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특집
고미선 수필가의 스리랑카 기행
위치에 따라 변하는 부처상

 

스리랑카에 갔다. 단둘이 여행을 떠나기란 쉽지 않았다. 불교국가를 방문하면서 불교단체가 아닌 단둘이 떠나기도 처음이다. 콜롬보공항까지 직항으로 아홉 시간만 걸리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가고 싶은 여행지였다. 지금도 눈에 어른거린다. 내가 그토록 스리랑카를 찾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도가 불교발상지이나 스리랑카를 먼저 버킷리스트에 올린 사정은 십여 년 전부터였다.  꼭 가봐야 할 나라이고 동굴 속의 부처상과 나라 전체가 거대한 부처로 조성 되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많다는 점에서 마음이 흔들렸다. 전 국민의 80%가 불교를 종교로 믿고 있다는 스리랑카 국민들의 실상을 보고 싶어서 오랫동안 기다려온 이유이다.
재적사찰의 신도회장과 나는 안내원도 없이 콜롬보공항에 도착해서야 현지가이드를 만나 다른 팀 네 명과 합류하였다. 새벽에 공항에 내린 일정상 눈을 부비며 버스에 올랐다. 공항에 피켓을 들고 서 있는 현지인은 검은 피부의 훤칠한 남자인데 서툰 말씨로 한국에서 칠 년을 노동자로 일한 적이 있다며 소개한다. 5박 8일 동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시기리아 -담불라석굴사원-패엽경 사원-홍차단지-플론나루아 고대도시- 갈레요새-불치사--칼레니언사원 -강가라마야사원을 둘러보았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스리랑카는 인도의 눈물이라 하기도 하며 빛나는 작은 섬이다. 서남아시아에 위치하고 한반도의 삼분의 일 정도의 면적에 인구가 2500만 명이다. 국민성은 온화하면서 검정머리에 새까만 눈동자가 친근감이 인다.
스리랑카의 불교야말로 생활 속의 불교였다. 마을 어귀마다 큰 부처상이 유리 닫집 속에 수호신처럼 모셔져 있는 독특한 양식이었다. 마을의 안녕과 더불어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유일신이었다. 공원에 서 있는 부처상도 크게 조성하였다. 공통적인 모습은 불전함은 보이지 않고 연꽃을 두 손 안에 정중히 받들어 꽃 공양을 최고의 공양으로 삼았다. 
시기리아는 푸른 초원에 우뚝 솟은 고대 도시이면서 사자 형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벽화 ‘천상의 여인’ 이 여기에 있다. 선명한 색채의 오백 명의 미녀가 그려졌다는데 18명이 현존한다. 흙을 발라 여러 번의 점토화 한 후 야채 ․꽃․ 잎․ 나무즙으로 적 ․황 ․녹색의 안료를 사용하였다. 나선형의 계단에 비바람이 치지 않게 접근하면서 불가사의하다. 늪지대에서 화산이 폭발하여 올라 왔을까. 

부처님의 머리카락 사리


중간지점인 사자의 발톱 입구로부터 계단을 올라가면 60도 경사면에 이른다. 경사가 급하기 때문에 발을 디디고 올라갈 수 있도록 바위표면을 약간씩 깎아 만든 계단이 있다. 바위에 고정 시킨 철봉만이 유일하게 몸을 의지한다. 발을 잘못 디디면 거꾸로 떨어질 것 같은 가파른 경사면이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볼 수도 없고 어지러워지자 짐승처럼 기기 시작하였다. 허리를 펴는 순간 스님이 “조금만 힘내셔요.” 라는 소리가 들렸다. “부처님 감사합니다.”신기하여 내뱉은 소리이다. 정상에는 지금도 왕이 앉은 모습처럼 사람들이 관리하는 일들이 기이한 일이다. 내가 무슨 원력으로 포기하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왔을까.

