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에서는 바늘구멍만큼도 건질 게 없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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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에서는 바늘구멍만큼도 건질 게 없다 하셨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6.1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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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종 수행은 보리심 수행을 말한다.‘로’는‘마음’을‘종’은‘훈련하다, 교육하다’의 뜻으로‘마음을 길들인다’는 뜻이 담겨있다.‘로종’은 티베트 불교에서 그 방법을 만든 것으로, 아띠샤 존자는 이것을 7종59가지로 정리하셨다. 이번 로종 수행은 지난 4월 켄뽀 졸덴 스님을 모시고 3박4일 백담사에서 정진한 일심각 포교사(포교사 21기)가 정리한 내용을 실었다.<편집자주>

 

켄뽀 졸덴 스님은 1956년 시킴에서 태어나 14세에 시킴 수도 강톡 싸놀최촉사원에 입소해 승원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인도 데라둔에 위치한 사캬대학에서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종사르 켄체 린포체와 함께 티베트 전통과 불교철학 교육을 받고 사캬파 인문학 학사학위인 카추빠와 문학 석사학위인 롭을 취득했다. 사캬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불교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시카고 대학에서 교수로 재임하던 중 네팔 사캬파 국제불교학술원 IBA(International Buddhist Academy) 원장 제안을 받고 2009년까지 소임을 맡았다. IBA에는 현재 40여명 학자들이 수행지도자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수행의 바탕인 기초공부
1. 예비수행을 하라. 그 방법으로 4가지를 알아야 했는데, ①귀한 인간 몸으로 태어났다는 것 ②무상과 죽음을 명상하라는 것 ③인과 업을 수행하라 ④윤회계의 결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수행을 지원하는 것은 동물, 천신의 몸보다 인간의 몸이 더 낫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기 어려움을 알고,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수행)을 하여 성불할 수도 있는 것이다. 
수행할 수 있는데도(수행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수행하지 않으면 그 기회를 놓치고 두 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으로 미래생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해탈까지도)을 할 수 있다. 이런 기회가 얼마나 드물고 얻기 어려운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언젠가는 하겠지~’하는 게으른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무상과 죽음을 생각하면 그렇게 느긋할 수가 없고 급한 마음이 되어 당장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무상과 죽음을 명상하면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의 수명은 태어날 때부터 짧아지고 있으며 누구나 죽는 것이다. 
불교우주론으로 남섬부주에 살고 있는 우리는 수명이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수명을 길게 하는 원인은 없지만, 수명을 짧게하는 원인은 수없이 많다.
우리가 죽게 되는 불교적 원인은 세 가지이다. 업, 공덕, 수명 이것이 다하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분명히 죽게 되는 것이다. 죽을 때 불평을 할 수 있으나, 세 가지가 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죽을 때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것은 우리가 법을 수행하는 것, 공덕과 마음공부만이 도움이 된다.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무리 간절해 하더라도 죽음의 고통을 도와줄 수 없고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같이 가고 싶다 하더라도 홀로 떠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힘들게 모은 재산도 소용이 없고, 빈손으로 발가벗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가져가는 것은 ‘악업’과 ‘선업’이다. 명예와 재산을 위한 악업은 가져가게 된다. 이런 방법으로 깊이 자신의 삶을 살펴보면 ‘무상’을 느끼게 된다. 
부처님 당시, 아기를 잃은 여인이 아기를 살려달라고 하니 부처님께서는 상을 당하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여인이 온 마을을 헤매도 상을 당하지 않은 집은 하나도 없었다. 부처님은 이렇게 하여 무상을 깨우치게 하셨다. 
우리는 무상과 죽음을 숙고하고 수행을 해야 한다. 무상과 죽음에 대한 명상은 우리가 행복할 때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예를 들어 멋진 옷을 입을 때 언젠가는 수의를 입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친지나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언젠가는 홀로 떠나 영원히 이별할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런 명상법은 부처님께서도 가르쳐 주신 방법이다. 무상과 죽음을 일상에서 생각하고, 무상과 죽음에 대한 실감과 확신이 온다면 부처님법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자비심’을 느낀다면 남을 돕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고, ‘무아’를 체험하면 번뇌를 제거하는데 최선이다. 
(죽음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무상하드는 것을 알면 조립된 여러 요소〔相〕는 무상하다고 부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말씀하셨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불교에서는 이 모든 것은 상호의
