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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찰 백양사함덕포교소 외꼴절4.3 70주년 맞아 제주불교 4.3흔적 바로 세우기<15>

제주4.3 당시 불교의 수난은 제주 사회 현안에 깊숙이 참여했기 때문에 그 피해도 컸다. 승려들의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관음사 등 사찰들이 제주4.3의 격전지로 수난을 당했다. 
이에 본지는 제주4.3으로 피해를 입은 40여 사찰은 물론 16명의 순교한 스님들의 업적을 재조사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4.3 당시 불교의 역할과 수난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4.3의 정의로운 해결에 첫 디딤돌을 놓고자 한다. <편집자주>

 

외꼴절 불상의 일부가 지금은 덕림사에 모셔져 있다.

구좌읍 함덕리에 있던 사찰이다. 제주4.3사건으로 폐사된 이후 복구하지 못하고 잃어버린 사찰이다. 외꼴절은 700평가량의 규모로 40~50평 초가 법당과 요사채, 정자 등이 있는 사찰이었다. 외꼴절은 1935년 7월 백양사 함덕포교소로 설치신고를 하였다. 함덕에서 대흘로 가는 외곽인 외꼴 지경에 있었다고 하여 외꼴절이라 얘기한다. 백양사 함덕포교소는 1930년대 제주불교 활동에 적극 참여하였던 사찰이다. 1936년 법화산림 대작불사를 행하기도 하였다.
외꼴절의 주지 신홍연 스님은 지역 경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였던 분으로 증언된다. 1970년대까지도 함덕 배추가 제주도에서 유명한 지역 농산물이었던 그 근원에 신홍연 스님의 활동이 있다. 신홍연 스님은 배추와 무, 시금치 등의 새로운 농작물의 씨앗을 들여오고 밭을 세 내어 신도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농사법을 함덕리 주민들에게 보급하였다. 함덕 배추는 신홍연 스님의 활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948년 5․10총선거에서 제주도는 선거를 거부하여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효 선거구를 만들었다. 당시에 함덕리 마을 주민들도 대흘리 지경으로 피신하여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거부했다. 선거가 실시되던 무렵인 5월 13일 무장대는 함덕지서를 습격하여 함덕지서를 불태웠다. 5월 중순부터 군인들이 제주로 대거 파견되어 왔고 육지부 경찰들도 대거 제주로 들어왔다. 6월 제주주둔 미군 사령관인 브라운 대령은 “제주도의 서쪽에서 동쪽까지 모조리 휩쓸어 버리는 작전을 진행시키고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고, 8월에는 제주도비상경비사령부가 ‘최대의 토벌전이 있을 것’이라는 경고내용이 포함된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10월 17일 송요찬 9연대장은 제주 해안에서 5㎞이상 지역에 통행금지를 명령하면서 이를 어길시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총살에 처하겠다는 내용의 포고문 발표하였다. 10월 말 무장대는 제주읍 삼양지서와 조천면 관내 조천지서‧함덕지서를 일제히 공격하였고 10월24일 무장대가 이덕구 명의로 정부에 선전포고하고 토벌대에게 호소문 발표하였다.
함덕국민학교에는 9연대 군인들이 주둔하였다. 1948년 11월 1일 토벌대는 함덕리 주민들을 모아놓고 무장대를 돕는 사람을 색출한다며 총살하였고, 무장대가 습격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군인들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무차별 폭행과 총질을 해대고 마을 사람들은 이를 피해 산으로 도피하였고 함덕리 청년 대부분이 입산했다고 할 정도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외꼴절은 1948년 11월 초 소개하였다. 스님은 무장대에게 밥을 해 먹이기도 하였기 때문에 무장대는 외꼴절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던 중 11월 중순경 법당 내 부처님 뒤에 은신해 있던 무장대 수십 명이 토벌대에 발각되었다. 토벌대는 곧바로 신홍연 스님을 옆 밭으로 끌고가 댕유지나무에 묶고 마을 민보단원들에게 총을 쥐어 주고 사살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나 민보단원들이 스님을 쏘지 못하고 모두 다른 곳을 향하여 사격했다. 이에 토벌대가 다시 죽창에 칼을 꽂아서 쥐어주며 스님을 찌를 것을 강요하였고, 민보단원들이 울부짖으며 스님을 죽창으로 찔렀다고 한다. 토벌대가 떠나고 나서도 8~9시간 가까이 스님은 숨을 쉬고 있었으며, 가부좌를 한 채 염불하면서 돌아가셨다. 무장대는 스님의 시신을 고구마 줄기로 감아 숨겨놓았고 그 위치를 편지에 적어 가족에게 전해주었다. 상좌 김두전 스님이 제발 몸을 펴십사고 기도하여 가부좌로 입적하신 스님의 몸을 펴 매장하였다. 외꼴절은 11월 20일경 토벌대가 불 살랐다. 외꼴절과 함께 인근 대흘리 마을도 함께 토벌대가 방화하였다. 


 백양사함덕포교소 외꼴절의 불기와 불경들은 원당사를 비롯한 다른 사찰과 이곳 저곳으로 옮겨 놓았다. 이후에 외꼴절의 뜻을 잇고자 하여 유상섭 스님 등이 1956년부터 노력하며 해운 스님이 1977년 덕림사를 창건하였다. 외꼴절의 불상 일부가 함덕리 덕림사에 모셔져 있었다. 지금은 외꼴절과 함께 불상도 불경도 모두 흩어져버려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특별취재팀  jejubulgy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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