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 좋아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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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자 좋아 길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1.2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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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진의 ‘길 위에서’ (7)

들어는 보셨는가? 걷기만 해도 팔자가 좋아지는 길. “그것이 정말이냐?”고 나에게 물어보신다면 “정말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해 드릴 것이다. 제주도 동쪽 마을 덕천리라는 곳에 ‘팔자 좋아 길’이 있다. 아무튼 나는 ‘팔자 좋아’라는 말에 혹해서 그 길을 걸었다. 11월의 싸한 바람 때문에 코끝이 발긋발긋해진 나뭇잎들을 벗 삼아 한 시간 반쯤 걷다 보면 틀림없이 팔자가 바뀌어 있을 것이다. ^,^
‘팔자 좋아 길’ 입구에 서 있는 표지판에 이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덕천의 천기를 모아주는 웃못에서 시작해 북오름, 주체오름, 사근이오름을 돌아오는 길을 걸으면 아무리 고민이 많아도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팔자 좋아지는 길!


 큰길에서 조금 더 샛길로 들어갔을 뿐인데 호젓하기 그지없는 오소록한 들판과 숲이 펼쳐진다. 초가을 막 피어났을 때는 수줍은 복숭아 빛깔이었는데 이제는 제법 성숙한 태를 내는 은빛 억새군단의 호위를 받으며 걸었다. 둘레 길을 살짝 벗어났을 때 만난 막은 창에 으리으리하게 자리 잡은 저택을 살짝 보니 울창한 울을 만든 나무들 사이로 드라마 같은 정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마당 한가운데 수영장도 있다. 그저 슬쩍 엿보았을 뿐인데 명품 개 한 마리가 컹컹 짓는다. 내 가 뭘 어쨌다고…
 혹시 저 저택 주인공 팔자를 부러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나도 모르는 내 욕망을 저 개가 보았는가 싶어 서둘러 등을 보이고 제 길을 찾아들었다. 마을길을 지나고 오름도 지나고 이색카페들을 풍경처럼 스쳐지나 북오름쯤 오니 살짝 피곤하고 기분 좋을 만큼 몸이 따뜻해졌다. 그나저나 한 바퀴 다 돌았는데 내 팔자는 어찌 되었을까?
 팔자라는 낱말을 가진 길을 걸어서 그런지 이런 저런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하였다. ‘아,  맞다, 그때 큰일 날 뻔 했지. 그만 하길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때 그 공부 덕분에 지금 이렇게 되었구나. 정말 고맙네.’ ‘그래, 그때 참 좋았어. 즐거웠지.’ 돌아보니 아슬아슬한 순간들도 많았는데 무사히 잘 넘어와서 지금 이 자리에 나는 서 있다. 
 모두가 부처님의 가피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는 큰 가피가 없으니 남들의 시기질투를 받을 일 없어 감사하고, 늘 바라는 바대로 명훈가피 하시니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기쁨을 품고 산다.
 일요일 오전 둘레길을 걷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 일을 팔자 좋다고 한다면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셈해본 바로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를 정신없이 하고 사는 삶이라 그렇지 막상 정산을 해보면 누구나 0이 나온다는 것이다. 다만 조삼모사(朝三暮四), 아침에 3개주고 저녁에 4개 준다고 하면 화가 나고, 아침에 4개 주고 저녁에 3개 주면 좋아서 날뛰는 마음 원숭이가 조화를 부릴 뿐!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길을 걸을 시간과 여유가 있고, 건강이 있다. 그밖에 무엇을 더 구하랴. ‘팔자 좋아 길’을 내 발로 걸어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지금 이 순간 내 팔자는 최고다!  그리고 지금 나처럼 ‘팔자 좋아 길’을 걷고 있다면 당신 팔자도 역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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