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 다 잘 살길 바란다면 하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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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 다 잘 살길 바란다면 하심해야”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09.1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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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인 스님 사자후

드디어 아침저녁으로 살랑살랑 가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게다가 가족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추석연휴가 바싹 다가오니 마음 쓸 일이 더욱 많아지기도 했다. 이럴 때 우리 불자들은 어떻게 마음을 쓸까? 중문에 약천사를 세우신 혜인 스님의 감로법문에서 그 답을 들을 수 있다. 스님은 하심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비로소 자비심은 늘어나고 그로 인해서 지혜 역시 커진다고 하신다.   <편집자주>

 

혜인 스님 1943년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화순리에서 출생. 1956년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출가했다. 경상북도 팔공산 동화사에서 일타 대화상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였으며, 1962년 10월 가야산 해인사에서 자은 대율사를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였다.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안거 수선하면서 선교를 겸수하였다. 1971년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각에서 대신심으로 108만 배 기도를 성취했다. 1981년 제주 약천사 대작불사의 원력을 세워 1988년 큰법당 불사를 착공하였고, 1996년 약천사 대가람의 낙성식을 가졌다.

불교의 핵심은 지혜요, 자비이다. 
지혜와 자비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종교가 불교요, 지혜와 자비가 두 바퀴가 되어 큰 수레를 잘 굴러가게 하는 종교가 대승불교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부처님을 ‘양족존兩足尊’이라 칭한다. 지혜와 자비를 구족하신 분이란 뜻이다. 
그러면 불자는 어떠한 존재인가? 
아버지를 닮기 위해, 아버지인 부처가 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곧 자비와 지혜를 함께 갖춘 거룩한 인물이 되고자 노력하는 존재가 불자이다. 지혜가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개발하는 것이라면, 자비는 ‘나’밖의 세계 또는 대인 관계를 원만히 이루어 내는 것이다. 지혜가 자리自利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자비는 이타利他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연히 자리인 지혜가 원만히 갖추어지면 이타인 자비를 지혜롭게 발현시킬 수 있고, 이타행인 자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스스로 이롭게 하는 자리自利의 삶이 크게 열리기 마련이다. 참으로 불교의 목표는 지혜와 자비를 함께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지혜는 개인의 수행이나 능력과 함께하는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자비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자비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몸과 말과 뜻, 곧 신‧구‧의身口意 삼업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흐뭇하고 고맙고 보탬이 되는 생활을 하고 말을 하고 마음을 쓰는 것이 자비이다. 자비는 마치 봄기운과 같은 것이다. 만물이 봄기운을 받게 되면 얼음도 녹고 새도 울고 풀도 돋고 꽃도 피어나듯이 자비의 기운을 받으면 인생이 살아난다. 삭막하던 현실에 봄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자비심은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같다. 항상 사랑을 베풀고 잘못한 것을 너그럽게 이해하며 바른 길로 이끌고 큰 잘못까지도 능히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다. 정말 가난하고 못 배우고 불행하고 병들고 부족한 이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어 어루만져주고 다독거려주고 보탬이 될 수 있는 말 한 마디, 행동하나, 마음 한번 써주는 것이 자비이다. 
그러나 힘 있는 내가 나보다 모자라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자비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나보다 모자란다.’, ‘부족하다.’, ‘너는 돈이 없다.’, ‘너는 인물이 못생겼잖아.’, ‘너는 벼슬이 없고 나보다 아래잖아…….’ 이러한 생각이 있으면 올바른 자비가 발현되지 않는다. 
베풀면 나에게 큰 복이 돌아오고, 기분이 좋아지고, 득을 보기 때문에 베푼다는 식의 행위라면 어찌 자비라 할 수가 있겠는가? 하물며 스스로를 자비로운 모습으로 포장하여 남에게 돋보이고자 하는 위선적인 행동이라면 오히려 죄업이 될 뿐이다. 