부처님 방문하신 법당


담불라에는 황금사원과 석굴사원이 유명하다. 기원전 1세기에 조성하여 아름다운 채색의 불상과 조각상으로 유명하다. 바위산 중턱에 위치하여 1굴에서 4굴 중 2굴은 다양한 신들의 조각상과 수많은 불상이 보존된 천장에 부처의 삶이 새겨졌다. 이 벽화는 스리랑카 민족의 역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바위산의 자연 동굴에 스님들이 머무르면서 암벽 천장에 홈을 팠다. 거의 변하지 않는 물길을 따라 물고기가 노닐듯 그려 넣었고 그물망을 친 곳에 양동이가 놓였다. 명상을 하다 물소리에 놀라 살펴보니 천장에서 양동이에만 물이 떨어진다. 스리랑카 불심을 엿볼 수 있는 이천 년이 넘는 불가사의한 유물이다.
불치사는 부처님 치아사리를 모신 곳으로 유명한데 호수를 끼고 교통이 혼잡할 정도의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다. 부처님이 생전에 인도에서 세 번이나 다녀가셨다는 사실을 천장과 벽화에 새겨 보관하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기록물로 남아 있다. 전통음악에 맞추어 의식이 진행된다. 멀리서 반짝거리는 부처님이 눈에 들어왔다. 발돋움질 하며 한 번 더 바라보려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성지의 모습이다. 
가슴에 감흥을 간직하며 켈라니아 사원에 도착하였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 아쇼카왕의 딸인 공주가 전해준 2300년 전의 보리수나무가 현존하고 있는 사원으로 부처님이 방문하여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그 곳이다.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된 나무이다. 맨발로 당연히 일주문을 들어서야 한다. 손과 발을 일정한 장소에서 씻고서 감로수를 물통에 받아 줄을 서서 올리고 있다. 넓게 퍼진 고목의 보리수 밑에 부처님이 정각을 이룬 듯 정좌하고 있다. 성스러운 나무 밑이라 경계를 삼은 사각형의 단에는 감로수와 꽃 공양으로 가득하다. 검소하면서 불사에만 치우치지 않는 참 모습을 보았다. 
강가라마야사원은 우리나라의 조계사와 같은 사원이다. 현재는 사원인 동시에 불교 배움의 장소로 사용된다. 한국에서 기증한 쇠북과 양국 국기가 새겨져 석가모니부처님과 지장보살 관세음보살이 좌우보처에 있다. 기증 패를 새겨놓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한때는 스리랑카에 취항하는 우리나라 항공사 광고에도 등장했던 사원이다. 스리랑카불교를 히카두웨 스리 나야카 스님이 부흥시킨 곳이어서 꼭 들려야 하는 사원이 되었다. 전 세계 불교국가들과 꾸준히 교류한 듯 불교박물관‧ 사원과 부속도서관 형태로 운영한다. 부처의 일생이 그림이나 입체조각으로 표현되어 유럽형을 닮은 듯하다.
가운데에 유난히 화려하게 부처님이 조성되어 유리법당 안에서 붉은 가사를 걸친 스님이 탐방객을 맞는다. 신도의 머리에 기물을 정대하게한 후 참배하면 탑돌이하고 돌아 나오게 한다. 부처님 머리카락사리를 모신 법당이었다. 이백 년 전 심은 보리수나무 열매 세 알을 붉은색 실에 꿰어 만든 것을 오른 손목에 묶어 주었다. 지금도 손목에 묶여 풀리지 않는 징표를 보며 부처님과의 인연 변치 말라 암시해주는 듯하다. 

부처님 머리카락 사리법당


해변을 따라 다음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안내원은 길가에 세워진 부처상을 가르친다.  2004년에 스리랑카에 스나미가 왔을 때에 근처에 버스터미널까지 물이 잠기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아직까지 복구가 되지 않은 상태인데 부처님은 움직이지도 않았고 피해 입지 않았다고 설명하였다. 농담인줄 알고 웃었더니 “우리나라 사람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여 폭소가 터졌다. 믿는 만큼 피해도 없는 듯하다.
여느 불교성지를 순례하더라도 스리랑카의 원형을 살피지 않고서는 불교를 믿는다고 말아야 할 일이다. 이천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스리랑카 불교전통은 그 나라 미래인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사원을 방문하며 소통하고 있었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저작권자 © 제주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주불교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