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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도솔산 선운사(禪雲寺) (3)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사찰순례(68)
선운사에서 판각된 목판을 찍어낸 판화 그림을 위에 배치하고 그 그림의 내용을 아래에 적었다.

 

 선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절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내소사, 개암사 등이 선운사 말사이다. 선운사 답사는 다른 교구 본사들 답사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여러 차례 전란으로 인해 규모가 축소된 이유도 있지만 절 입구에서 절 앞 계곡을 따라가면서 보는 풍광이 사뭇 즐겁고 상쾌하기 때문이다. 본사 주변에도 좁은 산길을 따라 진흥굴, 장사송, 도솔암, 마애불, 내원궁이 계속 이어져 있어서 걷다가 잠시 머물며 그곳에 얽인 역사와 전설을 더듬는 재미가 쏠쏠하다. 
 과거 선운사가 한창 번성했을 때는 89개의 암자와 189개의 요사에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참당암, 도솔암, 동운암, 석상암 네 개의 암자와 본사에 10여 동의 건물만 남아 있어 과거의 영화는 찾아볼 수 없는 아담한 절일 뿐이다. 사람에 비유하면 마치 과거 잘나갔던 대가 마님이 봄날 쇠락한 집의 툇마루에서 따스한 햇볕을 쬐는 모습과 같은 느낌이다.
  선운사 안으로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건물이 천왕문이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널찍한 광장에 맞배지붕을 한 정면 9칸의 만세루와 만난다. 아주 낮은 기단 위에 멋을 부리지 않고 세운 건물로 스님들이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는 강당으로 만들어졌다. 그 뒤로 선운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보물 제290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중기에 만들어진 건물이다. 꽃살문과 기둥  위 공포의 단청이 화려하다. 법당 내부에는 다양한 벽화가 그려졌는데 특히 천정의 화려한 꽃문양과 용 그림이 볼만하다. 불단 뒷벽에는 백의관음보살과 금강역사가 그려졌다. 불단에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로 구성된 삼세불을 봉안하고 그 후벽에는 1688년에 제작된 비로자나불회도, 아미타회상도, 약사회상도가 자리하고 있다. 대웅보전의 세 불상은 최근 보물 제1752호로 지정되었는데, 대좌 아래에 1633년이라는 제작 시기, 제작자와 조성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된 점과 구리 등 금속이 아닌 흙으로 형상을 만든 후 옻칠을 하고 그 위에 금박을 입힌 불상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전란으로 소실된 불상들을 빠른 시간 내에 조성하고자 한 재건의지가 반영된 점을 높이 사서 지정되었다. 보물 제279호인 금동지장보살좌상을 모신 관음전, 목조석가여래좌상과 십육나한상을 모신 영산전, 팔상도를 봉안한 팔상전,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도가 봉안된 명부전, 조사들의 영정을 모신 조사전이 있는데, 여타 절들과 다른 선운사만의 특징은 건물 내외 벽에 다양한 벽화가 그려졌다는 점이다. 예불을 하고 건물을 둘러보며 벽화를 감상하는 것도 선운사 동백숲과 주변 암자 답사 못지않은 선운사 답사의 즐거움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행적과 사상이
인도와 중국에서 전개되는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책 
『석씨원류』가 선운사에 남아있다


 선운사에는 비록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아주 중요한 유물이 전하고 있다. 바로 전북유형문화재 제14호로 지정된 『석씨원류(釋氏源流)』목판이다. 『석씨원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행적과 사상이 인도와 중국에서 전개되는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책이다. ‘석씨’는 책에 실린 내용이 석가모니 부처님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 및 재가신도의 이야기까지 포함하였다는 의미이고, ‘원류’는 말 그대로 불법의 근원과 그것이 후대에 전승되는 흐름을 정리했다는 의미이다. 원래 이 책은 중국 명나라 영락 20년(1422) 승려 보성(寶成)이 주도 하에 제작하여 1425년 처음 편찬된 후 여러 시기에 걸쳐 조금씩 다르게 제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400여 종의 이야기에 네 자의 제목을 붙이고 설명문과 그림이 곁들어진 형식이기 때문에 후대 불교나 불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당시 베스트셀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는 두 종류가 전해졌는데, 하나는 남양주시 불암사에 전해진 불암사본으로 1631년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鄭斗源)이 가져온 것이다. 불암사본은 완질로 전한다. 다른 하나는 바로 선암사에 있는 것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사명대사가 일본에 갔다가 포로들과 함께 돌아올 때 가지고 온 책이 낡아지자 1711년 승려 해운(海雲)과 거사 최서룡(崔瑞龍)이 갑계를 조직하여 비용을 만들고 목판을 새겨 책으로 간행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복판이 절반 정도만 전하고 있다. 
 불암사 목판본은 크기가 34.6 × 23.0㎝로 한 면에 그림 다른 한 면에 한 행 24자, 총 12행의 글자로 대략 285자 내외로 맞추어진 내용이다. 반면 선암사 목판본은 크기는 36.4 × 23.3㎝으로 불암사판과 비슷한데, 한 면을 상하로 나누어 위에 그림을 그리고 아래 그 그림의 내용을 적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글 그림의 내용은 거의 차이가 없는데 한 면에 그림과 글씨를 쓰다 보니 화면이 작아 글과 그림이 세밀하지는 않다. 그리고 지방에서 계원들이 돈을 모아 제작한 것이다 보니 경기도에서 제작된 불암사본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 하지만 선운사판과 같은 형식의 『석씨원류』 책이 중국에서도 완질로 전하는 것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1486년에서 153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대흥륭사본이 이 선운사본과 동일한 구성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흥륭사본도 완질이 아니라 부분만 남아 있어서 두 본의 원형을 유추하는데 서로 도움이 된다. 이와 더불어 스님들과 재가신도들이 돈을 모아 부처님의 일대기가 적힌 책을 널리 알리기 위해 목판을 새긴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 것이어서 그 의의는 더 크다. 다만 목판이 절반 정도만 전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 선운사와 불암사판 『석씨원류(응화사적)』의 발간은 조선시대 초기 석가모니 일대기를 그린 불화 팔상도에 다양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활동을 추가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즉 17세기말-18세기 초에 기존의 단순한 팔상도 구조에 새로운 장면들을 추가되어 그려졌는데 그 장면들이 바로 선운사와 불암사본 『석씨원류(응화사적)』에서 가져온 것이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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