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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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2.2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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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위한 소도리
여래심 정인숙(본지 객원기자, 포교사)

 진리와의 만남은 깨달음이다. 부처님의 궁극적 가르침이 무엇인지 모르던 시절이다. 그저 맹목적인 믿음이 전부이다. 늘 절에 가면 가족의 무사안녕과 행복을 기원했다. 수십 년 동안 오직 기복신앙에 의지해온 것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 삶의 고통 속에 헤매는 사바세계 뭇 중생들에게 성스러운 진리로 나아가는 방편, 불자로서 올바로 살아가는 방법, 그리고 보리심과 자비심이 싹이 트는 보살의 삶을 살도록 깨닫게 해주는 의미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부처님께 두 손 모아 소원성취 발원을 올린다.
또 불심이 깊은 불자라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궁극적 가르침인 깨달음의 이르는 길을 알아차리기보다는 부처님께 그저 복을 주길 기원한다. 한편 불교를 수십 년 간 믿어온 불자라고 일컬어도 성품은 불심이 의심이 갈 정도로 아상(我相)만 늘어 정작 더 나아진 게 없다. 
지난 8년 전 정성껏 믿어왔던 종교에 갈등이 왔다. 개종을 생각할 만큼 심각하게 헤맨다. 그때 부처님의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는 법연을 얻는다. 처음으로 삶의 고통인 생노병사(生老病死)는 어디에서 오는지, 탐욕과 집착은 왜 생기고, 또 마음을 비우고 열반 할 방법은 없는지, 그리고 삶의 고통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멸할 수 있는지를 부처님께 묻고 또 묻는다. 또한 불교가 전해주는 궁극적 가르침에 확신을 갖기 위하여 누구를 위한 몸부림인지 부처님 진리의 가르침에 더욱 더 목이 마른다. 강한 집념은 차츰차츰 눈을 뜨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부처님의 진리와 불교 경전은 더욱 더 심취되어 간다.
 호기심은 하나하나 초발심에서 깨달음의 이르는 길을 터득하고, 조금이나마 알아차리기에 이른다. 또한 불법과 더불어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새겨듣기도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모르는 건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생활 속에 질문도 던져보고, 삶의 접목하여 비유도 해보고, 진리의 참 뜻을 알아차리면서부터 보리심과 자비심이 일어나고, 사무량심인 자비희사(慈悲喜捨)의 보살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때 가장 먼저 마음속에 담아놓은 불연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최초로 설해 놓으신 ‘고통을 소멸하는 8가지 덕목’ 사성제와 팔정도 이다.
부처님의 진리 사성제(고성제苦聖蹄: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겪는 괴로움, 집성제集聖諦: 괴로움의 일어나는 원인, 멸성제滅聖諦:괴로움의 소멸, 이상적 경지로서 열반(涅槃)이라 한다. 도성제道聖諦: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八正道),즉 팔정도(正語: 올바로 말 하는 것. 正業: 올바로 행동하는 것. 正精進: 올바로 부지런히 노력 하는 것, 正定: 올바로 마음을 안정 하는 것, 正思惟: 올바로 생각하는 것, 正命: 올바로 목숨을 유지 하는 것, 正見: 올바로 보는 것, 正念: 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가 불법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던 때 만난 법연이기에 더욱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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