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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6.07 12: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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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시인

 창작을 하는 사람 가운데 소설가, 작곡가, 화가와 달리 시인은 시에 사람 인(人)자를 붙여서 시인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시인이라는 말에는 싱그러운 풀냄새 같은 게 묻어있다. 그것은 아마도 시와 사람이 완전히 하나인 시만이 시이고 시 쓰는 사람과 시가 다르지 않아야만 시인이라는 나름의 믿음이 만든 향기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누가 나를 시인이라고 불러주거나 소개를 하면 나는 곧바로 소녀처럼 수줍어지고 부끄러워진다. 시인이라는 말이 얼마나 신성하고 아름다운지 알기에 좋아서 수줍어지고 거기에 미치지 못해서 부끄러운 것이다. 나는 머리로 시를 쓰지는 않지만 내 시와 내 삶이 같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때도 비록 재주가 짧아 다 표현하지 못한 내 시보다 마음은 더 간절하다.  
 시인이 시인이라 불리어도 무심할 수 있다면 그때가 언제일까? 불심이 시심이 되었을 때가 아닐까? 시를 기가 막히게 잘 썼다는 조오현 시인과 후배 시인들에게 불심(佛心)이 시심(詩心)임을 일깨워주신 스승, 설악산 용대리 주민들에게 보살행을 하셨던 설악무산스님은 하나다. 그리고 스님의 시도 하나다. 
 한 생을 온전히 태워 스님이 남긴 시는 그래서 사리다. 스님의 시를 읊어보자! 

 

 


  <무자화(無字話)-부처>

강물도 없는 강물 흘러가게 해 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 범람하게 해 놓고
강물도 없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뗏목다리

 

 

 

 

<아득한 성자>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 다 보고
지는 해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볼 게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 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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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미소 2018-06-12 08:25:15
누가 나를 시인이라고 불러주거나 소개를 하면 나는 곧바로 소녀처럼 수줍어지고 부끄러워진다....
정말 시인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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