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일기-태국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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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행일기-태국 탐방기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0.2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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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담

태국은 왕정정치이다. 아직 왕을 섬기고 왕후를 존경하며, 태자를 받드는 나라이다. 민주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의 왕을 존경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지금의 왕보다 이전의 부왕에 대한 존경과 신임도가 높다. 왕은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 잡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불교국가라서 그런지 횡단보도를 건너는 신호음이 목탁소리다. 태국은 상좌부 불교신자가 94%라고 했다. 
방콕시티 도서관에 갔다. 마치 고급 호텔의 로비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정책적으로 교육에 안배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가 되어 이색적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태국어가 해독이 안 되니 분명하지 않지만, 학생들의 유명한 학원인 듯하다. 승용차가 있는 집의 아이는 부모가 승용차를 몰고와 대기 중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모양이다. 등판에 커다란 번호를 붙인 오토바이맨이 학생들을 태우고 속속 도착한다. 또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도착한 오토바이를 타고 사라진다. 주변에 카페가 형성되어있고, 도시락을 싸주는 가게가 있으니, 제법 살만한 집안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 같다. 
‘그들의 하루는 어떨까’생각해 보았다. 뒷바라지를 받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분명 차이가 날 것이다. 
차에서 기다리던 아빠가 딸아이가 마실 메로나쉐이크를 사들고 차에 오른다. 그 아이는 그만큼의 가치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어떤 오토바이는 두 명의 여학생을 함께 태우고 사라진다. 우리나라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시락에 음료수까지 챙겨든 엄마가 카페에서 대기 중이다. 
반면 방콕의 카오산 거리에는 각 나라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그들은 최대한의 노출을 하고 거닐고 있다. 물론 한국 젊은이들도 많이 눈에 띈다. 배낭을 맨 어린 학생들도 울려 퍼지는 음악의 리듬에 따라 어깨를 들썩인다. 몇 해 전만 해도 보기 드문 모습이다. 아마도 글로벌 시대에 발 맞춰 율동적인 리듬과 현란한 춤사위가 젊은이들의 끼를 발산시키게 하는 듯하다. KOREA라는 나라는 몰라도 BTS라고 불리는 방탄소년단의 절도있는 춤동작에 열광하는 세대들이다. 
저녁산책길에 건물이 늘어선 도로로 나갔다. 으리으리한 왕궁과 사원,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그러나 도시의 양상은 큰 건물이 늘어선 반면 골목 사이사이에는 빈민가가 형성되어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수로 양 옆을 따라 우리네 60년대나 봄직한 판자촌이 이어진다. 
수로 중간역 동네의 톰슨하우스 박물관에서는 연꽃 그림 스카프 한 장에 4800바트(한화로 168,000원)라는 정가가 붙어있다. 
저녁이 되면 거리 구석구석에 노숙자들의 잠자리가 준비되고, 카오산로드는 또 다시 광란의 늪으로 빠져든다. 
태국에 온 지 3일째다. 새벽 일찍 비가 내린다. 맨 위층 숙소에서 들리는 비의 두드림이 리듬감이 있다. 우리네 도시와는 달리 각양각색의 집들이 모여 있다 보니 빗방울 소리에도 강약의 리듬감이 실리는 것 같다. 
시장에 나가 리어커에서 파는 죽을 사 먹었다. 엄청 묽은 죽은 마치 수자타가 부처님께 공양한 죽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심 중앙에 자리잡은 사원에 갔지만 왠지 격이 느껴진다. 신발을 신고 온전한 차림새의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 과연 호화스런 사원에 부처님이 계실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거리거리에 부처가 있다. 골목길에 누운 부처, 공양을 원하는 부처, 열심히 삯바느질을 하는 부처, 도움의 손길을 베푸는 부처들…….
마지막날. 태국의 역사가 숨쉬는 곳-아유타야에 갔다. 14세기 아유타야 2대 왕인 라마쑤언이 부처님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사원구조는 동서로 직사각형의 불당인 ‘위한’이 있고, 중간에 크메르 양식의 쁘랑이 세워져 있으며, 위한 봐우 쁘랑 사방에 불탑인 ‘제띠’가 늘어서 있다. 
현재는 미얀마의 공격으로 쁘랑과 위한, 제띠 등 상당 부분이 허물어진 상태이나 아유타야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으로 꼽히는 이유는 보리수 나무뿌리가 휘감고 있는 부처님의 두상 때문이다. 
나무 뿌리에 휘감긴 불상의 표정은 해탈의 순간처럼 평온해 보인다. 그리고 그곳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욕심을 버리고 내 자신 안의 불성을 찾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 두상은 아유타야의 상징이 되고 있다. 
아유타야 남서쪽 빠삭강 건너에 있는 왓 파난청은 아유타야 왕국이 들어서기 전에 세워졌다. 가로 14.25m 높이 19m인 불상 ‘프라짜오 파난청’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유타야가 망할 때 이 불상이 눈물을 흘렸다고 하다. 그 후로 영험하다 하여 어느 사원보다 찾는이가 많다. 
누군가 “외국에 나갔다 오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일본의 압제 이후 18년동안 독재정치 아래 세뇌교육을 받은 것 때문인지 무척이나 싫었던 내 나라였다. 그러나 그것은 땅덩어리가 두동강 나면서 시작된 이념의 문제였고, 그것을 이용한 정치인들의 탓이지 내 나라의 탓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내 조국, 강산도 아름답고, 국민성도 아름다운 나라! 한 민족의 갈라져 가슴 속 아픔을 품고 사는 사람들……. 누가 우리를 탓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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