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마음공부…그 안에 공덕과 복덕이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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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마음공부…그 안에 공덕과 복덕이 가득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4.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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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 지선 스님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대한불교조계종 삼광사(주지 현명 스님)는 지난 4월 1일 향적전 낙성 및 삼광사 소장 제주도유형문화재 제25호 보살좌상을 점안의식 후 봉안했다. 이날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학봉 지선 스님이 증명한 가운데 법요식에서 스님이 설한 법문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편집자주>

 

불자들이 깨달음에 연연하시면 공부에 큰 장애가 됩니다. 부처님은 일체중생이 불성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이 세상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입니다. 개개인의 존재는 우주에 완벽한 모습입니다. 깨우쳤든, 안 깨우쳤든 우리는 자기 나름대로 역할과 의미를 갖고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발길에 차이는 돌들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존재하는 모두가 그물코처럼 얽혀있습니다. 내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의 분신이고, 생명입니다. 그래서 서로 아끼고, 존중할 때 세상은 함께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이날 참가 사부대중이 삼귀의를 봉독하고 있습니다.
불교는 마음이 부처님이고, 마음이 법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따로 있지 않고 구분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새롭게 점안하여 모신 부처님은 보고 만질 수 있도록 표현할 뿐입니다. 나무로, 돌로, 청동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분별심을 내는 속 좁은 사람들의 표현입니다. 인간의 성스럽고 영원불별한 공덕이 있는데 이것이 표현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참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무한히 정진해야 합니다. 피카소도 “예술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사기”라고 말했습니다.
서양의 철학자들은 불교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칭찬도 같이하지만 이것이 다 옳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불교는 칭찬을 하든, 비판을 하던 우주에 충만해서 존재합니다. 학자들은 자기 지식에 의해 말을 지어낼 뿐입니다.
지식은 자기 나름대로 알음알이가 생깁니다. 이에 더 나아가 수행을 통해서 이론과 삶이 하나가 될 때 진짜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마음이 부처이고, 우리가 의지할 피난처입니다. 세계의 유명한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회의를 갖고, 달라이라마 존자를 모시고 들었던 내용이 바로 불교의 ‘유식론(唯識論)’입니다. 유식을 공부하면 현대문명의 나아갈 방향이 보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명상이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3월 31일 카이스트(KAIST)에 명상을 과학적으로 접근해 연구 수행하는 ‘명상과학연구소’가 개소했습니다. 일반인과 각급 학교를 대상으로 다양한 명상 교육 프로그램을 보급키로 한 것입니다.
제가 명상과학연구소를 참석했는데 이날 세계유명 학자들도 많이 왔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를 위한 시설 같았습니다. 그런 분들은 자기 생각들과 세계관이 많습니다. 인간의 순수한 심성을 못 드러내기 때문에 실패 할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는 예시당초 사이버 종교였습니다. 차원과 경계의 구분이 없습니다. 우리 마음은 공간을 초월합니다. 그것이 4차원 세계입니다. 우리의 심성, 불성자리가 그 마음이 근본입니다. 번뇌, 망상을 지나서 더 깊이 들어가면 상당한 철학적 분별심도 다 떠난 그 자리가 우주천체를 하나로 형성하게 되는데 불생불별의 자리입니다.
무(無)와 공(空)이 교차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만 가지 조화가 이루는 그 자리까지 가야합니다. 이는 하늘과 직거래를 하는 겁니다. 불교를 수승한 인연으로 만났기에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늘과 직거래가 되느냐. 마음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마음공부를 하면 현대에 모든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열립니다. 아무리 문명이 발전해도 마음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우리의 어리석음, 걱정 등에서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팔정도를 통해 마음을 닦아 나간다면 마음에 끄달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불교입니다.
