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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달마산 미황사 (2)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사찰순례(61)

미황사는 어느 계절 아무 때 가더라도 아름다운 경치에 만족할 수 있는 절이다. 문화유산 채널에서는 미황사의 아름다움으로 달마산의 흰색 수직 암봉, 미황사의 불상과 천불도, 그리고 미황사에서 바라본 황금빛 석양 세 가지를 꼽는다. 달마산의 암봉과 석양은 자연이 만든 것이지만 대웅보전에 있는 불상과 천불도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아니 달마산의 암봉과 석양도 인간이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미황사를 세운 이가 그런 아름다움이 깃든 자리에 터를 잡았기 때문이다. 

▲대웅보전 마당에 괘불을 걸고 괘불재 올리는 모습


미황사의 세 가지 아름다움 중 대웅보전에 그려진 천불도는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천불도는 화폭에 천 명의 부처님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 각각 천 분의 부처님이 있어서 모두 삼천 분이지만 천불도는 대개 현재의 천불을 대상으로 한다. 천불도 중 잘 알려진 것으로는 현재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고창 선운사에서 봉안되었던 다섯 폭으로 이루어진 천불도와 한 폭에 천 분의 부처님을 그린 예천 용문사의 천불도가 있다. 미황사 천불도는 이들 불화처럼 거는 그림인 탱화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대들보와 공포 위의 벽면 총 23곳에 그려졌다. 그런데 나무나 벽면에 그대로 그린 것이 아니라 먼저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나무와 벽에 붙인 첩부벽화이다. 대웅보전이 중수된 1751년(영조 27)에 가까운 어느 시점에 그려서 붙여진 이후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종이에 그렸기 때문에 벽면에 직접 그린 것에 비해 표현이 훨씬 섬세하다. 대들보에 그려진 부처님을 제외하고 나머지 벽면의 부처님 그림은 습기 등으로 말미암아 일부 떨어지는 등 훼손이 진행되어 지금은 떼어 내어 보존처리를 하고 있다. 2017년 문화재청 대상 국정감사에서 이 천불도가 졸속으로 수리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즉 일부 그림을 떼어서 보존처리하는 과정에 세심하게 다루지 않아 그림 일부가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지적하는 쪽과 보존처리하는 쪽 양측의 입장이 있겠지만 보존은 어떤 경우든 유물 손상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중국에 있는 진시황릉의 경우 무덤을 건설할 때부터 많은 전설이 전하고 있고, 무덤 인근 지하에서 발견된 진시황릉을 지키는 병마용의 규모가 엄청나서 진시황릉을 발굴하면 얼마나 대단하겠냐는 기대가 있었다. 권력자나 고고학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생전에 발굴을 하고 직접 눈으로 보기를 바라겠지만 과거 마오쩌뚱이나 지금의 시진핑 주석은 아직은 발굴 기술이 부족하다고 하여 발굴을 미래의 후손들에게 미루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문화재는 우리 세대만의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미래 세대가 공유해야 하는 유산이라는 것이다. 만일 보존이 시급하다고 급하게 다루었다면 남은 것들은 좀더 여유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고, 정부에서는 문화재 보존에 더 많은 예산과 전문가를 배정하여 문제를 최소화 해야 할 것이다. 

▲대웅보전 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 새겨진 연꽃잎, 게와 거북


이 천불도와 관련하여 미황사를 찾는 이들에게 전해지는 말이 있다. 대웅보전에서 부처님께 세 번만 절을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대웅보전 안에 천 분의 부처님이 있으니 세 번이면 삼천 배를 한 셈이니 어떤 소원이든 이뤄지지 않겠냐는 얘기다. 한 번이든 세 번이든 삼천 번이든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 횟수는 아닐 것이다. 
미황사의 숨겨진 매력 중 하나는 대웅보전 불단 뒤에 모셔진 괘불탱에 있다. 괘불은 야외 법회를 할 때 거는 불화를 말한다. 오늘날에는 많은 신도가 찾는 초파일 행사나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한 행사 때 괘불을 괘불대에 걸고 의식을 치른다. 미황사는 바다 가까이에 자리했기 때문에 수륙재에 주로 사용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인근에 사는 사람들은 가뭄이 심할 때 미황사 괘불을 걸고 기우재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리는 영험한 괘불이라고 말한다. 1989년 기우재에서는 재를 올리는 도중에 고대하던 비가 내려서 괘불이 비에 젖어 색상 일부가 손상되었다고 한다. 1993년에 시주를 모아 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주지인 금강 스님이 오신 후에는 2000년부터 매년 10월에 대웅보전 앞마당에 괘불탱을 걸고 괘불재를 올리고 있다. 이 행사는 인근 주민의 경우 그해 수확한 음식을 올리고 타지인까지 참여하여 산사 음악회까지 진행되는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을
기우재을 올리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1727년에 제작된 미황사 괘불. 2017년에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목포 MBC가 주관하여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한 달 간 ‘바닷속 영혼을 구원하는 부처, 괘불’ 테마전이 열리기도 했다. 전시 기간 중에 미황사 주관으로 수륙재를 봉행하였는데 세월호로 희생된 넋들도 함께 천도했다. 

▲기우재을 올리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1727년에 제작된 미황사 괘불


미황사 괘불은 14폭의 삼베를 이어 만든 것으로 전체 크기가 가로 4.85미터, 세로 11.9미터로 큰 그림이다. 2002년에 보물 제1342호로 지정되었다. 1727년(영조 3)에 38명이 시주하고, 탁행(琢行), 설심(雪心), 희심(喜心), 임한(任閑), 민휘(敏輝), 취상(就詳), 명현(明現) 7명의 화원이 공동 작업하여 그렸다. 화원들 중 설심과 취상은 18세기 초 전라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이고, 희심, 임한은 경상도에 있는 통도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화원이어서 미황사 괘불 제작에는 지역 간 화풍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황사 괘불의 주인공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화면 가득하게 석가모니불을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구름으로 채웠다. 윗부분 좌우에는 타방불을 3위씩을, 아랫 부분 좌우에는 용왕과 용녀를 그려 넣었다. 특별히 용왕과 용녀를 그린 이유는 괘불의 쓰임새인 수륙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미황사를 둘러보다 보면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흥미로운 조각들이 있다. 대웅보전의 배흘림 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을 보면 윗부분은 앙증맞은 연꽃잎을 표현하고, 그 아래에 게와 거북 등 바다 생물을 새겼다. 이러한 모습은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데 특징인데, 대웅보전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부도밭에 있는 부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벽하당, 영월당, 송월당, 송암당, 설봉당 등의 부도는 다른 조선시대 부도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만그만한데, 부도 여기저기에 게, 거북과 같은 바다 생물과 새, 두꺼비, 도깨비, 용 등을 마치 어린아이 그림처럼 전혀 꾸밈이 없이 조각을 했다. 이런 숨어 있는 조각을 찾다보면 초등학교 때 소풍 가서 보물 찾기하던 기분이 들 것이다. 남도 끝자락에 자리한 아름다운 절 미황사에 가면 대웅보전에 그려진 천불도와 곳곳에 숨어 있는 앙증맞은 조각을 찾아보자.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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