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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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나를 돌아보게 하는 도량”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2.0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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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법정사

입춘이 지나야 진짜 새해가 된다고 한다. 그 입춘이 드는 날에 눈이 많이 내렸다. 그래서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홍법정사(주지 관효 스님)로 순례길을 나섰다. 천천히 눈길을 걷다보니 이내 눈앞에 펼쳐진 큰법당으로 향해 나아갔다. 거기에서 부처님과 아라한과 스님을 만나고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편집자주>
 

 

 

 

눈 내리는 날
  


                                              김희정 시인

백의관음 나투시었다
눈 내리는 날

끝없이 펼쳐지는 옷자락으로
가지가지 모양들을 
하얗게 덮어주시고

천개의 손으로
慈藏 慈藏 慈藏
끓는 마음들을 잠재우시는

 

 

 

▲홍법정사로 이어진 길이 눈길이 되었다.

입춘날 아침엔 밤새내린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다. 현관문밖이 불을 밝힌 듯 환하게 보이는 것도 그렇고 항아리 위로 수북하게 덮인 눈이불이 보기에도 복스럽게 보인다. 시인은 이런 눈 내리는 날을 “백의관음 나투시었다”고 하니, 과연 온 세상이 관음의 손길로 제 모양대로 하얗게 장엄을 이룬 듯하다. 
그 장엄된 길을 따라 걸으면서 도심 가까이에 오랫동안 터 잡아 온 홍법정사(주지 관효 스님)를 찾았다. 

▲홍법정사의 눈 맞은 장독대.


누군가 담장 벽에 겨울에도 화사하게 피는 꽃을 그려놨는지, 겨울 눈 맞은 담이 벽화로 화사해 보였다. 그 담장위로 보이는 홍법정사 큰법당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큰법당이란 이름은 누구든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한자가 아니라 한글로 된 것이 인상적이다. 홍법정사 큰법당으로 이어진 계단에는 겨울눈을 맞은 화분들이 종종하게 놓여있고 그 화분이 만들어준 눈길을 따라 가보니 과연 큰법당이 펼쳐졌다. 

▲쌀쌀한 겨울날씨에도 홍법정사 큰법당 안은 스님의 독송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온다.


사시예불을 드리는 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법당 안을 둘러봤다. 홍법정사의 ‘큰법당’이란 이름답게 법당 안에는 부처님과 아라한들이 모셔져 있었다. 불자들을 축원하기 위한 연등도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어 많은 불자들이 이곳을 오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큰법당에 봉안된 부처님 가운데는 아주 특별한 부처님이 모셔져 있기에 순례객의 발길은 이내 그곳에서 멈추게 된다. 1600년대 후반에 조성된 부처님으로 오랜 세월에도 그 빛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이 부처님은 입춘날 불현듯 찾아든 순례객의 마음 또한 평등하게 밝혀준다. 순례객은 환하게 불밝힌 마음을 따라가 두손을 모아 합장하고 발원한다.
“부처님 친견한 공덕으로 내 마음 청정하여지고 나와 더불어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홍법정사에 모셔진 16나한의 모습.


이 오래된 부처님은 참배 온 중생들마다 합장 공경하면서 발원을 하니, 그 행동만이라도 이미 부처님의 가피가 있는 듯 편안해진다. 
불자들이 법당으로 가서 부처님을 뵙고 합장하고 삼배를 하고 스님을 만나 또 삼배를 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선지식을 만나서 한량없이 기쁜 마음과 함께 공경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어떻게 하면 불자들이 부처님의 길을 잘 따라 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길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간절함이 사무칠수록 끝없이 반복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세상 사람들은 마음 둘 곳 없다고 늘 헤매 다니는데 이렇게 금방 아주 가까이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중생들의 어리석음을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분이 바로 부처님이고 스님들이다. 
홍법정사에는 현재 제주불교연합회장을 맡고 계신 관효 스님이 주석하시고 계시다.  홍법정사와 관효 스님과의 인연은 유년시절부터 50년을 훌쩍 뛰어넘는 세월을 함께했을 만큼 깊다. 그러기에 스님은 변함없는 자비심으로 부처님이 중생들을 어여삐 여기듯이 절과 불자들을 아끼고 사랑하신다. 

▲1600년대 후반에 조성된 부처님.


그래서 스님은 불자들이 이 큰법당에 편안하게 마음을 쉬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4년 전부터 불자들이 매주 목요일 저녁에 함께 만나 신묘장구대다라니 108독을 하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있다. 
열심히 정진하는 수행의 향기를 맡으면서 홍법정사를 나오니 순례객이 걸어온 발자국이 눈위로 선명히 찍혀 있다. 스님이 늘 마음에 새겨 넣고 있다는 서산대사의 “눈 내린 들판을 함부로 걷지 말라 훗날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에”라고 경계한 게송이 떠오른다. 이 게송으로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고 후학들의 공부를 경책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시를 떠올리며 문득 눈 위에 찍혀있는 내가 걸어온 발자국은 어떤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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