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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 영구산(靈龜山) 운주사(雲住寺) (1)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사찰순례(64)
천불천탑이 있는 운주사 전경

 

화순은 전라남도의 중앙에 위치한 전남에서 세 번째 큰 군으로 인구는 65,000명 정도이다. 북서쪽으로 광주, 북동쪽으로 담양군과 곡성군, 서쪽은 나주시, 동쪽에 순천시, 남쪽으로 장흥군, 보성군과 접하고 있다. 소백산맥에서 뻗은 지맥들로 이루어진 낮고 험한 산악지대가 많아 경지는 전체 면적의 16%밖에 되지 않는다. 주변에 위치한 물산이 풍부한 광주, 순천, 나주에 비하면 모든 것이 열악하였지만 산세가 만들어낸 경치가 좋아 과거부터 찾는 사람들이 많아 역사 유적지가 꽤 남아 있다. 동북쪽에 자리한 동복호(同福湖)에 있는 화순 적벽은 경치가 뛰어나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며 세태를 풍자하는 시조를 지었던 김삿갓이라 불리는 김병연이 인근에서 말년을 지내다 생을 마감하였다. 화순군 중앙에 자리한 능주는 조선 중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아 유교 정치의 기틀을 마련한 조광조(1482- 1519)가 귀향 와서 사약을 받고 죽은 곳이다. 정암 조광조는 33세(1515년)에 과거에 급제한 지 3년 만에 지금의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대사헌이 되어 연산군을 내쫓을 때 공을 세웠다는 핑계로 조정을 좌지우지하던 기성세력들을 축출하고 새로운 정치를 구현하려 하였다. 하지만 기성세력들의 반발과 급격한 변화와 과격한 언행에 부담을 느낀 중종의 변심으로 탄핵을 받고 화순으로 유배와 죽음을 맞았다. 현재 능주면 남정리에는 송시열이 시문을 지은 ‘정암조광조선생적려유허비(1667년)’가 전하고 있다. 이 비석을 통해 자신의 뜻을 다 펴보기도 전에 꺾여 비분강개 했을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 볼 수 있다. 당시 기성세력들에게 조광조는 위험한 인물이었으므로 유배지도 험지 중에 험지를 골랐을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조선시대 중기에 화순은 산으로 둘러싸인 험한 곳이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절 뒤편 공사바위에서 보는 천불천탑이 있는 운주사 모습


 조선시대 후기 동학 농민군이 지방 수령들의 학정에 반발하여 반봉건 운동을 하다가 청나라와 일본군이 들어오면서 동학농민전쟁이 반외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그 때 화순은 나주성을 공격하기 위한 동학군의 주둔지가 되었다. 물론 험준한 산악지대가 많고 나주, 광주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면 벽송리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동학군은 지역 관아와 지역 유생들 중심으로 구성된 민보군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대부분 현장에서 죽고, 이후 화순 전 지역에서는 동학군 색출과 처형이 이어졌다. 
 광주에서 화순으로 넘어가는 너릿재는 과거 낮에도 산적이 나오던 험한 고개여서 눈이 많이 오면 며칠, 많게는 한 달 넘게 길이 끊어지던 곳이었다. 동학농민운동 시기에는 농민군이 많이 처형된 곳이었고, 올해 군 문서로 확인된 바에 의하면 5.18 광주민주화운동 시기에 시민이 탄 버스에 계엄군이 총격을 해서 10여 명이 죽은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이다. 이 너릿재에 1971년 터널이 개통되면서 화순이 광주와 동일한 생활권이 되었다. 1992년에 왕복 4차로로 확장되고, 2007년에는 신터널이 개통되었다. 
 화순은 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잘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곡면과 춘양면 일대 3㎞ 거리에 59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우리나라 고인돌 유적지 가운데 채석장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곳이며,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불교 유적지로는 경치가 아름다운 규봉암, 부도와 목탑으로 유명한 쌍봉사, 천불천탑의 전설을 갖고 있는 운주사를 꼽을 수 있다. 먼저 규봉암은 광주 무등산 입석대에서 남동쪽으로 1.6km 지점에 위치한 암자로 고려시대 화순 출신으로 국사가 된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이 수도하고, 득도한 곳이라고 한다. 혜심은 송광사에서 결사를 했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제자이다. 
 쌍봉사에는 조선시대 만들어진 3층 목탑이 있었는데, 속리산 법주사에 있는 5층 목탑인 팔상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목탑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었다. 1984년 전기 누전으로 불에 타버려 지금은 과거의 모습대로 복원한 3층 목탑을 대웅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비록 새로 만들어졌고, 아담한 탑이지만 과거 삼국시대 만들어졌던 우리나라 목탑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어 볼 만하다. 쌍봉사에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부도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철감선사 부도(국보 제 57호)와 부도비(보물 재 170호)가 있다. 

운주사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


 쌍봉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암면 대초리 영구산(靈龜山)에는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운주사(雲住寺, 運舟寺)가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풍수지리로 유명한 도선(道詵)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과 운주(雲住)가 세웠다는 설, 마고(麻姑)할미가 세웠다는 설이 전하고 있다. 이 중 도선국사의 창건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영암 출신인 도선스님이 우리나라의 지형을 배로 보고, 배의 배 부분(船腹)에 해당하는 호남 땅이 영남보다 산이 적어 배가 한쪽으로 기울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곳에 천불천탑을 하룻밤 사이에 조성했다고 전한다. 이 전설을 뒷받침 하듯 절에서 멀지 않은 춘양면에는 돛대봉이 있다. 돛대봉에 돛을 달고 절에서 노를 젓는 형세라 한다. 풍수로 절의 지형이 움직이는 배 모양이라 해서 한자로 절의 이름을 운주사(運舟寺)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법당을 비롯한 석불과 석탑이 크게 훼손되었다. 1942년 기록에 의하면 운주사에는 석불 213좌와 석탑 30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석불 91좌, 석탑 21기만 남아 있다. 2000년대 들어 운주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절집들이 계속 지어져 나름 절의 규모를 갖추었지만 1990년대만 하더라도 울타리도 문도 따로 없는 남북으로 뻗은 좁은 골짜기 안에 석탑과 돌부처만이 자연스럽게 서 있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절이었다. 운주사라는 절 이름 앞에는 천불천탑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절에 많은 탑과 불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불상과 탑이 여느 절에서 보는 것과 다른 특이하게 생긴 것들이 많다. 전설에서처럼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만든 것은 아니고 고려시대에 근처에 사는 백성들이 자신들의 염원을 담아 하나씩 하나씩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천진난만하기도 하다. 거기에 담긴 마음만은 화려하고 잘 만들어진 어떤 불상이나 탑과 견주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운주사의 특이한 불상과 탑상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유물은 석조불감(보물 제797호), 9층 석탑(보물 제796호), 원형다층석탑(보물 제798호)과 수탈에 지친 백성들이 잘 사는 세상이 오면 벌떡 일어선다는 와불이 있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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