사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좋은 날이 있으면 힘든 날도 있고, 힘든 날이 있기에 좋은 날이 더운 즐겁다는 사실. 
대흥사에 가면 반드시 시간을 내어 북미륵암까지 올라가 보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6년 동안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곳곳을 다녔던 그런 마음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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