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에세이-내 마음의 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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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에세이-내 마음의 법구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0.1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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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현

독서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독서의 중요성에 대하여 동·서양의 위인들은 많은 명언을 남겼다. 그 중에서 중국 남송 때 유학자 주희朱熹의 ‘독서삼도讀書三到’라는 사자성어가 내 맘에 꼭 든다. 눈으로 보고眼到, 입으로 소리 내되口到, 마음으로 뜻을 헤아려心到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가끔 서울에서 일을 볼 때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예전에는 지하철 안에서 책과 신문을 읽는 사람이 많았다. 요즘 풍경이 완전히 바뀌었다.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대부분 손에 스마트 폰을 든 채 동영상이나 기사를 보는 사람이 태반이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고 주위의 시선이나 소음에 아랑곳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읽는다. 이에 앞서 ‘방일放逸하지 말라’1)는 좌우명을 외우며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다. 저 유명한 세계적 고전인 『법구경』 의 21번째 게송이다. 
  법구경은 늘 내 책상머리에 놓여 있다. 이 경經은 부처님의 직계 제자들에 의해 집성된 빠알리Pāli 경전 중에서 그 성립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423개 게송으로 짜여 있다. 순수·소박한 글 속에 섬광보다 예리한 지혜를 담고 있어서 나의 애독서 중 으뜸이다. 
  눈을 감고 내 맘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참으로 대단히 재미있다. 마음이 바깥 대상에 집착할 때에는 반드시 흔들리고 어지럽다.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은 자신의 길들지 못한 습관에 따라 이리 뛰고 저리 뛴다. 마치 숲 속의 열매 찾는 원숭이가 이 나뭇가지 저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듯. 
  마음은 길들이기 어렵고 재빠르고, 어디든 좋아하는 곳에 내려앉는다. 동요하는 마음의 오고감을 알아차리면 마음 길들이기는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마음을 길들이려고 애쓰지 않으면 그 마음은 타고난 그대로 거친 채로 남아 있다. 만일 밭을 경작하지 않고 방치해 둔다면 땅은 메말라서 척박해질 뿐 아니라 잡초만 무성하듯. 마음 또한 갈지 않고 내버려둔다면 착한 결과를 얻을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릇된 망념妄念으로 펄떡거린다.
  방일하지 않고 ‘지금 여기’ 내 안에 일어나는 느낌과 생각을 알아차린다. 물위에 떠 있는 공과 같아야 한다. 물위에 떠 있는 공은 물에 빠지지 않고, 물위로 튀어 오르지도 않아 항상 물과 함께 있다. 알아차림을 놓치면 마음은 침체되거나 들떠 있음이다.
  흔들리고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이 마음의 본성임을 깨닫는다. 생각과 감정은 이처럼 배회한다. 마음은 원래 그런 것이며 또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안다. 
  취하고 버리는 그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순간 그것을 놓아 버린다. 오염된 생각과 느낌이 아직 남아 있긴 하겠지만 그런 마음씨는 이미 힘을 잃는다.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밭에는 잡초가 독이다. 인간에게는 갈망이 독이다.”2) 

  이것을 놓아 버리면 그때 색깔은 한갓 색깔이고 소리는 한갓 소리이고 향기는 한갓 향기이고 맛은 한갓 맛이고 감촉은 한갓 감촉이고 마음씨는 오로지 마음씨일 뿐 나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마음을 길들이는 좋은 방법은 ‘방일하지 않음’이다. 화살을 만드는 사람이 화살대를 곧게 하듯 목수가 나무를 다듬듯 지혜로운 이는 자기 마음을 길들인다. 길들여진 마음은 행복을 가져온다.  
  법구경의 가르침을 가슴 속에 새겨 둔 덕분에 곤란한 일을 맞으면 오히려 인생 공부하는 기분이 된다. 인간으로서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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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불교경전에서 자주 쓰이는 아빠마다appamāda의 우리말이 불방일이다. 이 말은 ‘게으르       지 않음’, ‘주의 깊음’, ‘열심히 진지하게 잊지 않고 끈질기게 잡고 있음’, ‘가볍게 넘기지       않음’, ‘주저함이 없이 알아차림’ 등의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다.
  2) 『법구경』의 359번째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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