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내고 성냄 그리고 어리석은 불꽃들 다 끄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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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내고 성냄 그리고 어리석은 불꽃들 다 끄셨네”
  • 이병철 기자
  • 승인 2018.06.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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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덕사 신도들이 인도로 떠났던 이유<1>

제주시 도남동 보덕사(주지 혜전 스님) 신도 등 제주불자 20여명은 지난 6월 3일부터 11일까지 인도 7대 성지순례길에 올라 부처님의 발자취를 좇았다.
9일 동안 부처님의 7대 성지마다 순례하며 왜 부처님이 출가할 수밖에 없었는지 인도의 문화와 환경에서 그 화두를 풀 수 있었다. ㉠보덕사 신도들이 인도로 떠났던 이유 ㉡초전법륜을 굴린 ‘사르나트’ ㉢신들의 고향 ‘갠지스강’ ㉣깨달음의 땅 보드가야 ㉤부처님 법화경을 설한 ‘영축산’ ㉥최초 비구니 승단의 탄생지 ‘바이샬리’ ㉦부처님 열반지 ‘쿠시나가르’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 ㉨부처님이 24년간 머무르며 ‘금강경’ 등을 설한 ‘기원정사’를 순례 일정대로 9차례 연재한다.
<편집자주>

 

도남 보덕사 신도들에게 부처님 열반지 쿠시나가르의 열반당은 인도 부처님의 성지보다 더 의미가 남달랐다. 이곳에서 스님을 비롯해 신도들과 인연 짓고 있는 모든 영가들이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기도로써 열반적정(涅槃寂靜) 즉, 세간의 고통에서 벗어나 참된 고요의 세계에 잠들길 기원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니 순간순간 생겨나고 사라지는 모습일세. 생기고 사라짐도 다하여 없어지면 그 자리가 다름 아닌 분명한 극락일세.”
보드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은 사르나트의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에게 처음 법륜을 굴린 이래 45년 동안 길에서 쉬지 않고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80세의 늙은 몸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이 열반지 쿠시나가르다. 부처님도 80평생의 탐내고 성냄 그리고 어리석은 불꽃들을 다 끄셨던 곳이다. 

도남 보덕사 신도들이 열반당 부처님께 가사를 수하고 있다.


이곳 부처님의 열반지인 ‘열반당’에서 혜전 스님과 보덕사 순례자들은 부처님이 가장 마지막에 설한 법화경(法華經)의 “본래 상자적멸상 불자행도이 내세득작불(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이라고 게송하며 스님을 비롯해 순례자들과 인연이 닿았던 영가들이 이생의 모든 애착을 끊고 아미타부처님의 품안에서 잠들길 기원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인도의 날씨 속에 열반당은 그야말로 찜통이었다. 그럼에도 기도의 정진을 놓지 않은 그들이 바로 보덕사 신도들이었다.


그날 인도의 쿠시나가르는 40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씨였고, 열반당 내부는 찜질방을 방불케 했다. 하지만 영가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 때문일까. 순례자들은 영가들이 괴로움은 없고, 행복한 극락에 태어나길 바라는 그 원력만 뿌리 깊게 세웠다. 머리는 북쪽에 두고 얼굴은 서쪽으로 하여 오른쪽 옆구리를 대고 모로 누워 편안히 눈을 감은 누운 부처님을 향해 쉼 없이 ‘석가모니불’을 부르며 오체투지했다. 신심일까, 환희심일까. 땀으로 흥건히 젖은 순례자들의 의지가 그대로 투영되었다.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누워계신 열반당의 부처님이 제주 순례자들에게 “착하다. 착하다. 너희들은 이제 번뇌의 불꽃을 다 꺾었노라”라며 칭찬을 하시는 듯했다.
도남 보덕사 신도들은 2년 여 전, 대만에서 열린 대만공승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대만공승제는 음력 7월 15일 목련존자가 지옥세계에 태어난 어머니를 구하고자 안거 해제하는 날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것에서 시작됐다. 신도들은 세계 16개국이 넘는 나라 스님들을 초청하는 국제적 규모 뿐 아니라 스님들에게 극진한 공경을 다하는 대만불자들의 신심이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 과연 부처님이 태어난 나라, 인도에 대한 갈증은 더했다.
그렇게 추진된 것이 바로 이번 인도 성지순례였다. 일정 또한 대부분 순례자들이 인도의 더운 여름을 피해 12~1월에 순례를 떠난다. 하지만 이미 8월 대만에서 살갗을 파고드는 땡볕의 유경험자들이기에 6월 인도 햇살은 아기의 피부처럼 부드러웠다. 


더욱이 지난 대만성지순례에 함께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던 모 거사님은 이번 성지순례에 기대감이 컸다. 누구보다 여권사진을 먼저 찍으며 “사진, 참 잘 나왔네”라고 흡족했던 거사님이었다. 하지만 인도 성지순례를 떠나기 두 달 전, 거사님이 갑작스런 병고로 세상을 달리하게 된 것. 세상을 등진 사람들만큼이나 괴롭고 힘든 사람들은 남은 사람이라 했던가. 거사님과 함께 부처님의 성지를 떠난다는 기쁨도 잠시, 인생 도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두고 거사님의 49재를 마친 김모 보살님의 마음의 화를 덜어낸 것은 바로 혜전 스님이다. 
“거사님이 그리도 가고 싶어 했던 인도였잖아요. 거사님의 여권사진을 들고 가서라도 부처님의 성지를 보여준다면 거사님도 기뻐할 겁니다.”
다시 태어나도 보살님과 다시 결혼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거사님이 아니던가. 이제 보살님은 거사님과 인도순례를 함께하며 열반당에서 거사님을 향한 그립고 그리운 마음을 내려놓는다. 그저 슬픔에만 매몰되지 않겠다고 말이다.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먼저 떠난 거사님은 부처님이 내게 보내주신 관세음보살임을 열반당에서 깨닫는다.
이번 성지순례를 회향하며 델리공항에서 혜전 스님은 “한번 성지순례를 떠나려면 각자마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함께해 준 신도들에게 감사할 뿐”이라며 “부처님의 성지마다 금강경 독송 기도공덕으로 업장소멸을 통해 육도윤회를 초월한 불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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