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와 통하는 문을 걸어 잠가 극락에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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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와 통하는 문을 걸어 잠가 극락에 온 듯하다
  • 이병철 기자
  • 승인 2018.04.1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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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명 스님이 내린 참선의 자세, 화두 드는 법에 환희심

백흥암으로 가는 길, 봄의 생명력이 움트는 ‘환상의 길’

 

제주불자들은 지난 7~8일 제주불교신문이 주최한 성지순례길, ‘제주출신 고승들의 수행처를 좇다’를 통해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선방문화를 만끽하며 ‘참 불자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은 봉암사 마애불에서 두 손을 곱게 모은 제주불자들.

이번 ‘제주출신 고승들의 수행처를 좇다’ 성지순례 프로젝트는 제주출신 큰스님들이 전국 불자들로부터 존경받는 그 모습을 제주불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하는데서 출발했다. 큰 스님들의 수행이야기를 듣고 체험하며 제주지역에 색다른 성지순례의 이정표를 세운다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적명 스님은 선방 수좌들로부터 ‘수좌 중의 수좌’라는 칭송을 받는다. 선원에서 정진하는 수좌들에게 높은 신망을 받는 적명 스님이 제주출신이라는 점을 제주불자들에게 인연 짓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적명 스님의 할아버지는 근대 제주불교의 어둠을 밝힌 김석윤 스님이다. 사실 김석윤 스님은 제주불교 중흥조 안봉려관 스님과 관음사 창건에 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1909년 제주의병항쟁의 주역이다. 적명 스님을 통해 제주불교 100여년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주불자들에게 열어주고자 했다. 1년 한번 부처님오신날에만 산문을 여는 조계종 종립선원 봉암사의 상징적 의미보다는 그 안에 수좌로 전국의 선방 스님들로부터 존경받는 적명 스님을 통해 제주불교 100년의 역사를 말하고 싶었다.

청주공항에서 1시간 30여분을 달려 봉암사 입구의 검문소에 다다르자, 버스를 제지한다. 타 사찰의 경우 문화재 관람료 징수 때문에 제지를 하지만 봉암사는 1년에 한번 개방하는 사찰답게 일일이 검문을 했다. 종무소와는 사전에 이날 참배한다고 연락이 닿았지만 봉암사 검문소(?)의 거사는 “어떻게 왔느냐”고 꼬치꼬치 물어댄다. 결국 통과는 됐지만 봉암사가 결코 쉽게 올 수 없는 선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적명 스님은 최고의 선방인 만큼 ‘참선’과 ‘무아’의 바른 뜻과 같은 평소 의문나는 것들에 대한 제주불자들의 질문에 명쾌한 답과 더불어 참선의 자세와 수행법 등 참선에 대해 법문을 설했다. 몇몇 불자들은 스님의 말씀이 어려웠을지 모르나 60여년 가까이 오로지 참선 수행에 매진해온 그 깊이감이 느껴진다. 이제 제주불자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창가 쪽으로 향해 가부좌를 틀었다. 비록 짧은 좌선 시간이었지만 최고의 선방에서 선정에 든 그 자체만으로도 환희심이 일었다. 봉암사를 가르는 물줄기 소리, 새봄의 생명의 눈뜸을 알리는 잎사귀들이 소곤거림 같은 바람소리도 이 순간만큼은 잠시 멈춘 듯 모든 게 평화로웠다.

이에 앞서 제주불자들은 아름다운 길, 봉암사 ‘마애불’을 참배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꽃샘추위로 몸은 얼어붙었지만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 따뜻해졌다. 봉암사 경내를 벗어나 계곡에 걸린 침류교를 건너자, 천천히 오솔길로 접어든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져, 자연이 들려주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이런 자연의 소리를 어느 누가 따라할 수가 있을까?

좁은 길을 걷다가 보니 나무뿌리가 땅위로 솟아나와 마치 문양을 만들어 놓은 듯하다. 자연의 흙을 밟는 즐거움,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부드러움이다. 바위 사이를 지나니 그곳에 백운대가 자리하고 있다. 마치 극락세계에 온 듯 태곳적 신비감이 그대로 배어있는 마애불에서 제주불자들은 몰록 이번 성지순례의 참 의미를 깨닫는다.

다음날인 새벽 4시 30분 은해사 템플스테이관. 새벽예불과 나를 찾는 108배로 신심을 무장한 제주순례자들은 오전 8시가 되자 영화 ‘길 위에서’의 배경이자 비구니 스님들의 대표 선방인 ‘백흥암’으로 향했다. 물론 은해사 연수국장 스님의 안내로 제주불자들이 그 길에 나섰다.

백흥암으로 향하는 봄은 또 달랐다. 봄은 우리 마음에도 찾아왔지만 지난겨울을 견뎌낸 나무들의 봉오리를 비집고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것이 봄이 가진 생명력이다. 그 길에 만난 봄, 진달래와 산수유의 색은 더욱 진하다. 속세에 헝클어진 머릿속도 맑게 헹궈줄 것 같은 상쾌함에 온몸이 찌르르 울린다.

백흥암으로 출발하기 앞서, 은해사 템플스테이관 앞에선 제주불자들.

백흥암도 찾고 싶다고 언제든 찾을 수 있고 보고 싶다고 언제든 볼 수 있는 그런 암자가 아니다. 백흥암의 비구니 스님들은 속세와 통하는 문을 걸어 잠근 채 평소 수행에만 정진하기 때문이다. 굳게 닫힌 백흥암의 산문은 1년에 단 두 번, 부처님오신날과 우란분절(백중)에만 속세 사람들을 들여보내기 때문에 ‘묵언’을 당부하고 또 당부했다.

은해사 북서쪽으로 숲길을 따라 2.5km를 걸었다. 40여분의 시간동안은 어쩌면 이 길은 현세에서 피안에 이르는 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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