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비를 지혜로서 뛰어넘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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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비를 지혜로서 뛰어넘기를 빌었다”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8.01.1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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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사찰 화천사

무술년 새해로 접어들면서 제주불교성지순례길을 나선 순례객의 발길 또한 더욱 의미 있는 곳으로 내닫기를 바라게 된다. 이번에 찾은 곳은 제주시 동회천에 터잡고 있는 화천사(주지 수삼 스님)다.  제주향토유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지는 화천사의 다섯 석불은 우리 할머니의 자애로운 얼굴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순례객의 발길을 멈춰 서게 한다. 있다.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기 위해 간절하게 빌고 또 빌었을 우리 할머니들의 마음 그대로 다섯 석불 또한 늘 거기에 있는 것이다. <편집자주>

 

  
석불 다섯 개
                                     /무명씨

삶이 고단한 
그대들을 위해 
우리 여기 
이렇게 밤낮으로 서 있네 

삶이 너무 고단해 
눈물이 나는 그대들
그 눈물 닦아주려 
우리도 그대와 같이 
고단함을 모르고 서 있네 

비바람이 쳐도 
눈보라가 닥쳐도 
개이치 않네

늘 그대로

마음이 슬픈 
그대를 위로하기 위해
웃는 얼굴로
이 자리에 지키고 있네

 

▲다섯 석불 앞으로 세워진 화천사 대웅전 모습.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어 닥치니 몸과 마음이 더욱 웅크려든다. 그래도 생활이 있는 사람들은 옷깃을 여민 채 바쁘게 종종걸음 치며 삶의 터전으로 향하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변화에도 생활은 늘 이어져야 하고 그 속에서 작고 소박한 꿈도 포기할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 아닌가. 그래서 더욱 일상은 쉼 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화천사 대웅전에 모셔진 부처님.


그 가운데서도 가장 고단한 우리 어머니들은 밤낮 없이 일을 하다가도 마음의 의지처를 찾곤 했다. 그러한 의지처가 마을 가까이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모아져서 곳곳에 기도터가 생겨났다. 화천사의 석불도 그렇게 어머니들의 간절한 기도를 담아내기 위해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다. 

▲화천사 다섯 석불.


다섯 석불이 나란히 모셔져 있는 이곳에 사람들은 공양을 올리고 근심과 걱정을 털어놓고는  팍팍한 삶의 고비를 지혜로서 뛰어넘기를 빌고 또 빌었다. 비록 아주 소박한 공양물을 올릴지라도 어머니들은 온 정성을 다해, 시리다 못해 갈라지고 상처 난 두 손을 반듯하게 모으면서 마음은 자식을 위하고 남편을 위하고 부모님을 위하면서 삶이 무사하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다섯 석불은 또한 마을의 안녕을 비는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석불이 여기 세워진 지는 근 3백년 가량이 된다고 하니, 오랜 세월 동안 마을 사람들의 수호신 역할을 하면서 마을의 안녕을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마을에 있으면서 순례객들에게도 마음의 안식처로서 평화로운 공간을 마련해 준다. 큰 팽나무와 이끼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자연 법당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다섯 석불들은 모두 우리 할머니의 모습처럼 자애로운 얼굴로 순례객을 맞으니, 바깥에서 상처 난 마음도 이곳에 오면 자연스레 치유 받는 듯 여겨진다.  
다섯 개의 석불 바로 앞으로는 화천사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 대웅전은 한편으로는 석불을 외호하면서 따른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기 위한 간절한 원력에서 세워진 것이다. 부처님을 만나기 위한 발걸음을 더욱 오래 붙들기라도 하듯 이 법당 또한 마을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그러한 곳이다. 대웅전 참배를 마치고 나와 발길을 돌리려 하니 대웅전을 둘러싼 외벽에는 십우도를 표현한 선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마치 마음 찾아 헤매는 순례객에게 길이라도 알려주듯이.
“시냇가 수풀아래 / 소발자국 널렸거늘 / 풀속을 뒤진들 / 무엇이 있을까 / 아무리 산이 깊은들 / 먼하늘 뚫렸으니 / 어찌 숨길 수 있으리.”

▲화천사 경내에 세워진 공덕비.


화천사 일주문 옆으로는 이 절을 세우기 위해 밤낮으로 애썼던 불자들의 정성에 보답하기 위한 공덕비가 여럿 세워져 있다. 절을 세우고 지키는 일에 쏟았을 많은 사람들의 공양을 떠올리기만 해도 어느새 마음은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다. 

▲화천사 옆으로 솟아난 ‘새미’물.


일주문을 나서니 화천사 주위로 마을의 상징들이 여럿 눈에 띈다. 마을의 식수로 이용되어 오던 오래된‘새미’가 지금도 그 모습을 간직한 채 보전되어있다.‘새미’안쪽으로는 이 물을 마신 사람들이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했다는 기록이 소박하게 새겨져 있다. 첫 새벽에 이 새미의 물을 길어다 부처님께 올리고 난 뒤 비로소 그 물맛을 봤다는 우리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정성이 오래도록 새미를 지키고 다섯 석불을 보존한 것이라 짐작된다. 

▲4·3으로 목숨을 잃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희생자위령비.


새미를 지나니 4.3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위령탑이 보인다. 70년 전 제주에 불어닥친 무서운  4.3의 회오리가 이곳에 사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억울한 영혼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기 위해 세웠다는 위령탑이 이번에는 슬픈 생각을 자아내니, 새미와  위령탑은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순례객의 마음을 비춘다. 또한 이곳을 지나면서 순례객은 아픈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현재의 삶을 다시 한 번 참회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참회의 마음이 바로 석불이 전해주는 자애로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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