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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가피”제주등축제 참가기 / 성남옥 불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제주등축제를 함께 준비하고 치르고 마무리한 성남옥 씨가 등축제 참여기를 보내왔다. 등을 만드는 과정과 축제를 준비하면서 가슴 졸이던 일들이 생생하게 전해온다. 그 가운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 나누는 따스한 정이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다. 이 글을 통해 등은 세상을 밝히면서 우리 스스로를 먼저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편집자주>

 

 

배접을 마친 하얀 등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성남옥 씨.

비가 내린다. 유난히도 뜨겁고 무더웠던 여름날을 잠재우기라도 하는 듯 평소 같으면 반가웠을 비가 걱정거리로 다가온다. 작년 등축제를 치르고 두 번째 등축제를 준비했다. 미리 준비한다고 했지만, 행사 날짜가 다가오니 마찬가지로 쫓기는 듯하다. 
연등은 부처님께 공양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그것의 의미는 ‘번뇌와 무지’의 어두운 세계를 부처님의 지혜로 밝게 비추는 것을 상징한다. 부처님 당시에도 등공양의 풍습이 있었던 것 같다. 부처님께서 영취산에 계실 때 밤을 밝힌 다른 등들은 다 꺼져도 가난한 여인이 지극한 서원과 정성으로 밝힌 등불만은 꺼지지 않고 끝까지 빛났다고 한다. 이것을 보신 부처님께서 “이 여인은 등불 공양의 공덕으로 성불할 것이다”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등축제가 한참인데 비가 온다. 미리 일기예보를 알아봤지만, 내리는 비는 어쩔 수가 없다.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왠지 우리네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우리 계획대로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할 일을 열심히 해 나갈 뿐이다. 
인도 소설 중에 “적절한 균형”이라는 책이 있다. 인도를 가고 싶을 때나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읽다보니 이제 서너 번은 읽은 것 같다. 제목처럼 두 사람의 인도 청년이 희망과 절망적인 상황을 넘나들며 살아가는 인생역경을 그린 이야기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작은   가능성이 생겨 삶에 희망을 갖고 도전을 한다. 그러나 무언가가 잘 풀린다 싶을 때 그들은 예측도 못했던 사건에 휩쓸려 나락으로 떨어지곤 한다. 내가 좋아하는 점은 그들이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극단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막상 곁에서 지켜보던 유복한 집안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친구는 그들의 불행함을 보고 충격을 받아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지고 만다.) 두 사람은 그들에게 닥쳐오는 희망과 절망 모두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본래 인도인들의 기질과 그들의 종교생활이 영향을 주기도 하겠지만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면, 매번 불평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축제기간 중에 비가 오기도 하고 거친 바람에 등이 날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개막식을 하는 시간과 폐막행사를 하는 시간에는 비도 오지 않고 무덥지도 않은 날씨였다. 
축제를 앞두고 등을 만들며 여러 사람들과 부처님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거사들은 골조를 열심히 만들었고, 등에 배접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부처님의 가피가 이어졌다. 생각지도 않던 금강선원 보살들이 나타나 즐거운 마음으로 도움을 줬다. 배접한 하얀등이 작업실 바닥을 채울 즈음에는 젊은 보살이 따님들을 데리고 나와 멋진 도안들로 등을 장식해 주었다. 
배접을 하는 보살들, 채색을 하는 보살들 모두가 행복한 마음으로 작업을 해 나갔다. 하루 종일 마룻바닥에 앉아 채색을 했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라는 생각이 든다. 일생을 살아오면서 오직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것이 그림이었다. 핑계 같지만 이것저것 하다 보니 그 꿈은 한쪽 곁으로 밀어둘 수밖에 없었다. 
등축제 준비를 하며 원없이 붓질을 해본다. 망설임없이 색깔 배합을 했다. 내 자신도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다 잊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덧 나의 감각은 모든 것을 기억해 내어 그림을 그렸다.
축제일이 하루하루 다가옴에 따라 우리의 작업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급기야 행사 전날은 미술을 전공한 보살과 함께 밤을 꼬박 새우기에 이르렀다. 몸은 지쳤지만 가슴 속에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환희심이 일었다. 
개막식이 시작되자 등축제를 보러 오는 보살들과의 반가운 만남이 또다시 힘이 되어 주었다.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스님도 뵐 수 있었고, 오랜만에 보는 거사님도 있었다. 
둘째 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주위에서는 철수하지 않는지를 문의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우리는 축제를 중단하지 않았다. 날 탓인지 아무래도 행사장은 한산했다. 체험부스에 도라에몽등을 설치하고 시선을 끄니, 아이들이 엄마 손을 이끌고 모여든다. 엄마가 만들어준 등에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의 솜씨가 놀라웠다. 많이 해 본 붓질이 아니련만 어른들과는 달리 망설임없이 그려 나갔다. 

