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시론-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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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시론-운명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1.2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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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수(비상임논설위원.시인.수필가.아동문학가))


가로수야, 가로수야! 정말 미안하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다 그렇다. 목숨은 한 번 뿐이란 것. 그게 우주의 원리다.
가로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말을 들어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다. 아름다운 풍치는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그늘 주어 여름을 시원하게 한다. 지난날에는 이정표를 나타내는 나무를 심기도 했는데, 그것을 후수(堠樹)라고 전한다.
  도시나 거리의 가로수들은 대부분 아랫도리가 아스팔트 열기와 자동차의 분진, 빗물이 제대로 스며들 수 없는 보도블록 속에 갇혀 있다. 키가 커지면 전깃줄에 걸리고, 건물 간판을 가리게 되면, 아래 가지를 다 잘라 버리고 머리만 남는다. 마치 ‘토르소’처럼. 심을 때는 ‘빨리 빨리 잘 자라라’고 하지만, 가지가 무성하게 뻗게 되면 마음이 바뀐다. ‘저걸 빨리 잘라 버려야 할 텐데.’ 어디 몸통만 남아 있다고 내가 하늘을 못 찌를까 보냐? 해마다 가지를 자르고, 목을 잘라 봐라,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새잎을 쳐들 테니까. 두고 보란 듯 나무는 그렇게 인내하고 봄을 만들어 간다. 
  연동 신대로에 심은 담팔수 가로수의 수령은 50이 훨씬 넘는다. 이 담팔수는 상록수로서 계절에 관계없이 한 잎 두 잎 단풍으로 물든다. 천연기념물 16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 아름드리가 넘는 담팔수가 언제부터인가 재선충 병에 걸려 죽어 간 소나무처럼 한 그루 한 그루 저 세상으로 떠났다.
 연동에 사시는 한 원로는 ‘저것 봐! 사람이 죽어 감시민, 저렇게 그냥 나두지 아니 호주,  말 못하는 식물이라 나무라서 그런 거라’ 하시는 것이 아닌가?
  제주의 한 언론사가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담팔수 죽음의 원인은 파이토플라스마(위황병)로 판명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두 행정시에서 현재까지 위황병으로 180여 그루를 잘라냈다. 2개월 전 어느 날 오후에도 신대로에선 한 아름드리 담팔수 가로수는 크레인과 화물차가 동원된 가운데, 토막토막 잘려나가고 있었다.  
 노력한 흔적은 엿보인다. ‘수간주사와 영양제를 투입했다’고 하지만, 고사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한 나무 의사는 말한다.
“잎의 크기와 색깔, 마디 길이, 껍질의 색 등을 보면, 정상인가 이상인가” 판단이 선다고 한다. 마치 엄마가 아기의 울음을 보면서 배고픈 건지, 자리가 불편한 건지, 아파서 우는지를 알아내듯이. 
  더 이상 죽음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지속적으로 생육상태를 확인하면서 위황병 확산 방제를 해야 한다. 선제적이고, 강력하게 차단하기 위한 정밀방제가 요구된다. 소나무 재선충병의 교훈을 잊었는가?
  가로수는 돌아갈 곳이 없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먼 훗날 무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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