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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일기-봉정암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16일부터 18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봉정암에 성지순례 간다는 말에 아내가 은근히 걱정한다. 요즘 주변에 먹는 일이 많아 체력관리를 못하다보니 준비 잘하라는 질책이 숨어 있다. 아무리 마음먹기가 중요하다곤 하나 실제 움직임이 예전 같지 않은 걸 보니 인정할 수밖에 없어 삼매봉 오르기를 몇 번이나 했다.
가을하늘처럼 높고 푸른 날, 어린 시절 여행 기분처럼 비행기에 올랐지만 하늘에서의 시간은 잠깐, 긴 시간의 버스투어로 생겨난 화장실 나들이, 간식으로 채운 배에 덧붙여지는 점심, 자유롭지 못한 일상을 오직 체력으로만 극복하게 되니 아내의 걱정이 괜한 게 아니란 걸 실감한다. 백담사 지날 무렵 신록 속으로 스며드는 신선한 공기가 물소리 새소리와 어울려 즐거움을 더하고, 햇빛에 반사된 화강석은 우리들 눈동자에 마치 보석이라도 달아주려는 듯 더욱 반짝인다. 어느새 모두가 시인이 됐는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설악산의 어느 것 하나도 우리와 함께 하며 좋은 배경이 된다.
영시암을 지나 계곡을 몇 번 지나고 나자 우리네 안전을 책임졌던 법우가 다리에 쥐가 나서 더 이상 걷지 못하겠다고 호소하고, 설악산의 정기를 받고자 기도공양물로 배낭을 메운 법우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은 얼굴에서도 여럿 감지된다. 뭉친 근육은 풀고, 배낭의 짐은 나눠들어 다시 천천히 걷는다.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쉬며 지나가는 산행객에게 오세암이 멀었냐고 물으면 되돌아오는 건 조금만 가면 된다는 격려의 말뿐이다. 도대체 얼마가 먼 거고 얼마면 다 간다는 건지. 지친 이가 더 묻고 힘들어하는 걸로 봐서 문제는 거리가 아니라 마음이란 걸 새삼 안다.
산줄기에 파묻힌 조용한 암자 오세암. 올라가는 동안 힘든 만큼 더 찾았고, 푯말이 보이면 더 기뻐했고, 친구가 틀어놓은 염불소리엔 저절로 힘이 솟아올랐던 순간들. 우리들 바람만큼이나 그리움도 많이 생겼던 곳이지만 막상 도착하니 어디서부터 이 순간을 아로새겨야 하는 건지 벅찬 가슴을 감당할 수 없다. 차츰 마음을 안정시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느덧 내 몸도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세수하고 밥 먹고 저녁에 기도 열심히 하리라는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버스 속에서 여행사직원이 안내했던 5세 된 아이가 성불했다는 말이 죽은 건지 살았다는 건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봉정암 가는 길.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오세암을 나섰다. 원시림 사이로 가파른 길을 걸으며 끌어주고 밀어주고,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지만 마음만은 거뜬하다. 우리들 걸음에 첨병이라도 된 양 다람쥐가 먹이를 달라하고, 저 멀리 웅장한 바위틈엔 분재 같은 소나무가 더덕더덕. 시간에 여유가 생겼고 전날 우리들 걸음에서 이미 예열을 마친 상태여서인지 마음도 어느새 가볍다. 다리에 쥐가 났던 법우도 전날의 미안함을 만회하려는지 서둘러 봉정암에 도착했다고 으쓱한다.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모셨다는 5층 석탑에 엎드려 참배하고 확 트인 전경을 둘러봤다. 왼쪽 부처님바위 쪽을 향해 여러 형상의 바위들이 공양을 올리고, 하늘과 맞닿는 능선은 어머니마음처럼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 광경을 오랫동안 붙들고자 경계막이 되고 있다. 자장율사, 원효 대사, 지눌 등 수많은 도인들이 창건과 중건을 계속하며 이어온 불굴의 정신에 감탄하며 존경의 마음을 새기고 있을 때 법우들이 다녀가며 부스럭대는 소리가 사색의 기운을 멈추게 했다.
점심공양 후, 여기까지 왔는데 대청봉을 오르지 않으면 뭔가 2% 부족할 것 같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가다가 힘들면 곧바로 뒤돌아 천천히 내려오라는 말엔 보험이라도 든 것 같다. 갈수록 조금 더 하는 마음은 결국에는 대청봉 정상을 올랐고, 태백산맥 정상의 줄기를 보는 재미와 확 트인 시야 속으로 화강암에서 반사되는 은색물결이 주변의 신록과 어우러져 보통 때보다 더 반짝거렸다.
길을 막아서는 아름드리나무, 발을 치이게 하는 돌부리, 시선을 돌리라는 계곡의 물줄기, 산은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 곳곳에서 붙잡으려 하지만 오세암과 봉정암만을 목표로 두다보니 무정설법이 뭘 뜻하는지 알아들을 새 없다.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모두를 돌아보며 살아가라는 고은 시인의 시 구절이 더욱 우렁차게 들렸다.
/오장환 <서귀포불교대학 38기>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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