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향 문학 - 오직 모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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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향 문학 - 오직 모를 뿐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4.0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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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명 철(직전 혜향문학회장)

문학의 밤 행사장 가는 길이 얼어붙었다. 날을 잘못 선택했나 보다. 그래도 행사장엔 회원과 축하객으로 자리를 가득 매웠다. 반갑고 기쁘다.
장내는 문학 열기로 후끈 거렸다. 성공적인 마무리에 흥을 돋았다. 밖은 겨울인데 안은 봄이었다. 행사를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시린 손을 넣고 야외주차장으로 향하던 길, 계단을 내려섰다고 생각하며 한 발을 내디뎠다. 모밍 허공에 떠올랐다. 육신이 썩은 나무토막처럼 뎅강 넘어지고 말았다. 춥다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것도 탈이었다. 얼굴에는 피가 흐른다.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함께 있던 ○선생이 휴지를 꺼내 건네며 병원으로 급히 차를 몬다. 
낙상사고, 내가 잘못이라도 저질러 신장이 노여움을 산 것일까! 개회 인사말에서 시심작불(是心作佛)을 얘기하며 언젠가 나도 부처가 될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한 게 오만이었던가 보다. 참선 수행도 하지 않으면서 그 성스러운 말을 내뱉은 게 죄라면 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장님이 방망이 한 대를 내려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응급실 수술대에 위에 누었다. 안경이 조각났지만 내 눈에 상처를 않았음을 알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감고 조상신, 천신, 지신,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감사했다.
응급처지를 받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의사는 “코뼈에 약간 금이 갔습니다. 내일은 이비인후과를 찾아가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큰 문제가 없음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응급실을 나섰다. 
늦은 밤의 귀가. 기다리던 집사람은 내 모습을 보고 이게 무슨 변고냐고 깜짝 놀란다. 그도 그럴 것이 코는 주먹코가 되었고, 뺨은 긁히고 멍들어 붉으죽죽했다. 멀쩡한 얼굴로 나가 부상자로 돌아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나는 일그러진 미소를 태연스럽게 말한다.
“하마터면 당신 홀어미 될 뻔했어. 콘크리트 길 바닥에 헤딩을 했거든, 하지만 입원도 하지 않고 이렇게 돌아왔으니 당신 기도 덕분이라.” 그렇게 능청을 떨며 껄껄 웃었다. 집사람은 “경전 독송을 열심히 한 당신 덕이우다.”라며 합장을 한다. 
손을 씻고 자리에 누웠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다. ‘큰 부상이 없음은 집사람의 기도와 나의 독경의 덕일지도 모른다. 신장님이 한 방망이 친 것이 아니라 큰 액운을 막아준 게 아니던가.’ 마음이 여기에 이른 순간, 나의 신앙태도가 이중적임을 깨닫는다. ‘불자는 부처 행을 해야 한다. 그러나 부처에게 복을 구하려는 불자들이 많다. 그것은 옳은 신앙태도가 아니다.’라고 늘 기복신앙을 비판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 또한 복을 구하고 있음이 아닌가 싶어 스스로에 놀란다. 구하면 괴롭고 구하지 않으면 즐겁다(求卽皆苦 無求乃樂)라는 현자의 말을 떠올리며 참회진언을 염하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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