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시나가르 열반당에서 가사공양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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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시나가르 열반당에서 가사공양을 올리다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1.0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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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고행 - 인도 불교 성지를 중심으로 ⑨/오영호 시인

오영호 시인과 순례객 일행은 부처님께서 제자 아난에게 자등명 법등명을 마지막 유훈을 남기시고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르 열반당을 참배했다. 4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에도 부처님께 금란가사 공양을 올리고 나무아미타불을 함께 독송하면서 부처님을 생각하는 순례객들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편집자주>

 

열반당 안에서 순례객 일행이 함께 예불을 올리고 있는 모습.

아침부터 부산을 떤다. 되도록 빨리 네팔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다. 오늘도 섭씨 40도를 넘는 날씨란다. 그래도 들어올 때보다 수월하게 인도로 들어왔다. 큰 나무가 보이면 우선 그 아래로 가고 싶다. 열반사(당) 앞은 잔디밭으로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고. 그리고 곳곳에 나무들이 아름답게 서 있다. 준비해 온 금란 가사를 펼쳐 든 보살들이 열반당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은 참으로 성스럽게 보인다. 열반당 안은 한증막이다. 옆으로 누워 있는 붓다의 모습은 길이가 6m는 됨직하다. 큰 적색사암을 깎아 조성했다고 한다. 이 열반상은 5세기경의 작품으로 보고 있다. 입혀 있는 가사를 걷어내고 준비해온 새로운 금란가사로 공양을 올렸다.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줄지어 앉아 법회를 시작했다. 혜전 스님 따라 경을 독송한다. 발원문을 읽고,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정근하며 부처님 주위를 돌았다. 보살 한 분은 더운 날씨에도 108배를 이미 마쳤다. 저고리 등 쪽이 젖어 있다.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신심이 돈독한 불자들이지만 그분은 참으로 대단하게 보였다. 60이 넘은 분인데도 말이다. 정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언제 다시 이곳 열반당에서 108배를 하겠는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에게 사라쌍수(娑羅雙樹) 아래 자리를 펴라고 하시고는 머리를 북쪽으로, 얼굴은 서쪽으로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고요히 누우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난다에게 오늘 밤 열반에 들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셨다. 그때 늙은 수행자 수바드라가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평소의 의문을 풀어야겠다고 허둥지둥 찾아 왔다. 아난다는 부처가 아프다는 이유로 그를 가로 막는다. 그러나 부처님은 가까이 불러 설법을 들려주고 수바드라는 그 자리에서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이제부터 나의 모든 제자들은 정법을 서로 전하고 이어 받으며, 여래의 법신이 상주하여 항상 사라지지 않게 하라.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는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부처님께서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하시기 전 아난에게 마지막 남긴 유훈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라고 할 수 있다. 

자귀의(自歸依) 법귀의(法歸依)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제행무상(諸行無常) 불방일정진(不放逸精進) 

즉 ‘자기 자신을 등불을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에 의지하여라. 모든 것은 덧없으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는 열반송(涅槃誦)인 것이다. 

혜초 스님도 붓다의 마지막 땅에 와서 “한 달 만에 쿠시나가르에 이르렀다. 이곳은 부처가 열반에 든 곳이다. 성은 황폐하여 아무도 살지 않는다. 부처가 열반에 든 곳에 탑을 세웠는데 한 선사가 그 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다. 해마다 8월 8일이 되면 많은 사부대중이 모여 크게 공양을 올린다. 그 때 공중에는 깃발이 휘날리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이를 보고 이 날에 불법을 믿으려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고 기록하고 있다. 
열반당엔 언제부터 왔는지는 모르지만 외국 스님 몇이 앉아 있다. 20루피 한 장씩 앞에 놓고 합장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참선에 들어 있어 그런가. 

순례객 일행이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 가사공양을 올리기 위해 열반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도에서 구걸하는 것을 박시시라 한다. 이 말엔 적선한다는 뜻도 있다. 팁이라는 말과도 통하는 말이다. 그래서 구걸하는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한 푼 받더라도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왜일까? 돈을 가진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한 가난한 자에게 베풀면 베푼 사람이 복을 짓는 것이 아니냐고 되묻고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베풀어야 행복해질 수 있는 도리를 깨우쳐 준다. 부처님도 무주상 보시를 말씀하셨지 않은가. 
열반당에서 1.5km 정도 떨어진 곳에 부처님 다비장(람바다 스트바)이 있다. 도착하니 문이 닫혀 있다. 담당자를 아무리 찾아도 연락이 안 되었다. 할 수 없이 옆길로 내려가 울담 넘어 스트바를 보았다.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못 본다는 것은 실망이 컸다. 가이드는 당국에 고발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공무원을 혼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버스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여기엔 제법 큰 빤치아나나무 빨간 꽃이 우리를 보며 웃고 있다. 꽃을 보니 갑자기 내 마음도 밝아진다. 미움도 꽃의 아름다움에 누그러지고 있는 것일까. 그래, 있을 수도 있는 일이지. 어쩌면 긍정의 힘이 마음을 달래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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