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4·3유복자와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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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4·3유복자와 아버지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3.1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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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포교사/제주4.3희생자유족회서귀포시지부회장)

내 나이와 4·3의 나이는 동갑내기다. 우리 둘은 잉태 할 때부터 시국을 잘못 만났으나 친구사이다. 당시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이 벌인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 해방된 조국은 남과 북으로 둘이 되었고 이남을 점령한 미국은 한마디로 통치를 잘못한 결과물이 곧, 4·3의 발생원인 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저명한 부르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글을 통해 당시 미군정의 실정은 초반부터 야기되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한국을 점령하자마자 일본제국주의 강제점령시대 관청에서 근무했던 경찰을 비롯한 친일 기득권자였던 매국관리들을 그대로 이전받아 동반자로 삼고 조선인 중심의 새로운 중도적 정치세력을 무력화 시켰다. 
 광복에 대한 열망은 새 것을 추구하는 백성들이 시각으로 볼 때 기대가 컸으나 강점기와 달라진 게 없는 현실은 백성의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다. 실직난, 식량난, 경제난, 관리들의 모리행위 등이 사회문제로 부각됐으며, 결국에는 4·3으로 이어졌다. 
 유복자인 나 역시 그 4·3의 범주 속을 맴돌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새 생명으로 자라났다. 세상에 태어나서 철이 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삼다의 섬이 말해 주듯 이웃이 삶 속에는 어머니들만 보인다. 4·3에 아버지들이 희생됐기에 나타나는 가혹한 현실은 육지에서 보기엔 그저 여자가 많은 섬일 뿐이다.    친구의 가정에는 간혹 누리고 있는 아버지가 보이질 않는다. 왜 안계실까 하면서도 어린 나에게는 어머니라는 큰 우산이 이대 독자인 나를 끔찍이도 품어 주셨기에 태어날 때부터 안 계신 아버지의 그리움을 덜 했을 것이다.
 무심한 세월은 그냥 흘러갔다. 교과서에도 없는 4·3을 어머니로부터 듣고 아버지께서 4·3에 행방불명이 됐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다. 동네에서 총명하다고 칭찬이 자자했던 아버지는 스무 살 나이였다. 산에서 내려와 자수하면 용서한다는 선무작전에 하산했고 경찰서로 끌려 갈 적에 곧바로 조사받고 집으로 돌아오겠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은 영영 이별이 되고 말았다. 결과는 당시 소년원인 인천형무소에 수감됐고 6·25 이후 행방불명되셨다.  
 이제 내 나이 70이 돼서 아버지를 그려본다. 꽃다운 청춘! 아들 하나 잉태하고 가혹한 시절인연 때문에 지금 껏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계신다. 지금 어디에 가 계실까? 치아는 건강하여 진지는 잘 잡수고 계실까? 병고는 없을까? 부질없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더는 묻고 싶지 않다. 
 4·3당시 희생하신 어질고 착하게 살다 간 이 땅의 아버지들!  210명이나 되는 유복자 자식들이 처음으로 합창하여 목 놓아 불러봅니다. 아버지~
 그리고  4·3희생자 제위시여!
임들은 정말 훌륭한 삶을 사셨습니다. 맑고 깨끗한 임들의 영혼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시신마저 돌아오지 않는 영구 미제사건인 4·3의 완전한 해결은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산자의 몫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서쪽 하늘에 다시 태어나 아미타 부처님 품에서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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