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문화
명상에세이 - 풀베기 유현
유 현

감귤 과원에서 15년째 살면서 무 농약·유기농법으로 감귤 농사를 짓고, 사과·배·감·오디·매실·밤·대추 같은 과수들을 키우고 있다. 
 게으른 농부인 나에게 제일 힘든 일은 풀베기이다. 오뉴월 장마가 오면 풀들이 제 세상을 만난다. 어찌 그리 잘 자라는지 뽑고 뽑아도 계속 올라오는 잡초들의 강인한 생명력은 경이로울 뿐이다. 
 잡초는 과수가 차지할 땅과 공간을 점령하고 자양분과 수분을 빼앗는다. 넝쿨 잡초는 햇볕을 차단하여 과수의 광합성 작용을 방해함으로써 과수를 웃자라게 하고 지온을 저하시키며 통풍을 저해해 과수의 성장을 방해한다.
  감귤 밭에 올라온 잡초의 종류는 몇 가지나 될까. 명아주, 쇠비름, 개비름, 방동사니, 망초, 환삼덩굴 등등. 완전 잡풀 숲 수준이다. 
 여름이 더운 것은 계절의 순환 법칙. 남들은 이때쯤 산과 바다로 피서를 가는데, 서늘한 아침 시간에 짬을 내 풀베기로 맞불을 놓는다. 예초기를 돌려 잡초를 베어 쓰러뜨린다. 망초같이 키가 큰 놈은 한 번이 아니라 두어 번 잘라야 한다. 녀석은 밑동이 돌처럼 탱탱하니 몇 번 더 손을 타야 한다. 특히 감귤나무를 타고 올라가 엉킨 칡이랑 환삼덩굴을 낫으로 제거할 때면 과수에게 말을 건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두어 시간 하다 보면 뼛속의 수분까지 다 빠져 나올 정도로 속옷이 젖는다. 이열치열이라고, 삼복더위에 나만의 피서법이다. 
 잡초 키워서 장마 전과 장마 후에 때 맞춰 베어 주면 유기물로 환원되어 지력地力이 좋아지고 그 토양에서 자란 작물이 자양분을 공급 받아 품질도 좋아진다고 해서 이를 친환경농법이라고 한다. 무 농약 감귤 재배를 한다면서 제초제와 같은 농약도 함부로 쓸 수 없는 노릇이고 보면 매일 잡초와 싸우느라 땀이 마를 날이 없다. 
 8월의 풀들을 없애면 또 기다렸듯이 가을 풀들이 올라온다. 흙 한 줌 속에 수천 개의 풀 씨앗이 숨어 있다고 한다. 풀을 뽑는 순간 그 아래 숨어 있는 수 천 개의 씨앗들이 싹틀 준비를 하는 것이다. 풀을 뽑을수록 더 많은 풀들이 자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든 것을 제 힘으로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 인간에 대한 풀들의 유쾌한 반격이라고 할까.
 농사엔 잡초가 큰 골치 덩어리이나 풀베기를 하면서 짜증을 내거나 거슬린다고 그들과 다투지 않는다. 잡초를 매는 일은 평상심에서 나온다. 때와 조건에 맞춰 올라오는 잡초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문득 ‘레빈’의 풀베기 장면이 떠오른다. 톨스토이의 대작,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는 크게 ‘안나’와 ‘레빈’,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3부 4장을 펼치면 ‘레빈의 풀베기’라는 제목이 나온다.
 “레빈은 풀을 베면 벨수록 망각의 순간을 더욱더 자주 느끼게 되었다. 그럴 때는 손이 낫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낫 자체가 생명으로 충만한 그의 몸을, 끊임없이 스스로를 의식하는 그의 몸을 움직였으며, 그가 일에 대해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일이 저절로 정확하고 시원스럽게 진행되었다. 이럴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중략)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누군가 그에게 몇 시간이나 풀을 벴느냐고 물으면, 그는 30분 정도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 있었다.”
  물론 시·공간은 다르지만 톨스토이의 농장 체험과 나의 그것은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몰아沒我다. 
밭에는 잡초가 독이다. 나에겐 탐욕과 성냄이 독이다. 풀베기를 하듯 마음의 오염원들을 걷어 내야 한다. 잠재된 욕망과 미세한 분노까지 다스려야 나와 남을 해롭게 하지 않겠지.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저작권자 © 제주불교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주불교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