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성지 보드가야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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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성지 보드가야를 보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0.04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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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고행 - 인도 불교 성지를 중심으로 ④ /오영호 시인

우리나라 5~60년대 모습처럼 보이는 인도의 농촌을 지나 버스로 6시간을 달려간 곳은 부처님이 깨달은 곳, 보드가야. 그곳엔 아소카왕이 세운 마하보디 대탑이 있고, 부처님의 성도를 기리기 위한 보리수나무가 심어져 있다. 일행은 그곳에서 법회를 보는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오영호 시인은 자비와 평화가 가득한 세상이 되길,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기를 빌었다. <편집자주>

차창 밖 풍경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하보디 대탑.

버스 밖 풍경도 보는 맛이 있다. 특히 농촌 마을길을 달릴 때는 더 그렇다. 어쩌면 우리나라 5~60년 대 모습을 닮은 것 같은 곳도 있다. 그러나 집은 초가집보다 벽돌집이 대부분이다. 집안을 들여다보지 못했으니 세세한 것은 알 수가 없다. 단 하나 특이한 것은 화장실이 없다고 한다. 어쩌다 강의 다리를 지날 때 모래밭에 볼일을 보는 사람을 볼 수 있다. 우리 일행도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달릴 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알맞은 시간에 주유소나 호텔을 만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참으로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은폐가 잘 될 수 있는 숲을 찾아야 했는데 운전기사는 노하우를 이미 터득하고 있어 알맞은 곳을 잘도 찾아 해결하는 것이었다. 
여름 농한기라 그런지 집 근처마다 주민들과 아이들이 많이 보인다. 대체로 아이들은 맨발이고 옷도 매우 남루하다. 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라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좀 그랬다. 그래도 매우 천진난만하게 보였다. 뭐 하나라도 주고 싶은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인도 정부도 정책적으로 구걸하는 자들에게 아무 것도 주지 말라고 하고 있다. 왜냐면 거지로 살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리라고 한다. 그래서 주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다. 농촌 들판은 수확을 마쳤는지 쉬고 있는 땅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벼는 이모작 이상을 한다. 푸르게 보이는 것은 옥수수와 사탕수수 밭이다. 조그만 언덕배기마저 하나 없는 넓은 광야, 종일 차로 달려도 그 모습 그대로다. 검은 소를 키우는 농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들도 보이지만, 집 앞에 여물통을 두고 키우는 소들이 많다. 소 몇 마리를 키우는 농가는 부자라 한다. 우유를 짜서 파는 수입이 짭짤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집에서 키우는 소들은 모두 암소들이다. 참으로 웃기는 일은 키우는 암소가 수컷을 나면 젖을 떼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들판에 보이는 소들은 수소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짐작이 갔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상점들이 즐비한 번화한 곳에서도 집 앞에 소를 키우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소로 인한 도움은 대단한 것 같다. 우유를 얻을 뿐만 아니라 소똥은 말려서 땔감으로 사용한다. 또한 소똥에서 암을 고칠 수 있는 약 성분까지 추출해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돌아다니는 개들도 많다. 목줄로 묶어 있는 개는 볼 수가 없다. 풀풀 날리는 먼지, 아무데나 쌓아 논 쓰레기더미. 그곳을 뒤지며 배를 채우는 소와 개들.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인도인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고,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젊은이들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 있다. 
또 하나 짓고 있는 집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처음엔 짓다만 집이 이렇게 많은가 의아했다. 알고 보니 1층에 살면서 2층이나 3층을 짓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돈이 생기면 벽돌을 사고 조금씩 지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완성은 1년도 좋고 2년도 그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중소도시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성불의 터에 세운 마하보디 대탑