그림을 그려 넣어 다 완성된 등을 들고 행복해 하는 가족의 모습.


한 아이가 의자에 앉아 꼼짝을 하지 않았다. 본래 어른들을 대상으로 등 만들기 체험을 하던 터였다. 그 아이의 엄마는 필리핀 여성이었고, 자폐아인 작은 아이를 달래느라 큰 아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했다. 어쩌면 그냥 그대로 그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간절함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고 배접을 담당한 선생님이 종이붙이기를 도와주었다. “등을 완성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말에 그 아이는 인내력을 발휘하여 등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정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림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붓을 잡은 아이는 거침없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마치 이제껏 가슴 속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뿜어내기라도 하듯 아이는 붓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의 얼굴엔 행복한 웃음이 피어났고, 그것을 보는 엄마들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가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면 보는 사람의 마음도 행복해지는 것 같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바람 때문인지 마지막 날은 비도 오지 않고 무덥지도 않았다. 그리 많지 않은 사람들이 둘러앉아 노래자랑이 시작됐다.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아이들까지 무대에 올라 열창을 했다. 실력과 상관없이 참석자 모두에게 선물이 주어졌고, 작은 것이지만 모두가 즐거워했다. 
우리는 중간에 철수하지 않은 것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끝까지 남아 함께해 주시는 분들이 참 고마웠다. 바라밀호스피스회 수상 스님은 시종일관 함께하시다가 노래자랑 심사를 맡아 주셨다. 불교신문 객원기자들도 망설임 없이 무대에 올라 열창을 한다. 
3일간의 일정이 끝나고 맑은 날씨를 감사하며 지친을 몸을 이끌고 귀가했다. 뒷정리는 밝은 다음날 하기도 한 것이다. 
아침 일찍 창밖을 보니 또 비가 한 차례 내렸다. 우리의 관념을 항상 뒤집는 것이 자연현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게 된다.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가느다란 빗줄기는 어김없이 뒤집는다. ‘아직 긴장을 풀지 말라’고.
서쪽에는 물폭탄처럼 비가 쏟아 붓자 직장에서 일하던 거사님이 정신없이 쫓아왔다. 유유자적 일하는 우리를 보고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큰장엄등들이 물폭탄 세례를 맞아 망가지는 상상을 했던 모양이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낸다는 것이다.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등 하나하나 정성들여 만들었다면 그 공덕 역시 헛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참으로 힘겨운 행사였다. 적은 인원으로 하나에서 열까지 스스로 준비들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은 불협화음도 있었고, 힘에 부쳐서 도중에 탈락한 멤버도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해낼 수 있다는 우리의 마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즐거움을 전해줄 수 있었다. 불자가 아닌 주변인물도 등축제를 보고 가서 밴드에 감동의 글을 올렸다. 
“산지천 행사 중에 가장 좋았던 행사로 기억됩니다. 저물녘에 가서 보세요.”(詩동인회 ‘라음’)
‘부처님 감사합니다.’
불교에서 등은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의 가르침으로 어리석음과 어둠을 밝히는 의미로 지혜에 비유되었으며 이를 등공양이라 하여 향공양과 더불어 중요시 하였다. 또한 연등을 보면서 마음을 밝히는 것을 관등觀燈이라 하여 세상살이에 눌려 있던 자신의 마음을 밝게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많은 불자들이 마음을 내어 등축제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 만나는 보살들도 함께 작업을 하다보면 금방 친한 도반처럼 다정해진다. 관계 속에서 책임을 지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 한다. 따라서 인간이 고귀한 것이다. 관계와 동료애를 느끼는 것이 바로 휴머니즘인 것이다. 
연못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포물선을 그린다. 커다란 물고기들이 위로 떠올라 빗방울을 즐긴다. 물 위에 떠 있는 하얀 수련과 수련 잎들이 조화롭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려니, 모든 대상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참 행복하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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