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있는 수필-어머니와 뻥튀기 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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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가 있는 수필-어머니와 뻥튀기 과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1.1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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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수필가)

“태에~용아! 파~앙 과자 어~시냐?”
의식을 잃어 한 달 이상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셨던 어머니가 나지막한 신음의 떨리는 목소리로 전해온 첫마디였다. 내 귀가 의심스러워 큰소리로 재차 물었다. 
“어머니! 뭐엔 허염수광, 팡과자 마씸?”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인다. 병원 측에서 3,4일쯤이면 운명한다는 선고를 받고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대기 중이었던 터였다. 너무도 놀랍고 기뻤다. 의사선생님이 다가와 살펴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지금은 뭐라고 단정 지울 수는 없지만 다행히도 조금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은 희망이 있어 보인다는 말씀이다. 어머니는 신장암에서 대장까지 터져 수술을 한 뒤였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다는 표현이 이럴 때 적절한 표현이지 싶다. 
어머니는 영양주사와 호흡기로만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저승에서의 삶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세상에서 사는 동안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새삼스럽게도 첫마디가 ‘팡과자’였을까. 
며칠 뒤,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음식은 영양주사와 함께 코로 줄을 끼워 하루 세끼를 영양 캔으로 대신하고 있다. 
의사선생님께 어머니가 뻥튀기를 찾는다는 사실을 말씀드렸다. 의사선생님은 “며칠 더 지켜보면서 물부터 천천히 드려보시고 삼키면 부드러운 뻥튀기를 조금씩 녹여서 드려보세요.”라고 한다. 
의사선생님 말씀대로 입으로 계속 물이라도 먹여 보려고 노력해보지만 삼킬 수 없는지 뱉어버린다. 저승에서 드시고 싶었던 팡과자의 꿈은 이루지 못한 채 병원에서 퇴원을 했다. 
이제 퇴원한 지 1년이 지나고 있다. 지금껏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이다. 정신이 났는지 어머니가 또다시 팡과자를 찾는다.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수저로 물을 드렸더니 어렵사리 삼키고 있음을 발견했다. 마트를 찾아 어른 손 두 개정도의 동그란 팡과자 한 묶음을 발견했다. 잘 녹는지 시식을 해봤더니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어머니의 손에 얹어 드렸다. 어머니는 자기가 찾았던 팡과자임을 알아차렸는지 빙그레 웃으시며 조금씩 자르면서 입으로 조심스럽게 넣는다. 옆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봤지만 문제가 없었다. 그 후 다른 음식도 드실 수 있나 싶어 흰죽을 끓여 드려봤다. 한 수저를 드렸더니 그냥 뱉어버린다. 다른 음식을 아직도 삼킬 수가 없는 모양이다. 오직 팡과자만을 하루 10개 이상 드신다. 그것만으로도 자식들에겐 큰 위안이다. 
‘뻥튀기’를 제주사람들은 예부터 ‘팡과자’라 불렀다. 팡하는 소리와 함께 만들어지는 과자여서 그렇게 불렀지 싶다. 옥수수나 쌀을 기계에 넣어서 온도와 압력으로 부풀려서 만든 과자다. 지금은 종류도 많지만 6,70년대만 해도 두 서너 종류밖에 없었다. 우리 어머니가 드실 수 있는 것은 쌀로 만들어진 동그란 뻥튀기 과자다. 유년시절이 생각난다. 먹을거리가 풍부하지 않은 시절에 뻥튀기 한 봉지에 행복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뻥튀기 아저씨는 5일장만 되면 소형 뻥튀기 기계를 들고 나타나곤 했다. 기계에 쇠꼬챙이를 걸어 터트릴 준비를 하고, 우리는 옆에서 귀를 막고 언제 터질까 하는 조바심으로 가슴은 뛰고 있을 때, 뻥!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뻥튀기는 쏟아져 나왔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유혹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어느새 뻥튀기 아저씨 주위에 에워싸며 사먹곤 했다. 생각해 보면 맛은 달짝지근하고 구수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5일장만 되면 뻥튀기가 먹고 싶어 어머니를 보챘다. 생각해보면 설탕 대신 사카린을 사용했지만 지금의 뻥튀기보다 그 시절의 뻥튀기가 더 맛이 좋았던 것 같다. 아릿한 아픔이 느껴지는 시골 장터의 뻥튀기가 그립지만 지금은 뻥튀기 아저씨는 찾아볼 수가 없다. 
요즘, 마트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뻥튀기를 사기 위해서다. 한 묶음에 열다섯 개가 들어 있다. 갈 때마다 여러 묶음씩 사오다보니 계산하는 아가씨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뻥튀기를 무척 좋아 하시나 봐요?” 나는 “예”하고 대답하고는 돌아서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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