본래 우리는 불생불멸 할 수 있게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재물욕(財物慾), 명예욕(名譽慾), 식욕(食慾), 수면욕(睡眠慾), 색욕(色慾) 등 오욕칠정(五慾七情)에 지는 겁니다. 현실을 살면서 생존논리에 나약해집니다.
사계절 안에서 봄꽃은 금방 지듯이 우리도 현실 앞에 논리주의자가 됩니다. 그렇다보내 성인들의 가르침은 늘 뒷전입니다. 사찰에 와서 큰스님의 법문을 들어도 일주문 밖을 나가면 다 잊어버립니다. 인간은 오욕칠정의 비본질적인 생존논리에 의해 피폐해 지는 겁니다.
‘눈에 의한 번뇌가 나를 흔드는 구나. 이것은 육근이 하는 거야’라고 바로 알아차리셔야 합니다. 마음이 주인이 되어서 6가지 감각작용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의 힘입니다.
마음이 부처이고 마음이 법입니다. 일심(一心), 한마음, 성불의 이치입니다. 마음이 있는 자는 성불합니다. 그래서 마음 밖에서 무엇을 구하려 하지 마십시오. 공덕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파악할 때 이길 수 있습니다. 마음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늘 마음은 근심 걱정하게 됩니다.
성인들의 마음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중생들은 말이 많습니다. 유를 말하면 유에 집착하고, 공을 말하면 공을 집착합니다. 아는 것 가지고 자기를 합리화합니다. 이는 처세주의자, 인기주의자입니다. 그것으로 위장하며 사는 것입니다. 마음 공부한 사람은 딱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 사람의 속은 오욕칠정에 현실 논리만 존재합니다. 그것을 타파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은 말로 다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했다는 수행자가 자신이 깨달았다고 그것을 발설을 했다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깨달은 수행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생존논리를 다 극복해야 합니다. 불교는 과학이자, 비 과학입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을 옭아매게 됩니다. 부처님의 법에 의지해서 마음공부를 하면 마음이 맑아지고, 6가지 감각기관이 순수해 지면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려면 자기 생각을 모두 내려놔야 합니다. 저 역시도 그랬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저는 이를 연구하다보니 민주화가 바로 부처님의 불성입니다. 민주는 남을 침탈하지 않고 남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는 내가 곧 너의 생명이 평등하다는 뜻입니다. 민주의식을 갖지 못한 사람이 보살행을 할 수 없습니다.
불교는 처음부터 깨달음을 가르칩니다. ‘참선’이 어떻고, 공이 이렇고 하다보니 처음에 접근이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실천지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성제와 팔정도의 바르게 이해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르침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습니다. 이 같은 공부를 안 하면 헛발질하기 일쑤입니다. 
마음공부가 불교입니다. 그 안에 공덕과 복덕이 있습니다. 그 이치를 잘 모르면 운명론자, 숙명론자가 됩니다. 그러나 불교를 공부하면 사자팔자가 바뀝니다. 마음공부를 잘 하십시오. 마음공부를 조금 했는데 성불한 분이 계시다면 그것은 분명 점쟁이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일체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그림자요, 물거품과 같습니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라는 진실, 그 경계에 빠지면 그대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한시도 그 수행을 멈추면 안됩니다.
우리는 화살을 맞지 않아야 합니다. 화살은 누가 불러들이느냐. 일시적인 현실논리, 생존논리가 끌어들입니다. 부도가 났거나, 지인에게 사기를 당하는 어려운 시기에 화살을 맞습니다.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화살이 많이 날아듭니다. 그래서 늘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명예와 돈에 노예가 되다보니 화살을 맞는 겁니다. 자연스레 남을 원망하고 미워해서 그렀습니다. 재산이 있는 사람은 재산으로 병을 얻습니다. 소유는 순간인데 큰 화살이 되어 돌아옵니다.
그럼, 어떻게 화살을 맞지 않는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가셨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삶에 존재의 이유를 잊어버립니다. 하지만 우리 눈에서만 사라진 것일 뿐입니다. 금생에 인연만 끊어진 것입니다. 이를 한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빨리 포기를 잘 하십시오. 그것이 빨리 치유하는 길입니다.    

                  /=정리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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