갠지스 강에 손을 담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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갠지스 강에 손을 담그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0.1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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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고행 - 인도 불교 성지를 중심으로 ⑤ /오영호 시인

삶과 죽음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인도의 갠지스강이라고 했다. 오영호 시인과 일행이 함께 배를 타고 갠지스강을 오르내리면서 만난 풍광들이 인도의 오래된 삶과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한다.  <편집자주>

 

갠지스 강변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멋진 집들과 옛성곽들이 보인다.

 인도에 꼭 오고 싶은 이유는 갠지스 강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지엽(시인. 평론가) 교수가 쓴 ‘현대 시조쓰기’ 이론서에 자아를 성찰하여 내면화하는 노력 또한 시조의 질적 향상을 위해 간과할 수 없는 문제라며 인용한 졸시 ‘등신아 까불지 마라’를 생각해 본다. 
 갠지스 강을 품고 있는 바라나시 인구는 120만 정도라 한다. 여기에 관광객이 80만 정도가 늘 오고간다고 하니 200만이 살고 있는 곳이다. 갠지스 강가로 걸어가는 길은 인산인해다. 사람과 소, 개들이 한 덩어리가 된 거리의 모습을 보면서 할 말을 잃는다. 그리고 이 지상의 색이란 색은 다 가져다 놓은 듯한 현란한 옷가게, 염료와 잡다한 물건을 파는 상점들... 음료수와 기념품을 파는 좌판들이 즐비하다. 그 사이로 오가는 많은 사람들. 오일장을 방불케 한다. 그 뿐인가. 손을 내밀고 있는 뼈만 앙상한 늙은 사람과 어린 아이들... 한 마디로 북새통이다. 그러나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성스러운 땅, 축복 받은 땅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한다.  
 
 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는 1983년 인도 초행길에 문학인들과 갠지스 강에 왔을 때 당시 문학인들이 ‘저게 사는 건가’라며 인도인들을 짐승처럼 경멸하자 그는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아픔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조 작가는 “인간에 대한 존중이 없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인도 북부를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는 갠지스는 인도인들에게 평범한 강이 아니다. 갠지스는 성스러운 강이며, 동시에 신(神)의 강이다. 서로 다른 신을 믿어도 갠지스의 이름 아래 그들은 하나다. 그래서 힌두교도들은 이 강물에 목욕재계하면 병이 낫고, 죄를 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늦은 오후에 발동기를 단 작은 배를 탔다. 사공은 능수능란하게 배를 몬다. 오른 쪽 강가를 따라 올라간다. 강가의 모습은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다. 모두들 핸드폰으로 셔터를 누른다. 강가엔 계단이 보인다. 여기선 가트라 한다. 즉 계단식 시설(집, 목욕탕 등)을 말하는데 이곳엔 80여 개의 가트가 있다고 한다. 가트 위에 있는 집들은 예외 없이 거대하고 화려한 성(城)처럼 보인다. 인디언들 특히 회교도들은 갠지스 강물에 몸을 씻어 정화(淨化)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과로 생각한다. 또한 죽으면 24시간 내에 화장을 해야 신의 앞에 갈 수 있고, 더 좋은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는 방법은 바로 바라나시 갠지스 강가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가트(Ghat)다. 인도인 특히 힌두교인들이 죽을 때가 되면 이곳에 와 머물려고 하는 이유를 이제 좀 알 것 같다. 때문에 이곳에 가트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부자들이라고 한다. 
 갠지스는 시바신이 살았다는 히말라야에서 발원했기에 더 성스러운 강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갠지스 강 중하류는 힌두교 성지이다. 그리고 이 강은 원래 ‘천상계(天上界)를 흐르고 있었던 성스러운 강’이라는 신화도 있다. 그래서 강의 언덕에는 가트가 설치되어 있으며, 목욕으로 죄장(罪障)을 씻어 없애버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때문에 이 강에서의 목욕은 힌두교도들에게는 최상의 기쁨이다. 만약 나이가 들어 이곳 갠지스 강의 언덕 부근에서 죽고, 화장되어 유골과 재가 갠지스 강에 흘러간다면 그것은 진정 무상의 기쁨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힌두교인들에겐 갠지스는 신적인 존재인 것이다.

갠지스강을 보기 위해 오영호 시인과 일행이 배를 타고 있는 모습. 왼쪽 맨 앞에 오영호 시인 모습이 보인다.

 강은 중요한 교통수단이기도 했다. BC 13세기 중기의 아소카왕은 북인도 각지의 불교성지에 10여m나 되는 이음새가 없는 높고 큰 석주(石柱)를 세웠는데 그것들은 모두 바라나시 남쪽에서 제작되었으며 갠지스 강 및 그 지류를 이용한 뱃길로 운반되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배는 오른 쪽 강변 따라 강물을 가르며 상류로 올라간다. 언덕 위 멋진 집들은 옛 성곽을 보는 것 같다. 여기저기서 셔터소리가 난다. 더 올라가자 불꽃이 보이기 시작하자 배는 아주 느려진다. 화장하는 모습을 잘 보라는 것이다. 인생무상을 곱씹어 본다. 마음이 울적해진다. 고갤 숙인다. 조금 벗어난 옆 강가에는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수영과 목욕을 하고 있다. 삶과 죽음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이곳 갠지스 강을 보며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다.’ 라고 하는 것이리라. 또한 많은 사람들이 바라나시를 찾는 이유도 바로 이 화장가트 때문일 것이다. 화장가트를 보지 못했다면 바라나시를 본 것이 아니고, 바라나시를 가지 않았으면 인도를 간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이유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상류까지 천천히 올라간다. 또 다른 화장터에서 불꽃이 보인다. 사공은 서서히 뱃머리를 돌려 반대편 강가로 달린다. 
 한참을 내려오다 모래언덕에 뱃머리를 올린다. 넓게 펼쳐진 모래언덕은 불경에 나오는 황하사라 한다. 조그만 병에 이곳 모래를 담아 만든 기념품이 판매되고 있기도 하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도 찍으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다른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 우리 곁으로 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한다. 흔쾌히 사진을 찍으며 서로 미소를 보낸다. 그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보는 것 같다. 우리가 외국인을 다르게 보듯이 말이다. 여기엔 들개들도 많다. 종류가 비슷한 개들로 순하게 보인다. 들에 있는 소들처럼 개들도 자유분방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인도 사람들은 모든 벽을 허물고 동물과 함께 자유분방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참으로 오랫동안 이어온 독특한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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