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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나는 에세이 - 두 마니아이수 - 수필가, 혜향문학회 회원

한 사물읗 보고도 여러 의견들이 난분분한데 내가 부는 색소폰 연주에서도 그렇다. 내 나이에 익숙한 옛 가요를 젊은 세대들에게 들려줬더니 시큰둥한 표정이고 그게 동요밖에 모르는 세대에는 더욱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결국 만화책을 읽는 세대와 소설책을 읽는 세대를 구분 못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내 연주 솜씨에도 흠결이 많겠지만 이 평판도 가지각색으로 나뉜다. 색소폰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잘 분다.’하고 색소폰 소리를 조금 들어본 사람은 ‘괜찮다.’하고 색소폰을 조금 부는 사람은 ‘그저 그렇다.’하고 색소폰에 달인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은 ‘뭐 그게 색소폰 소리냐’고 냅다 누른다. 연주의 발전에 있어서도 진도에 따라 다르다. 우선 초보의 악기 익히기에서 악보 익히기로 다음은 그 연주할 노래를 이해하기에서 고수들의 연주를 흉내 내기까지,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단계라 악기 하나만 사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계이다. 이다음부터는 수련 정진이 어려운 단계로 자기능력이 어디까지인가 아는 단계이다. 이 단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자기표현을 소리로 내는 고수의 단계일 것이다. 고수들의 연주소리를 들어보면 아마 프로 아무개가 부는 것일 거라는 짐작을 하게 되는 것은 제 나름의 표현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색소폰을 배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수들의 부는 것을 흉내 내는 것으로 최종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그게 경지에 오른 것처럼 자아도취에 빠져버리게 된다. 이걸 사회적인 일에 견강부회 해본다면 어디서 얻어들은 짧은 지식을 그게 전부인양 분석도 비판도 없이 자기가 발견한 지식처럼 하고 여과 없이 전하는 형식과 같은 것이다. 
아직은 고수 흉내 내는 것으로 낙을 삼는 나에게도 내 색소폰 소리를 좋아하는 두 마니아가 생겼다. 이미 옛 가요가 몸에 녹아 체질화 된 채, 저승 문턱이 간당간당 보이는 나이들이지만 세계적인 연주가 케니지도 어려워했다는 뽕짝(트롯트) 전문 감상맨들이다. 이제 그들은 발라드나 신식가락으로 올라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들은 나에게는 종자기와 같은 사람들이다. 십중팔구 노래들이란 사랑, 이별, 눈물, 슬픔, 외로움 등의 뻔한 레파토리들이다. 그렇다 하드라도 구김살 없이 연연히 이어지는 것을 보면 온갖 삶의 표현들이 그 속에 있는 것 같아진다. 이들은 내가 남북이 갈린 휴전선의 한을 애절한 가락으로 뽑아낼 때는 침통한 표정으로 통일을 염원하고, 흐지부지 끝난 로맨스를 우려낼 때는 옛 추억이 아롱진 듯 열심히 마음의 박수를 쳐준다. 때로는 서툴게 부를 때가 더 좋았다며 반들반들 기름칠한 곡조를 과소평가하기도 한다. 
종자기가 죽었을 때 백아가 절현했다는 고사 속에 어렴풋이 백아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내 노래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노래한들, 연주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실 내가 이걸 불면서 생계수단으로 삼을 악공도 아니요 이름을 떨치려는 연주가도 아닌 바에 이들과 한가한 시간을 만들어 헛 폼 잡는 일도 삶의 한 묘미인 것 같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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