인도 비하드 주에 있는 보드가야는 부처님의 6년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이곳에 마하보디 대탑이 서 있다. 여기까지 버스는 여섯 시간 쯤 달렸다. 입구까지 가기 위해 난생 처음 오토릭샤(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를 탔다. 승차 인원은 제한이 없는 것 같다. 대체로 운전수까지 6명씩 타고 달린다. 어떤 오토릭셔는 8~9명도 다반사다. 그 뿐인가. 오토바이 한 대에 7명까지 태우고 달리는 것도 보았다. 릭샤는 북새통 골목을 잘도 빠져 나갔다. 이곳 유명 관광지는 입장 절차가 까다롭다. 소지품은 물론 사람까지 엑스레이를 통과해야 한다. 핸드폰은 가지고 들어 갈 수 없고, 그런데 카메라는 되었다. 오래 전 폭탄이 터지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맨발로 들어가야 한다. 일사분란하게 통과해서 대탑 앞으로 들어갔다. 올려다보니 입이 벌어진다. 아름답다, 화려하다, 장엄하다는 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이 탑은 대보리사로 불리기도 하고, 금강좌 사원이라고도 한다. 서기전 3세기 경, 아소카 왕이 처음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음을 성취하신 ‘금강좌’ 위에 세웠다고 한다. 벽돌로 쌓아올린 이 대탑은 변이 45m 인 정사각형 기단 위에, 한 변이 15m인 정사각형 하단부를 가진 방추형의 탑을 세웠다. 높이는 52m다, 대탑은 보드가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된지 오래됐다. 2002년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세계적인 걸작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


우리 일행은 먼저 대탑 안에 봉안된 부처님께 가사 공양을 하였다. 관리하는 스님은 이미 입혀 있는 가사를 벗겨내고 우리가 마련한 새 가사를 입힌다. 가슴이 뭉클하다. 삼배를 올린다. 공간이 넓지 않다. 그러나 옆 구석자리엔 미얀마에서 오셨을까. 비구니 스님이 미동도 없이 참선 중이다. 이곳저곳 모든 것이 경이 그 자체다. 드디어 석가모니부처님이 깨달았다는 곳 보리수나무 아래 도착했다. 벌써 몇 외국 스님들이 참선 중이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어깨 위 승복이 젖어 있다. 
이 보리수나무는 전설에 따르면 싯다르타의 탄생과 함께 솟아올랐다고 한다. 현장 스님의 ‘대당서역기’는 여래의 열반일이 되면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며칠이 지난 후 다시 나뭇잎이 피어났다고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 보리수나무는 부처님과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때문에 깨달음의 나무라고도 한다.
지금 이 보리수나무는 원래의 보리수나무가 아니다. 이교도들의 박해로 원래 보리수나무는 잘려나갔다. 그 때 아소카 왕의 딸 상가미타는 부처님이 성도한 자리를 기리기 위해 이 보리수나무 가지를 꺾어 스리랑카의 아누라다푸라에 다시 꺾꽂이하였다고 한다. 그 보리수나무가 자라 4대 째 되는 보리수나무를 가져와 여기에 심어져 거목으로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의 그 보리수나무는 아니지만, 최초 보리수나무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보리수나무 옆에는 금강좌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이 첫 발을 내디딘 곳에 두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계단 위에는 공사중이라 가림막을 쳐놓아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계단 밑에는 법회하기 딱 좋을 만큼 공간이 있었다. 이렇게 자리를 차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복 받은 자들이라고 했다. 모두들 정좌하여 혜전 스님과 경수 스님의 집전으로 금강경 독송을 한다. 독경소리는 낭랑하게 울려 퍼졌다. 오가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 중엔 같이 앉아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심지어 두 분 스님에게 보시를 하는 외국인들도 있었다. 비록 덥고 지친 몸이지만 부처님이 깨달은 보리수나무 아래서 법회를 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 환희심이 한결 같아 신심이 더욱 돈독해지리라. 두 손을 모우고 혜전 스님의 발원문을 들으며 나의 모든 업에 대해 참회하고, 자비와 평화가 가득한 그런 세상,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길 빌고 빌었다. 

마하보디대탑 안에 모신 부처님


다음은 많은 절판(오체투지하기 좋게 만든 구조물)을 설치해놓은 곳으로 갔다. 주로 티베트 승려들이 절판에서 오체투지 수행을 한다고 한다. 스님 한 분이 좌선을 하고 있다. 스님은 성스러운 이곳에서 깨닫기 위해 화두 하나 챙기고 치열하게 자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으리라. 속히 성취되길 기원해 본다. 절판은 특별한 절차 없이 누구나 빈 절판만 있으면 차지할 수 있으며, 또한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대부분 몇 달씩 머물며 수행하는 스님들을 쉽게 볼 수가 있는데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오체투지 수행을 하는 스님은 볼 수가 없다. 만나는 외국 스님들께 인도 지폐 20루피를 드렸더니 보리수이파리 한 장을 준다. 고이 간직하고픈 마음이다. 입구를 나와 신발을 찾으러 간 곳은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었다. 상술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나 에어컨이 있어 더운 몸과 맘을 잠깐 쉴 수가 있었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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