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법문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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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불교법문 (37)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3.14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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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념처④ :‘마음챙김’는 공부의 요점

마음챙김는 공부의 요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마음챙김의 대상은 나 자신이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챙기는 것이다. 내 밖은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해탈·열반은 내가 성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념처경』(D:22)에서는 나 자신을 몸·느낌·마음·법으로 나눈 뒤 이를 다시 몸은 14가지, 느낌은 9가지, 마음은 16가지, 법은 5가지로 더욱 더 구체적으로 세분해서 모두 44가지 대상으로 나누어 그 중의 하나를 챙길 것을 말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하여 때로는 밖, 즉 남의 몸·느낌·마음·법에 마음을 챙기라고도 하시고, 때로는 나와 남 둘 다의 몸·느낌·마음·법에 마음을 챙기라고도 하신다. 그러나 그 출발은 항상 나 자신이다.
  ≪둘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개념적 존재paňňatti의 해체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 등에서 마음챙김의 대상을 몸·느낌·마음·법으로 해체해서 제시하시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 내 것, 산, 강, 컴퓨터, 자동차, 우주 등의 개념적 존재를 해체할 때 무상·고·무아를 보편적 특징[共相]으로 하는 법dhamma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법의 무상·고·무아를 보면 존재를 두고 갈애와 무명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해체는 중요한다. 해체의 중심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 중생들은 무언가 불변하는 ‘참 나’를 상정하고 그것을 거머쥐려 한다. 이것이 모든 취착 가운데 가장 큰 취착이다. 해체하지 못하면 개념적 존재에 속는다. 해체하면 법을 보고 지금 여기에서 해탈·열반을 실현한다.
  ≪셋째≫ 마음챙김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통합하고 있다. 불교의 수행법은 크게 사마타 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으로 구분된다. 사마타 수행은 삼매 수행과 동의어로 지(止)로 한역되었고, 위빠사나 수행은 통찰지 수행과 동의어로 관(觀)으로 한역되었다. 지관(止觀) 수행은 중국 불교를 지탱해 온 수행법이기도 하다.
  집중[止]이든 관찰[觀]이든 마음챙김 없이는 닦을 수 없다. 사마타는 표상이라는 개념적 존재를 대상으로 하고, 위빠사나는 찰나 생 · 찰나 멸하는 법을 대상으로 한다.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 마음챙김 없이는 표상에 집중하는 사마타도, 또 법의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위빠사나도 있을 수 없다. 마음챙김은 이 두 가지 수행을 관류하는 공통적 심리현상이다. 그래서 「불火 경」(S46:53)에서 “마음챙김은 항상 유익하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넷째≫ 「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와 『대념처경』은 사성제를 관찰해서 구경의 지혜를 증득하는 것으로 결론 맺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무상·고·무아의 세 가지 특상 가운데 고苦의 특상과 그 원인集과 소멸滅과 소멸에 이르는 길道을 꿰뚫어 아는 것으로 해탈·열반의 실현을 설명하고 있다.
  『청정도론』에 의하면 해탈에는 세 가지 관문이 있다. 그것은 무상·고·무아이다. 무상을 꿰뚫어 알아서 체득한 해탈을 표상 없는 해탈-無相 解脫이라고 하고, 고苦를 꿰뚫어 알아서 증득한 해탈을 원함 없는 해탈-無願 解脫이라고 하고, 무아를 꿰뚫어 알아서 요달한 해탈을 공한 해탈-空 解脫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마음챙기는 공부는 고苦를 통찰하는 원함 없는 해탈로 결론짓는다고 할 수 있다.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그것은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한다.” - 「욕망의 빛바램 경」(S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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