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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상식 우리역사속에서 만난 선지식 <9>무염국사 ②

무염은 보철의 심인을 받고 얼마 안 있어 그가 열반하자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불우한 사람을 돕고 병고에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을 구제했다. 어떤 역경에도 아랑곳 않고 불우한 사람 돕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 당시 사람으로 그 이름을 듣는 자는 모두 멀리서도 예경하고 동방의 대보살로 추앙했다. 
신라의 역대 왕들이 그를 왕사로 예우했으나 그는 번거로움을 피해 경북 상주 신묘사에서 머물다 입적했다. 무염의 법은 성주의 일맥을 이뤘으며 선문구산의 하나가 되었다. 
무염은 약리에 밝고 성품이 공손하고 신중했으며 늘 온화한 모습을 잃지 않아 제자들이 기뻐하며 따랐다. 손님들을 대하는데 높고 낮음을 구별하지 않았으며 배우는 사람을 지목하는 데도 선사라고 불렀다. 
반드시 대중과 똑같은 음식을 먹고 옷도 남과 같은 것으로 입었으며 절의 크고 작은 일에 늘 솔선하여 나아갔다. 그는 매양 “옛 조사께서는 일찍이 진흙을 밟았는데 내 어찌 잠시인들 편히 쉬리오”라고 하며 물 긷고 나무해오는 일까지 손수 했다. 
이름 있는 문인이 2천 명이고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도량에 거처한다고 일컫는 제자로는 승량, 보신, 순부, 승광 등이 있다. 불교와 조도, 선과 교를 정의해 놓은 그의 〈무설토론〉이 유명하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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