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향 수필- “백무동 골짜기에 아직도 물레방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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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향 수필- “백무동 골짜기에 아직도 물레방아가 있을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3.0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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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자(혜향문학회 회원.수필가)


살랑살랑 봄바람 일기 시작하면 열병이 도진다. 가고 싶고, 보고 싶은 절절한 그리움의 목마름, 그게 열병의 시초다. 그런데 올해는 몇 번씩 열병을 앓았다. 천지라이온스 부인회에서 지리산 온천여행 이야기가 오가면서 마음은 벌써 풍선을 타고 지리산 백무동과 뱀사골 골짜기를 누비고 있었다. 
이십대 초반, 지나치게 폐쇄적이고 염세주의적 사고에 빠져 도무지 산다는 것이 죽음보다 의미가 없었다. 약국을 전전하며 수면제를 사 모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술에 청산가리를 타서 먹을까?’ 생각은 온통 죽음밖에 없었다. 우연히 한라산 고사리 사러 오신 지리산 고사리장사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덕전리 송알부락’ 일곱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지리산 자락으로 들어섰다. 누우면 도랑물 돌돌거리는 소리가 두고 온 인연들을 아프게 했다. 어쩌다 사람이 그리우면 마천까지 걸어 마실을 다녀왔다. 산을 이고 사는 화전민들은 일부러 불을 내어 밭을 일구고 산나물 캐어 삶을 챙겼다. 그곳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다슬기 잡으러 냇가에 갔다가 발견하고는 어느 신대륙 발견한 사람처럼 놀랍고 신기해 탄성을 질렀다. 틈만 나면 물레방아를 찾았다. 
‘나도향의 물레방앗간’을 그려보며 가슴에 물기가 촉촉하게 차오르는 설렘을 즐기고 있었다. 저 혼자 돌리던 물레방아도 인기척에 신이 났는지 내가 가면 한층 소리를 키웠다. 지천에 주전부리로 가득했다. 돌나물을 야생풀쯤 하찮게 여겼는데, 고추장과 참기름에 쓱쓱 비벼 비빔밥 해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김치, 겉절이, 냉국 맛 또한 놀라웠다. 진달래 술 담그고 화전 부치고, 쑥 뜯어와 부침개에 막걸리 한 사발은 염세주의적 사고를 우습게 만들었다. 가을에 잣을 몇 마대 수확했는지 모른다. 지리산 허리에 잣나무는 먼저 점령하는 자가 주인이었다. 무료한 날엔 발이 아프도록 뱀사골과 백무동 계곡을 누볐다. 그리고 꽃을 따 냇물에 띄워놓고 멋대로 달리기 내기를 하곤 하였다. 
스물세 살의 봄은 그렇게 익어갔다. 그래도 몇 할은 죽음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광주에서 온 언니 배웅해주러 남원 다녀오는 길에 냇가를 가로질러 뚝뚝 던져 놓인 돌다리를 보았다. 신기해 건너 가보니 신라고찰 ‘실상사’였다. 보광전 앞뜰 몇 아름 되는 자목련이 봄비에 젖고 있었다. 마침 내가 간 날은 봄비 온 뒤라 봄바람에 툭툭 떨어져 내린 붉은 꽃봉오리가 피를 토하는 것 같았다. 오랜 세월 꽃피고 새순 틔우고 초록이 무성해 그늘 되고 단풍 들며 한결같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을 노목을 보며 운명처럼 짐을 풀었다. 논 가운데 대나무 숲으로 둘러쳐진 해우소에 가면 밑이 안 보였다. 일 본 후 재를 뿌리고 쌓인 줄 모르게 퍼다가 거름으로 사용했다. 단청 입히지 않은 보광전의 맑음은 아름다웠다. 뜰에 탑, 연못, 나한들이 가득 찬 명부전, 풍경 고운 극락전, 철불여래좌상이 모셔진 약사전, 늘 찰랑찰랑 차가운 물이 넘쳐나는 샘물가, 뒤켠의 달맞이꽃 군락, 대나무 숲의 속삭임, 논에서 개구리 합창까지 나를 들여다보게 하였다. 논 가운데 있는 절이라 매몰위기에 있어 천일기도 중이었다. 새벽 세 시 이십 분이면 일어나 덜 떠진 눈을 비벼가며 찬물에 물방울만 묻히고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보광전, 약사전, 명부전, 극락전 다기에 물 얹고, 촛불 켜고 향 사르면 도량을 돌고 오신 스님께서 깊고 분명하신 목소리로 새벽예불을 하신다. 나의 허물투성이인 마음 상처들이 소독하는 것처럼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가끔은 쏟아지는 잠 때문에 촛불에 머리 태우기도 하고 탑돌이에 헛디뎌 연못에 빠지기도 했다. 무안해 하는 내게 스님은 ‘가시나무에 걸어져 있어도 잠이 쏟아질 나이지.’하신다. 효험 좋은 약사여래 님 덕분에 실상사는 아픈 사람들 수양행렬이 늘 이어졌다. 요사채 보살님과 시자인 나는 부엌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처음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숙맥이었다. 풀 곱게 쑤어 이불과 장삼에 풀 먹여 널고 손질하며 씨 뿌려 잡초 뽑고 벌레 잡는 일, 감으로 식초 담는 일까지 끝이 없었다. 일상이 바쁘니 죽음과 자연히 멀어졌다. 
지리산 가다가 하룻밤 묵고 가는 객 스님들 입담은 얼마나 귀를 쫑긋하게 하는지 취침시간을 어겨 큰스님께 야단도 맞았다. 송광사 농사감독 홍산 스님과 불일암의 법정 스님을 만난 인연으로 몇 번 법정 스님 뵙고 해탈차를 마신 기억이 생생하다. 차츰 감히 ‘이뭣고’가 무엇인지 안개 속을 헤집고 나오는 순리를 깨닫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 심술과 투정을 부렸다. 다정한 신혼부부가 오면 마당청소한다고 먼지 풀풀 날리며 법석 피우고 차 내오라 하시면 뜨겁게 해 스님을 난처하게 만들고 민물고기 몰래 먹고 배탈 나 골방에 며칠 벌서기도 했다.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지 않아도 공부가 되었으며 사색하고 번뇌하며 기쁨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눈 뜬 ‘일레 강아지’를 만들어 주었다. 
볼혹 속에 있으면서 내가 이만큼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스물세 살 한 해를 함께 했던 인연 덕분 아닌가 싶다. 
결핵을 앓던 청암 스님의 맑은 독경 소리, 비탈을 탈 때마다 손 내밀어 주신 혜광 스님, 친구가 되어준 윤 거사님께 ‘바람 편에 안부 전합니다. 더불어 잘살고 있답니다. 가끔 그곳 소식을 접하면 눈물이 납니다. 제 마음엔 언제까지나 여전히 징검다리와 해우소 대나무 몸 비비는 소리와 개구리 합창, 달맞이꽃밭이며 자목련이 있습니다. 제 뜰에 다 들여놓고 삽니다.’ 예쁘게 늙어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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