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 - 진흙 속의 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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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 - 진흙 속의 연꽃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8.2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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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

몇 년 전 여름휴가 때 내자와 함께 완도행 여객선에 몸을 싣고 전남 무안 회산 백련지를 탐방한 일이 있다. 전체 면적이 10만 평쯤 되는 이 연못은 동양 최대의 백련白蓮 자생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연꽃의 원산지는 인도이다. 국내에 언제 어떤 경로로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재배되어 왔다. 홍련紅蓮은 흔하나 백련은 아주 드문 편이다. 더욱이 이곳처럼 온통 백련으로만 뒤덮인 곳은 달리 찾아보기 어렵다.
  백련 꽃은 해마다 7월부터 9월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한다. 연꽃 축제가 열리는 8월 중에 그곳에 간 까닭은 삶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을까 해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연이 진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는 물속에 있되 꽃은 흙탕에 더럽혀지지 않은 채로 물위로 피어난다 해서 지하·지상·하늘의 세계에 비유했다. 또 밤이 되면 꽃잎을 닫고 새벽녘 햇볕을 받아 다시 꽃잎을 연다고 해서 생사윤회의 상징으로 여겼다 한다. 
  우리 가족이 2003년 아파트를 떠나 감귤농장으로 이주한 후 첫 번째의 기획은 연못을 만드는 일이었다. 너비 2미터, 깊이 1.5미터 되는 해자 형 농약 물탱크를 용도 폐기하고 바닥에 진흙을 깔아 어린 연을 심고 또 새끼 잉어들을 기르기 시작한 지 서너 해가 지나자 소담스런 연못으로 바뀌었다. 
  6월부터 8월까지 수련이 핀다. 너울너울한 잎과 순결·청순한 꽃이 잘 어울린다. 그 사이로 손바닥 크기의 비단잉어들이 유유하게 헤엄친다. 
  밤에는 연꽃의 꽃잎은 닫힌다. 그 바깥 꽃잎은 거칠고 두껍고 단단하다. 아침 해가 뜨면 바깥 꽃잎부터 열리기 시작해 한 겹씩 한 겹씩 열려 마침내 활짝 피어난다. 
  꽃잎을 열게 하는 것은 햇빛의 밝음과 햇볕의 따뜻함이다. 진흙 같은 이 몸 에서 연꽃처럼 피어나려면 의심과 혼란을 불태우는 지혜와 뭇 생명들을 키우는 자애로움이 함께 있어야 함을 조금씩 알아 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한 발은 풍진 속에 둔 채 높고 고상한 정신세계를 추구한다. 하지만 세속적 욕망과 유혹 앞에 시달리기 마련이어서 도심道心을 지켜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 오히려 진흙을 자양분 삼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연꽃은 꽃과 동시에 열매를 맺는다. 이를 인과동시因果同時라 말한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꽃대를 물속으로 끌어들이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도, 통째로 떨어지는 동백꽃도 닮지 않았다. 
  뿌리, 잎, 열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쓸모없이 버려지지 않는 연. 몸뚱이까지 사람들에게 보시하고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간다.
  「유마경」에 이런 시구詩句가 있다. “높은 언덕이나 육지에는 연꽃이 나지 않고 낮고 습한 진흙에서 이 꽃이 난다.”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흙탕물에 때 묻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따니빠다』의 사자후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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