진실로 자비심이 깊은 사람은 진실을 외면한 거짓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나보다 못한 존재가 아니라, 부처님으로 생각한다. 불성佛性을 지닌 거룩한 분, 장차 부처가 되실 분으로 본다. 무학 대사의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으로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로 보인다.”는 말씀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고자 노력하여 부처님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갖추게 되면 그에게는 미운 사람도 없고 악한 사람도 없고 나쁜 사람도 없으며, 나보다 못하고 나 아래로 있는 사람도 없다. 이것이 바로 8정도의 정견이며, 부처님은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 가지가지의 방편을 쓰신 것이다. ‘남편불’, ‘부인불’, ‘아기불’, ‘시어머니불’, ‘며느리불’ 등 모두가 부처님처럼 보이는데 어찌 부처님을 받들듯이 하지 않겠는가? 부처님께서 ‘배고프다’, 하면 공양을 올릴 일이요, ‘아프다’고 하면 정성껏 돌볼 뿐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비이다. 
그런데 중생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미운 사람, 싫은 사람,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왜 그럴까?
자신의 내면세계에 미움을 받을 수 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자기의 내면세계가 미움의 요소로 가득 채워져 있으면 만나는 사람마다 미워한다. 
실로 세상을 살다보면 가까이에 미운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얼마 뒤 그 사람이 사라지고 나면 미운 사람이 또 생긴다. ‘저 미운 놈! 다른 데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하다가 그 사람이 가고 나면 내 마음자리에 또 다른 미운 놈이 들어앉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운 놈’을 쫓아버리기보다는 내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미움’의 요소를 자비심으로 바꾸어야 한다. 미운 그를 불쌍히 여기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장차 부처될 분으로 보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어떠한가? 미운 놈을 불쌍히 봐주기가 쉬운가? 부처님처럼 보는 것이 가능한가? 보통 사람이라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내 마음을 바꾸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계속 미워하며 살아야 할까?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이 하심下心이다. 아상我相을 멈추게 하는 하심이라는 약을 써야 한다. 대인관계의 모든 문제는 나를 과시하면서 상대를 깔보거나 무시하는 아상에서 비롯된다. 이 아상의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삼악도三惡道의 바다는 깊어만 간다. 아상으로 남을 미워하고 무시하게 되면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요, 자비심도 마찬가지다. 아상이 치성하면 깨달음을 이루는 공부에 진척이 있을 수가 없다. 아상이 가득 차 있으면 본래의 깊은 자비심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아상을 없애는 최상의 방법인 하심을 강조하셨다. 
하심이 무엇인가? 나를 남 아래로 둘 수 있는 마음이다.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밑에 있겠다는 마음이다. 가장 밑에 있으면서 일체 중생을 부처님처럼 받들며 살겠다는 자세이다. 이렇게 하심을 하는 이의 마음이 어찌 자비롭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맑게 깨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범유하심자凡有下心者 만복자귀의晩福自歸依로다
무릇 하심을 하는 자에게 온갖 복이 저절로 돌아온다네.

아상이 무너지고 하심만 잘 되면 모든 존재가 차츰 부처님으로 보일 수 있게 된다. 하심만 잘 되면 저절로 자비로워지고 만복이 스스로 귀의한다. 온갖 행복이 저절로 찾아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 남이 모두 잘 살고 가정과 사회와 나라를 불국토로 만들려면 하심을 하면서 자비를 실천하면 된다. 모든 부처님께 대자비와 하심을 통하여 그분들의 불국토를 이루어 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부인 우리에게는 무연의 대자비를 실천하기 쉽지도 않고 남을 부처님처럼 떠받드는 하심을 완성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면상무진공양구 面上無瞋供養具
구리무진토묘향 口裡無瞋吐妙香
심리무진시진보 心裡無瞋是眞寶
무염무구시진상 無染無垢是眞常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

이 게송은 문수동자께서 당나라 무착 선사에게 일러준 것이다. 그런데 이 게송 속의 ‘성 아내는 그 얼굴’과 ‘부드러운 말 한마디’야 말로 우리가 능히 실천해야 하고 가정과 사회와 나라를 불국토로 바꾸어 놓는 첫걸음이 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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