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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고향‘갠지스 강’- 기원전 3000년부터 이어진 힌두교, 삶과 종교가 하나강에 몸을 담그는 행위, 자신의 나쁜 업 정화. 갠지스 강, 인간 중심이 아닌 신 중심의 세계
갠지스는 신의 강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강물에 몸을 담가, 업을 소멸하길 바라고 죽은 이들은 이곳에서 화장을 해서 강물에 뿌려지길 원한다.

흔히 유럽의 중세는 ‘종교의 시대’로 불린다. 교황의 권위가 황제의 권위보다 드높았고, 그로 인해 교회의 폐해는 속출했다. 물론 교황과 세속의 황제 간 권력의 결합은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왕은 현실적인 무력에 의해 지위가 확보됐지만 욕심이 넘친 황제는 사제의 힘을 빌려 신의 힘까지 얻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중세교회는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교황이 왕으로 군림하는 암흑기를 맞게 된다. 결국 중세는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를 열게 되면서 유럽의 발전은 빛의 속도가 된다. 
인도 대륙의 가장 신성시 하는 곳이자 인도 문명의 성지인 ‘갠지스 강’을 바라보면 유럽 중세의 시각으로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은 인간 중심이 아닌 신 중심의 세계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갠지스 강은 ‘신의 강’이다. 힌두 전설에 의하면 갠지스는 원래 하늘나라에서 흐르던 은하수였다. 그것을 시바신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강가의 여신’을 사로잡아 지상으로 흐르게 하여 온 세상의 더러움을 정화시키게 했다고 한다. 이런 전설을 배경으로 힌두인들은 지금도 이 강물을 마시거나 몸을 담그는 행위로써 자신의 나쁜 업(카르마)까지도 정화된다고 굳게 믿으며, 평생에 한번이라도 갠지스강에서 성스러운 목욕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또한 생이 다하면 갠지스강에서 화장되어 재가 강물에 뿌려지길 소망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 생에 좋은 인연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라도 합리적인 생각을 갖고 질문을 던진다면 “갠지스 강에서 사는 물고기들이 인간보다 낫다는 말인가?”라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제주 순례자들도 눈으로 직접 확인했지만 그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버젓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방생법회 바닷가에 낚싯대를 드리운 광경이다.
그리고 전혀 깨끗한 물이라 볼 수 없는 이곳엔 시체, 쓰레기, 오물 등이 뒤범벅 된 강물에 몸을 씻고, 마시는 등의 행위들은 제주 순례자들에겐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그 강에 다시 태어나기 위해 화장의 재도 다시 뿌려지는 이유는 오로지 종교적 믿음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다. 

인도 각지에서 몰려오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갠지스 강가는 매일같이 붐빈다. 신에게 초공양을 올리는 힌두교인들.


어느 날 부처님이 갠지스 강변을 걷고 있었다. 한 브라만교 사제가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기도를 통해 죽은 사람을 천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며 강조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갠지스 강에 조약돌을 던지며 사제에게 “신에게 기도하면서 ‘조약돌아! 떠올라라. 떠올라라.’ 외친다고 해서 조약돌이 떠오르겠냐”고 묻는다. 이에 사제가 “안 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무거운 것은 가라앉고 가벼운 것은 떠오르는 것이지 신에게 기원한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다”라고 사제에게 법을 설했다고 한다.
흔히 신을 숭배하며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행동은 인간이 오랜 시간동안 거친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오는 과정 속에 나타난 행동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사람이 살아 있을 때 행하던 업에 의해 착한 일을 많이 하면 가벼워서 하늘로 가고, 나쁜 짓을 많이 하면 무거워서 지옥에 간다”고 말했다. 신을 믿고 따르는 것은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그 믿음을 갖고 열심히 자신을 닦아갔다면 그에 따른 응당한 보답이 있으리라. 이는 신에 의한 게 아닌 어떤 정해진 방식에 의해 보편적인 질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인도인들은 신들과 함께 살아갔다. 그렇기에 1974년 신분제인 카스트제도가 폐지됐지만 그들을 아직도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경험했던 제주 순례자들이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인도는 먼지와 소음 무질서와 혼돈만이 가득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절대적인 존재인 신에 대한 경배는 힌두교가 발생이래 수천 년의 역사를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외부 침략적 시선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한 없이 부러운 것은 종교가 곧 생활이고 생활이 곧 종교인 것이다. 거의 모든 힌두교인들이 집에서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집안 성소에 모셔진 신상에 기도와 의식을 바친다. 집에서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원과 상점, 달리는 자동차 안에도 신상을 모셔놓고 각자의 신들에게 기도를 올리는 모습은 한국불교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기원전 3000년 경에 문명의 꽃을 피운 이래 이슬람의 침략, 영국의 지배에도 인도가 힌두교의 종교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삶과 종교가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갠지스강 모래사장에서 노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는 제주순례자들

이병철 기자  taiwan08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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