존해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모든 것이 상호의존해서 일어나는 ‘연기법’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업’은 함께 느끼는 ‘공동업’과 혼자 느끼고 스스로 만들어 가는 ‘개인업’으로 나누어진다. 스스로 하는 행위는 선업, 악업, 중립적인 업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선업은 탐진치가 없는 상태로 하는 행이고, 이것과 반대되는 것이 악업이다. 중립적인 업은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행위이다. 악업은 신구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작은 악업과 선업이 쌓여 악업과 선업으로 구별되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악행을 하나도 하지 않고 모든 선업을 길러가는 것이다. 사실 선업짓기가 쉽지 않고, 그럴 경향이 어렵지만 악업은 많고 짓기 쉽다. 그러나 대부분 중립적인 업을 지으며 살고 있다. 경전에는 악업을 피하고 선업을 어떻게 닦는지는 많이 나온다. 그러나 중립적인 것을 선업으로 닦는 것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걸어갈 때 일을 할 때를 수행의 방편으로 할 수 있다. 
원전불성, ‘나는 부처다’를 가지고 잘 수 있고 기도와 자비심으로 수행하면 자는 동안 선업을 쌓게 된다. 우리 삶이 선업과 수행으로 풍부해진다. 
예를 들어, 걸어갈 때에도 아래쪽으로는 “나는 삼악도에 떨어지는 중생을 돕고 구제하겠다” 위로 갈 때는 “나는 불보살님을 뵈러간다”고 생각하면 이로써 선업을 짓게 된다. 이처럼 우리의 나쁜 습관을 좋은 습관으로 대치하면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나중에 습관이 되면 노력없이 선업을 짓게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나는 부처님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선업을 쌓게 된다. 이처럼 일반적인 견해를 수행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항상 마음을 살펴서 좋은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로종수행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조절하기 힘들지만 연습하면 조절하게 되고, 우리가 마음의 주인이 되고 나중에는 조절하지 않아도 스스로 되어진다. 
‘윤회’에서는 갈망할 게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무상과 죽음에 대한 생각이 수행을 생각하게 한다면 윤회계의 결함을 아는 것은 ‘출리심’이 마음에 자리잡게 된다. 
우리는 윤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윤회만을 갈망하지만 (반복적으로 정치인을 갈아치우지만) 우리의 견해도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윤회와 견해도 바르게 가져야 한다. 부처님께서 윤회에서는 바늘구멍만큼도 건질게 없다고 하셨는데 세속을 즐기는 것도 자세히 보면 윤회를 만드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윤회에는 계고, 행고, 고고의 세 가지 고통이 있다. 
‘계고’는 무상의 고통으로 변함(늙어가는 것, 부자가 가난해지는 것……)의 고통이다. ‘행고’는 본질적인 고통이고, ‘고고’는 우리가 느끼는 아프거나 하는 기본적 고통으로 삼악도의 고통이다. 
보리심를 갖기 위해서는 윤회의 결함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윤회가 무상함을 알고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이 마음이 출리심인데 출리심이 마음에 자리 잡아야 비로소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육도윤회의 고통을 잘 알아야 다시는 윤회하고 싶지 않다. 육도윤회에 대해 알게 되면 두려움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수행동기가 될 수 있다. 내일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것이다. 주변 정리도 안 되고, 죽은 후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행, 즉 바르게 살고 죽음을 무섭지 않게 맞이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여기까지가 로종의 기초수행 4가지였다. 
두 번째 주요수행으로 보리심을 기르는 수행
보리심에는 궁극적 보리심(절대적 보리심)과 상대적 보리심이 있다. 궁극적 보리심으로 앉아서 하는 명상 수행과 일상에서 하는 수행이 있고, 명상은 삼매의 힘이 있어야 하는데 ‘사마타 수행’이 이 힘을 생기게 하므로 사마타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에서 하는 수행으로는 ‘호흡관찰’을 추천하다. 
‘삼매’라 함은 생각이 없는 상태, 생각이 걷힌 상태를 의미한다. 생각이 걷힌 상태를 위해서 호흡을 관찰하는 것이다. 궁극적 보리심을 위해 삼매에 들어가려면 호흡을 들숨․날숨‧그 사이의 중간호흡을 하나로 생각하여 세고, 이렇게 21번까지 셀 수 있으면 삼매에 들어갈 수 있다. 
21번 집중수행을 하면 생각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들숨‧멈춤‧날숨의 관찰이 우리의 생각을 관찰하는데 도움이 된다. 

모든 현상을 꿈과 같이 여겨라.
본래 있는 자각심의 본질을 살펴라.
대치법 조차도 저절로 사라지리라. 
도의 본체인 알라야식에 쉬어라. 
모든 현상을 환영으로 여겨라.

지금 보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과 다르지 않음을 알고, 내재의 존재감이 독립적이지 않음을 알면, 내재의 존재함이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이 꿈과 같음을 알게 된다.
주체와 객체 중 객체(대상)는 어떤 것이라도 마음과 따로 노는 것은 없다. 내재의 존재함이 없다. ‘모든 현상을 꿈과 같이 여겨라’는 것은 객체를 말함이고, ‘본래 있는 자각심의 본질을 살펴라’는 것은 주체를 의미한다. 태어나지 않은 자각심을 살펴라. 태어남이 없음으로 끝남도 없다. 그러나 알고 있다. 우리 마음자체가 공성이다. 
궁극적 보리심은 궁극적 생각이다. 바깥 현상은 상대적으로 존재하나 궁극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조차도 살피면 궁극적 존재함도 없다. 바라밀에서는 궁극적 본질을 분석해서 궁극적지심이 자리 잡으면 거기서 마음을 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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