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태화산 마곡사(麻谷寺)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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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태화산 마곡사(麻谷寺) (2)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0.1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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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선생과 함께 가는 사찰순례(71)

 

백범선생이 마곡사에서 출가하여 머물었던 곳인 백범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는 각 나라에서 신청한 인류를 위해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을 평가하여 세계문화유산일람표에 등재한다. 등재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전문가들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이루어지는데, 인간의 창조적 천재성으로 만들어진 것이거나 문화사적으로 인류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주는 유산, 현존하거나 사라져 버린 문명과 문화전통에 증거가 되거나 인류 역사의 발달관계를 보여주는 유산, 급격한 변화로 파괴의 위험에 직면한 문화의 대표적인 유산 및 생활 전통, 사상, 종교 등과 관련된 뛰어난 유산 등을 등재 기준으로 한다.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훼손 방지와 보존을 위하여 유네스코의 기술 자문을 받게 되고, 보존하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는 국가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원을 해준다. 즉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는 것은 국내외의 관심과 지원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국가의 문화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기 때문에 그 나라 문화의 자존심을 세우는 성과라 할 수 있다. 2018년 현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나라 문화유산은 총 12곳(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까지 포함하면 13곳)이다. 해인사 장경판전, 불국사와 석굴암, 창덕궁 등이며 2018년에 지정된 12번째 문화유산이 바로 한국의 산지승원이다. 
 2018년 6월 30일 제42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위원회에서는 등재를 결정하면서 산사에 속한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건물 등에 대한 관리, 산사의 종합 정비 계획, 등재 이후 증가할 관광객에 대한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즉 향후  더 강력한 보존정책으로 산사의 가치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이날 등재된 산사는 일곱 곳으로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와 공주 마곡사이다. 이 일곱 곳 사찰의 공통점은 첫째로 만들어진 지 모두 천 년이 넘는 고찰이라는 것이다. 즉 천 년 넘게 내려오면서 우리나라 불교신앙이 변화해 온 역사적 과정을 담고 있는 사찰들이다. 둘째는 이들 사찰이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의 원형과 중국적인 요소 외에 한국 특유의 토착성까지 가미된 독특한 형식을 지닌 공간이라는 문화적 특수성에 있다. 이들 사찰에는 산지에 가람이 들어선 배경, 한국 전통의 건축 양식,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 불교가 살아남기 위해 취했던 여러 가지 특징과 한국 불교만이 지닌 통불교적 사상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셋째는 문화의 종합성에 있다. 등재된 일곱 곳의 전통 산사는 인도, 중국이나 일본의 사찰들과 달리 신앙으로 의식을 행하는 공간이자 승려들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천 년 넘게 내려온 승려들의 사상, 의식, 생활,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종합 공간이자, 그러한 의식과 기능이 현재진행중인 사찰이다. 특히 일곱 곳의 사찰을 묶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 신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도의 아잔타 석굴사원, 인도네시아의 보르부드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중국의 돈황 석굴사원 등도 모두 오래 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잘 보존되고 있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박제화 된 공간이다. ‘산지승원’이라고 할 때 승원은 승려들이 머무는 공간을 의미한다. 세계문화유산 신청을 할 때도 현재 승려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강조했고, 평가 전문가들도 그 점을 높이 샀던 것 같다. 물론 승려들이 사는 공간이다 보니 변형이나 훼손 위험이 많다. 가령 신심이 돈독한 주지스님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피를 나눠주기 위해 20~30미터의 큰 불상을 새로 세운다든가 템플스테이를 위해 기존의 작은 건물들을 없애고 큰 건물을 짓는다면 세계문화유산에서 등재가 취소될 수도 있다. 말 그대로 세계적인 웃음거리가 된다는 말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은 우리만의 문화유산이 아니라 인류 모두의 문화유산이므로 잘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마곡사의 본전인 대광보전(아래)과 대웅전(위)대광보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13년에 다시 지었고, 뒤에 자리한 대웅보전도 화재로 소실된 후 다시 지은 건물이다.


 일곱 사찰 중 한 곳인 마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본사이다. 절이 자리한 곳은 조선시대 이중환이 쓴 지리서인 『택리지』에 소개한 난세를 피할 수 있는 열 곳의 명당 중 한 곳이다. 절은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였고 마곡천이 절을 북원과 남원으로 나누며 휘감아 돌아나가니 풍수를 모르는 사람도 아늑하다는 느낌이 절로 드는 지형이다. 절에 전하는 1851년에 쓰인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에 따르면 643년(신라 선덕여왕 9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가 일곱 개의 절을 창건했는데 그 중 세 번째로 세워진 것이 바로 이 마곡사라고 한다. 이 내용은 당시 신라와 백제 상황으로 미루어보면 신뢰하기는 어렵다. 아마도 후세 사람들이 자장과 같은 큰 스님을 통해 절의 권위를 높이려고 꾸민 이야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더구나 삼국시대까지 올려 볼 수 있는 유물이 전혀 남아있지 않아서 고려시대에 창건된 절로 보기도 한다. 여하튼 기록과 남아 있는 유물과 합치되는 내용으로 보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1158~1210)가 중창한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마곡사에는 여러 점의 보물이 있다. 먼저 건축물로는 대웅보전(보물 801호), 대광보전(보물 802호), 영산전(보물 800호), 5층 석탑(보물 799호)이 있고, 불화와 서적류로 괘불(보물 1206호)과 감지금니묘법연화경 제6권(보물 270호),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보물 269호)이 있다. 그리고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세조 임금이 탔던 연(가마)과 범종, 청동향로 등이 전한다. 이외에 당대 유명한 서예가들이 쓴 여러 전각의 현판들도 볼 만하다. 게다가 백범 김구선생이 머물었던 백범당에는 백범선생이 즐겨 썼던 서산대사의 선시를 적은 글이 걸려 있다.  
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을 밟고 갈 적에
不須胡亂行  
어지러이 걸어선 아니 되겠지
今日我行跡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을
遂作後人程  
뒷사람이 그대로 따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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