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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일기-천지에 빠지다
고한철(관음정사 신도회 총무)

이번에는 볼 수 있겠지 하는 기대에 마음이 설렌다. 관음정사 주지 스님을 비롯한 신도들과 함께한 백두산 등정이 시작된다. 중국 령에 속하는 백두산, 서파 산문 등산코스를 택해 정상에 오르는 날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린다. 산중의 변덕스러운 날씨지만, 이번만큼은 꼭 천지를 볼 수 있는 행운이 있기를 소원해 본다.  
  한대림 기후인 길 양쪽에는 오랜 고목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이 지역에는 2,700여 수종이 자생하고 있다. 그중에 자작나무 등은 천여 년을 사는 나무도 있다. 그 긴 세월 한곳을 지키며 서 있는 나무 앞에서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56명을 태운 셔틀버스는 좁은 경사로를 따라 올라간다. 종점에 도착하자 일행들은 정상을 향해 계단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7년 전 간간이 비 내리는 5월에 처음 왔었다. 정상에 이르렀을 때 눈이 쌓여 있어 천지는 보지 못하고 장군봉과 여러 봉우리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내 작은 가슴으로 웅장함을 담아내기가 쉽지 않았던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과 처음 마주했던 그 설렘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여름철 일정을 택했지만, 이번에도 우리의 간절함을 저버렸다. 성치 않은 무릎으로 쉬고 걷기를 반복하며 가파른 1,442개 계단을 딛고 정상에 오른 노 불자들의 심정을 헤아렸다. 이날은 온종일 비바람이 불었고 정상 부근엔 안개가 자욱한 날씨였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천지 모습을 그려본다. 나는 두 번째 등정이지만, 일행들 대부분은 처음이었다. 생전에 꼭 한번은 보고 싶은 마음에 동참한 어르신들이 많다. 우리는 언제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내려오는 길을 따라 펼쳐진 야생화의 향연을 본다. 그리고 백두산이 폭발하면서 형성된 금강대 협곡을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튿날, 우리는 백두산 입구 도시인 이도 백화를 출발하여 북파 산문으로 다시 백두산 정상을 향해 길을 나선다. 숙소 날씨는 좋다. 걱정이 앞서 이동하면서 안내원에게 날씨를 물어보니 “하루에도 몇 차례씩 날씨 변화가 심해 지금은 알 수 없다”라고 한다. 자연의 순리는 어찔할 수가 없지만, 다시 오지 못할 분들을 위해 천지를 볼 수 있기를 나의 간절함이 기도로 이어진다.
  우리는 대형차에서 소형차로 갈아타며 굽이굽이 험한 경사로를 지나 정상 밑 집결지에 도착했다. 이미 많은 관광객이 도착하여 기다린다. 지반 침하방지와 안전을 위해 삼백 명씩 시간대별로 통과시키고 있다. 산 아래에서 정상을 향해 검은 구름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보이자 우리 일행들의 마음은 초조하였다. 
  잠시 후, 졸였던 마음이 풀어지며 얼굴마다 함빡 웃음꽃이 핀다. 먹구름 방향이 선회하고 있다. 안내원은 “덕(德)을 쌓아야 천지를 볼 수 있는데, 여러분은 불심이 있어서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한다. 천지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기 위해 일행들의 발걸음은 빨라진다.
  전망 좋은 장소에 몰려있는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차지한다.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천지의 모습은 절경이다. 한 폭의 풍경화다. 용왕담(龍王潭)이라고도 불리는 14km 둘레의 거대 칼데라 호수를 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여름인데도 가을 하늘처럼 흰 뭉게구름이 천지에 반영되어 피어오른다. 쉽게 볼 수 없는, 아무에게나 보여주는 모습이 아니었다. 천지에 빠지니 영혼이 시원하다. 얼마나 기다렸던 순간이었는가! 맑은 날씨는 축복이었다. 천지는 이 멋진 모습을 얼마나 많은 사진작가에게 선물했을까? 최남단에서 여기까지 찾은 우리에게 좋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백두산과 한라산을 우리나라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에 비유한다. 아버지의 근엄함을 느낄 수 있는 백두산 정상에서 맑고 투명한 천지의 물처럼 마음이 깨끗해진다.     
  일행들은 천지를 마음껏 바라볼 수 있는 시간, 장소를 이동하며 한 장면이라도 더 보려고 바삐 움직인다. 저마다 휴대폰 카메라에 멋진 장면을 담느라 분주하다.
 유명한 산에서 맛볼 수 없는 감동은 지금까지 산행하면서 삶의 의미를 일깨워준 덕분이다.   산은 저마다 특징을 갖고 있다. “인생이든 산행이든 한 발자국들이 모여 마침내 목표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산행에 구순을 눈앞에 둔 회주 스님도 함께했다. 불심과 원력으로 한 평생을 살아온 삶과 천지를 본 스님의 감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듯하다. 
  첫날은 안개로 인해 천지를 보지는 못했지만, 오늘은 천지를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백 번을 올라야 두 번 볼 수 있는 것이 백 두 산”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듯이 변화무쌍한 백두산 날씨를 생각하여 서파와 북파로 이틀 등산 일정이 마련됐다. 그중에 하루는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많은 분들이 기도 덕분에 천지를 보았다. 연로한 어른들과 일행들의 기쁨 가득한 얼굴이 곱다. 하산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남은 생에 힘이 들면 천지와 마주했을 때의 감동을 떠올릴 것이다. 기회가 된다면 북한 땅으로 백두산에 오르고 싶다. 요즘 남·북에 평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육로로 금강산에 가고, 묘향산도 등정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꿈은 현실이 될 것이다.   

제주불교신문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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