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같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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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같은 마음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3.14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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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덕스님의 마음법문

저 푸르고 드넓은 바다는 세상의 모든 흐르는 물을 흘러오는 대로 받아들인다.
이 바다에 비해 사람이 마음 씀씀이가 좁을 때는 바늘구멍도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작을 때가 있다. 그리고 어느 때는 태평양의 바다처럼 한 없이 크고 넓어 질 때도 있다. 
왜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수시로 자꾸 변하게 되는 걸까! 그것은 한 마음 안에 두 가지의 생각들이 교차하며  달라지는 것이다. 대 자비심인 부처심과 어리석은 범부인 중생심의 작용으로 인해 그 사람이 찰나 어떠한 마음을 내느냐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내 마음이고, 내 한 생각에 따라 변화하고 중생도 부처도 한 마음에 달렸다. 깨달음을 향한 보리심과 해탈도 내 한 생각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한 생각이 육신인 몸뚱이를 움직이며 선업을 지어 복을 짓고 또 악업을 지으며 인과응보를 만들어 낸다. 들고나는 호흡 속에서 마음의 작용과 묘용을 하는 것도 모두 주인공 자리이다. 한 마음의 나툼이며 자성불의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평소에 마음을 잘 쓰는 사람은 사람의 몸을 받아 공덕과 복을 짓지만 생각을 잘못 내는 사람은 중생을 벗어날 수가 없다. 중생계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깨달음은 더욱 더 멀어진다. 그리고 평생을 물질의 노예가 되어 탐, 진, 치라는 늪 속에 스스로 빠져 헤어 나오질 못한다. 
우리는 육신의 주인으로서 살아야 하며 자유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회광반조하며 스스로 매일 자성을 되돌아봐야 한다. 남은 생에 대한 회향심과 보리심을 발해야 한다. 
공부 초기시절에는 발심하며 “꼭 깨달음을 얻으리라” 는 발심과 원력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점점 세월이 지나면서 어느덧 나도 모르게 초심의 마음을 잃어버리게 된다. ‘초발심시 변정각’이라 했다. 처음 발심한 마음이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모든 사부대중은 다시 초심의 마음으로 새로이 되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선정, 정진, 인욕하며 공부하여 닦아야 한다. 자비의 선으로 가는 길을 걷고 마음을 크게 쓰고 넓게 가지며 자비심을 내야 한다. 마음공부는 닦는 길이며, 행원의 길이며, 보시의 길이며, 자비의 실천이다.
불법은 깨달음을 구하며 보이는 중생과 보이지 않는 중생과 그리고 사생의 중생들 모두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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