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본 보물이 아닌 마음속 보물을 안은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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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본 보물이 아닌 마음속 보물을 안은 순례길
  • 이병철 기자
  • 승인 2018.04.18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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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출신 고승들의 수행처를 좇다<2>

제주불교신문(대표이사 허운 스님)이‘제주출신 고승들의 수행처를 좇다’라는 주제로 주최한 성지순례가 지난 7~8일 일정으로 대한불교 조계종단의 종립선원인 문경 봉암사와 영화‘길 위에서’배경이자 비구니 스님의 대표 선방‘백흥암’그리고 故 혜인 스님(은해사 조실)의 마지막 수행처인 기기암 등을 참배하며 제주불자들은 회향길에‘참된 나는 누구인가’를 돌이켜 본 시간이었다. <편집자주>

 

제주불자들이 기기암 선방에 앉았다. 몰록, 욕심내고, 성내고, 화내는 마음이 다 떠난 본래 마음자리에 들었다.

비구니 선원 백흥암, 단청을 하지 않은 절집의 자태가 고색창연한 한옥의 기품을 한껏 풍긴다. 유구한 세월을 대변하듯 건물의 나무빛깔은 진회갈색으로, 알록달록 단청을 해놓은 절집보다 훨씬 세련된 풍모가 느껴진다. 단청을 하지 않고도 절집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곳이다. 그 분위기에 제주불자들의 몸가짐도, 언행도 조심스러워진다.
백흥암이 유독 단아하고도 예스러운 기품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스님들이 수행하는 선방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 공간이고 보니 정갈한 느낌이 더하다. 그래서 본지는 그 기운을 제주불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1년에 부처님오신날과 우란분절(백중)에만 산문을 여는 백흥암이 제주불자들에게 극락전에서 참선을 허락했다. 이날 백흥암 효경 스님으로부터 백흥암 극락전의 보물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20여분 동안 함께 제주불자들과 참선에 들었다.

8일 하룻동안 제주불자들은 총 16km, 3만보 이상 걸었지만 몸은 쇄진할 지 모르지만 마음만큼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스님은 조선 최고 조각인 극락전 수미단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제주불자들이 백흥암 수행의 기풍을 품고 가길 바랐다. 스님은 “백흥암은 현재 보존되고 있는 고건축에서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는 건축물로 보물로 지정됐다”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보는 보물이 아닌 여러분들이 마음속에 보물로 안고 가는 것이 가장 큰 수행”이라고 강조했다. 역시 비구니 최고의 선방다웠다.
전날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에게 배운 대로, 긴장을 풀고 호흡의 흐름 따라 자연스럽게 참선의 자세가 갖춰진다. 그 환희심 때문일까. 창틈을 뚫고 불어오는 찬바람도 그 기세를 꺾지 못했다. 그렇게 제주불자들은 제주에서 체험해 볼 수 없는 선방의 기운에 몰록 빠져들었다. 오로지 20분 동안 백흥암에서 수행의 향기를 느끼며 ‘마음을 청정히 하는 수행자’로 태어나길 발원했다. 수행의 기운을 품은 이곳에서 잠시일지라도 청정한 마음을 유지하며 열반에, 해탈에 기쁨을 느끼고자 했다. 
그 감흥을 채 내려놓기 전에 제주불자들은 잠시 짬을 내서 운부암으로 향했다. 일정에는 없었지만 백흥암에서 신심을 냈기에 그 발걸음은 가벼웠다. 운부암을 참배하고 다시 은해사로 내려온 제주불자들은 점심공양을 끝낸 후 다시금 기기암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뜻하지 않은 운부암 순례로 기운이 쇄진한 제주불자들에게 다시 2.4km를 걷는다는 것은 부담감이 많은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봉암사나, 백흥암은 아직도 산철결제로 스님들이 방부를 들였지만 기기암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자유스러웠다. 주지 덕암 스님께 선방을 보여주는 조건(?)으로 강행군을 시작했다. 선방 문고리만이라도 제주불자들에게 잡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마음이 강했다. 

제주불자들이 혜인 스님의 마지막 수행처였던 그곳에서 ‘나무아미타불’을 명상음악가 홍관수 씨와 함께 부르고 있다.


백흥암 가는 길이 고속도로면, 기기암은 산행길이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고행길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기기암은 적명 스님이 봉암사 수좌로 추대되기 전, 8년 동안 수행했던 곳이자, 지난 2016년 5월 입적한 혜인 스님(전 은해사 조실, 약천사 회주)이 마지막 수행처가 됐던 도량이다. 그렇기에 제주고승들이 기운이 고스란히 서린 기기암은 불자들에게 더욱 뜻 깊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다다른 기기암은 극락세계에 온 듯 제주불자들을 반겼다. 주지 덕암 스님으로부터 기기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데 “적명 큰스님이 이곳에서 방부를 들일 때는 불자님들이 많이 찾아오셔서 운영이 어렵지 않았지만 그 후는 상당히 어려워졌다”는 내용이었다. 그만큼 많은 불자들도 적명 스님의 명성을 따랐다는 이야기다. 또한 혜인 스님이 입적한 곳은 현재 차실로 조성되어 그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 곳에서 이번 순례에 동참한 명상음악가 홍관수 씨의 음색으로 스님을 추모하는 ‘나무아미타불’을 다함께 부르며 아미타부처님 품안에서 고이 잠들길 기원했다.
그리고 향한 곳은 바로 선방이다. 기기암 주지 스님의 특별배려로 선방의 문고리만 잡아 보려했건만 그 안의 속살을 보여주신단다. 안으로  들어서자 안거시에 선방에서 각자 소임을 적어 방을 붙여 놓은 용상방(龍象榜)이 눈에 띈다. 선방의 가장 큰 어른인 조실 스님에 아직도 혜인(慧印)이란 글씨가 제주불자들의 가슴 한 구석을 울린다. 비록 10여 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제주불자들도 가부좌를 틀고 그 수승한 기운을 만끽한다.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선방이 수행자들에게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고 했던가. 청정한 수좌 스님들의 정진 기운이 넘쳐서일까. 제주불자들은 이미 선에 취해 있었다. 본성 자리에 들어선 그들은 적명 스님이 말씀하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움직이는 마음, 즉 욕심내고, 성내고, 화내는 지말마음을 다 떠나간 자리는 근본마음만이 오롯이 남았다. 온 세상은 그 바탕 한자리임을 털고 일어나는 제주불자들. 이제야 적명 스님이 말씀하신 ‘무아’와 ‘참 나’를 알음알이 깨우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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