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신행수기 공모 가작 "내 마음속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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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신행수기 공모 가작 "내 마음속의 님"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7.1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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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순옥 불자

연등 살랑대는 오월을 지나 어김없이 연둣빛이 초록을 더해가는 유월! 공부하러 먼 길 떠나는 아들로 인하여 또 나는 님을 찾았다. 무탈하게 공부 마치고 돌아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아니 그냥 찾아오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학회 연수로 독일에 나가 있는 큰 애, 타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맘여린 막내, 그리고 제법 나이가 든 남편의 앞길, 이 모든 내 맘을 다 헤아려 줄 것 같아서 말이다.  
일이 있을 때면 바빠서 절에 자주 가지 못하면서도 마음으론 기도를 하게 된다. 서른두 해 전 결혼과 함께 서울에서 지내던 내가 아무도 없는 제주에 살게 되면서 시어머님은 ‘이 아들은 꼭 절에 다녀야 한다’ 며 방향도 맞고... 이것저것 따져보시고 내게 맞는 절을 정해 주셨다. 절을 가는데도 이렇게 알아보고 가야 하는 지, 같은 나라인데도 지역마다 문화의 차이가 많이 다르구나 생각하며, 아무것도 모르고 마음의 준비도 전혀 되어있지 않은 채, 모든 것이 낯설었던 곳에서, 한 달에 두세 번 절에 가는 길이 그래도 마음에 위로가 되어 주었다. 
절에 가는 날엔 세 살 난 아들 녀석 손에 초콜릿을 쥐어 주었고 끝날 때 까지 엄마 옆에 가만히 앉아 설법을 듣다가 영문도 모르고 넙죽넙죽 주위 보살님들 따라 절하는 아들을 보고 “에구 아까워라, 참 착하다” 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러던 아들이 벌써 서른이 되어 공부하러 외국에 나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내 마음 다스리기 바빴던 것 같다. 서로 너무나 다른 환경으로 인해 이해하려 하면서도 현실은 늘 엇박자였고 마음은 힘이 들었다. 절에 있는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텅 비어 버린 그리하여 나 자신만을 생각할 수 있는 평안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지나는 삶이 왜 이리 복잡한지~. 제주지역의 안끄레 바끄레 생활모습, 어느 기업의 면접시험에 나온 괸당 문화, 시아버님 형제분도 많았고 시어머님 가족도 많아서 모든 일을 집에서 해결하는 제주만의 독특한 풍속 탓에 늘 정신이 없었다. 네 명의 동생들은 모두 집에서 결혼식 손님맞이를 했고, 밤 12시가 가까워 지내는 제사를 먹으로 다녀야 했고, 입춘, 마실 다녀오는 일, 마을제등 절기마다 가려야 할 것, 하면 안 되는 것들, 꼭 해야 하는 것들 참 많이도 달랐다. 그런 생활 속에서 늘 내 마음을 지켜주었던 건 한없이 자애로운 미소를 띤 부처님이셨다. 서른두 해 동안 늘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님. 
세월이 흘러 이젠 아이들도 서울로 외국으로 각자 떠나고 낯설던 풍습은 몸에 젖어 익숙해졌다. 사람이 힘든 일이 생기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어딘가 의지할 곳이 필요해 기도를 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겪고 사람으로서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꼭 필요하고 소중한 가르침이 종교임을 느낀다. 연꽃이 피면 필히 열매를 맺는다(개부구족(開敷具足)). 꽃피운 만큼 선행은 꼭 그만큼의 결과를 맺는다는 연꽃의 열 가지 공덕을 되새기며 연꽃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기를 항상 염원하며 부처가 되어가는 삶을 하루하루를 즐기는 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절이란 곳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고 찬찬히 나를 돌아볼 시간을 제공해 주었으며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이 조금씩 비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그렇게 생활 속에 스며든 불교는 우리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관계 속에, 조금씩 봉사도 하면서 참된 깨달음을 얻고 작은 일에 감사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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