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향불로 마음을 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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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향불로 마음을 데웠다”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8.05.0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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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지 산방산 산방굴사

봄이 깊어지면서 남과 북이 따뜻한 평화의 봄이 무르익기 직전에 순례길을 찾아 나섰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겁니까.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야 잘 만나는 겁니까.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마음이 편안해집니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삶에 대한 의문들이 비가 오듯 잦아들 줄 모른다. 지난달 22일 대한민국 명승지 산방산 산방굴사를 찾았다. <편집자주>

 

  
산방산 올라가는 길
                                   
                        /김희정

시린 마음 안고 
올라가는 길
 
촛불 하나
향불 하나에
마음을 데우고
 
맨도롱 또똣한 불씨 하나 얻어
내려오는 길
이 자리에 지키고 있네

 

▲명승지 산방산 산방굴사 밖으로 멀리 마을과 바다가 보인다.

 

오랜만에 미세먼지를 깨끗이 씻겨주는 봄비가 내리던 지난 4월22일 산방산 산방굴사를 향했다. 안개가 많이 낀 흐린 날이었지만 산방굴사를 찾는 이들이 꽤 많았다. 
비가 세차게 퍼붓자 잠시 비를 피해 서 있다가 조금씩 비가 다시 잦아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산방굴사에 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오래전부터 오갔다. 그중 제일 처음 이 길을 오간 사람들은 부처님과 만나기 위해서였다. 높은 산에 만들어진 자연법당에 모신 부처님을 뵙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환희심이 나는 일인가. 그곳에서 기도를 하고 수행을 했을 많은 사람들로 인해 이 길은 더 단단하게 다져졌다. 그리고 이 길을 오간 옛 사람들의 자취가 오래되면서 이곳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이름난 명승지가 되었다. 그 빼어난 명승지를 보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오르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는 도를 구하는 구도자의 심정이 되어보고자 한 번쯤 이 길을 찾는 이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그냥 구경삼아 이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 길에는 비오는 날인데도 사람이 자취가 끊이질 않는다.

▲산방굴사에 모신 부처님


순례객은 그 옛날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이 길을 오가던 선인들의 그 마음으로 산을 올라본다. 가다보니 중간쯤 해서 전망대라고 해도 좋을만한 자연 난간이 나 있다. 거기에서 내려다본 전망은 아!하고 탄성이 질러진다. 마치 용이 엎드려 있는 듯이 보이는 길게 뻗은 용머리 해안이 훤히 내려다보이고 그곳을 중심으로 화순금모래해변과 사계해변이 양옆으로 날개처럼 펼쳐져 있고 그곳을 의지해 사는 집들이 촘촘하게 들어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줄 수 없는 것은 앞이 훤히 트인 바다와 섬을 굽어볼 수 있어서 마음은 그저  시원할 따름이다. 
이렇듯 잠시 멈춰서 발밑을 바라보았을 뿐인데도 마음의 묵은 때가 훌훌 털어지듯 가벼워진 느낌이다. 아둥바둥 삶을 볶아대던 시간들이 그저 한낱 꿈같고 물거품 같이 여겨지는 것이다. 
조금 더 오르니 건강과 행운을 비는 터도 보였다. 이곳도 명승지의 격에 맞춘 듯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거기서도 잠시잠깐 건강과 행운이 순례객에게도 깃들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대답하나마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인과법대로 내 몸과 마음을 잘 돌보고 이웃과 세상을 위해 힘껏 노력하면서 살면 자연스레 건강도 행운도 따르지 않겠는가 하고 누군가 말하는 듯.... 

▲산방굴사를 오르면서 바라본 용머리 해안


비가 오니 올라갔던 사람들은 서둘러 아래로 내려가지만 조심조심 우산을 받쳐 들고 오르는 마음은 오히려 한적하다. 타박타박 오르다 보니 산방굴사 가까이에 이르는 길에 커다란 그루터기와 만나게 된다. 이곳을 지켰던 오래된 소나무가 있던 자리가 무상함을 드러내며 흔적만 남은 채로 남아있다. 오랫동안 이곳을 지키던 소나무도 그 생을 마치고 이곳을 떠났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 세차게 쏟아지는 봄비를 맞으면서 새로운 생명들이 쑥쑥 자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 그루터기가 쉼없이 나고 죽는 세상사의 흐름을 넌지시 일깨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커브를 돌아 드디어 굴사에 닿았다. 비가 오는데도 이곳에서는 그 비를 온전히 피할 수 있을 만큼 그리 넓지도 않고 그리 좁지도 않게 법당을 이루고 있다.  부처님을 모신 자연석굴에는 오백나한의 탱화를 그려넣은 듯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산방덕이의 전설이 묻어있는 이곳에는 여전히 산방덕이 눈물이라고 불리는 물방울이 천정에서 뚝뚝 떨어져 약수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을 한모금만 마셔도 마음이 병이 낫는다고 기도하는 어떤 보살님이 이야기를 건넨다. 
정말로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순례객도 한 모금의 물을 달게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니 오래전부터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이 자취가 남아있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다름아니라 병풍처럼 두른 암벽에 새겨진 글씨들이 또렷하다. 얼마나 강한 인상으로 남았으면 시를 짓고도 그것을 바위에 남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어떤 내용의 시인지를 알 수 있는 안내판이 없어서 조금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 안타까움도 잠시, 순례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옛 사람들이나 지금 이 순간 이곳에 발을 내딛고 있는 우리들이나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그 깨달음의 마음은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동행한 김희정 시인에게 시 한 수를 주문했다. 흐려져서 알 수 없는 옛 사람들의 시는 잠시 접어두고 지금 우리의 시를 읊조리고 싶었다. 김희정 시인은 산방산에 올라 촛불과 향불로 마음을 데웠다고 노래했다. 그렇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를 바위대신 마음에 새기고 내려왔다. 

▲산방굴사를 병풍처럼 두른 바위에 새겨진 글들


내려갈 때는 또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낙석주의 팻말이 여러 군데 남아 있는 것도 산이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보호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인공구조물이 설치되고 있으니 자꾸만 산이 지쳐가는 것은 아닌지. 
옛 사람들은 아름다운 자연을 함부로 해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게 삶을 즐겼다. 그 삶의 여유를 배우기 위해 우리는 순례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다고 하는 찬탄만으로는 무의미하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아름다운 것을 보면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해 우리의 생각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 아름다움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 아름다움이 과연 나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지를 물어봐야 한다. 아름다움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그 아름다움을 가장 빨리 허물어뜨리는 것이 되고 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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