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에세이 - 봉사자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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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에세이 - 봉사자의 길
  • 제주불교신문
  • 승인 2018.11.2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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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은(제주청교련 사무국장)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오늘도 봉사를 마치고 봉사일지를 쓰러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셋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창 하더니 “다음 주에 또 오께” 남자분이 어르신에게 약속을 한다. 할머니는 요양사의 도움을 받으며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분들이 매우 궁금해서 남자분에게 다가가 ‘어떤 사이길래 구성지게 옛날 노래를 부르냐고 물었더니 아니 부부사이라고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서 자기 남편과 지식들을 몰라본다고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요양원에서 먹고 자고 숨만 쉬는 형편이었다. 젊었을 때는 오직 가족과 사회를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해 왔던 어르신들인데 참 콧등이 시큰거린다. 나는 41년 동안 길다면 긴 세월을 공직에서 은퇴하고 이제 새 삶을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이 운영하는 상록자원봉사단에서 연락이 왔다. 남광초등학교에서 보행안전지킴이 봉사를 할 수 있겠냐는 전갈이었다. 1~2학년 꼬멩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건널목을 안전하게 보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쾌히 승낙을 하고 공단에 봉사단 사전교육 받으러 갔더니 교육청에서 같이 근무했던 동료를 만났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기가 봉사하고 있는 요양원인 태고원엘 오겠냐는 것이다. 안 그래도 퇴직하면 봉사를 하려고 했는데 참 잘 되었다고 이튿날부터 태고원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봉사의 길에 발을 들여 놓았다.
요양원인 태고원은 불교 태고종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이었다. 대부분 80~90대 어르신들이 하루하루 남은여생을 먹고 자고 하는 곳이었다. 마당에는 넓은 텃밭이 있었다. 처음 간 날 깻잎을 뜯으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밭에서 일했던 기억이 스쳐간다. 부드러운 잎만 한 잎 두 잎 따서 하얀 비닐에 담았다. 9월초이지만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려 이마엔 벌써 땀방울이 맺혀 땅에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깻잎을 따면 장아찌를 만들어 어르신들에게 반찬으로 식탁에 오를 것이란 생각으로 즐겁기만 했다. 이렇게 태고원에서 나의 봉사활동은 시작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주방에서 하수구 청소를 하고, 화창한 날은 텃밭에서 무를 뽑아다가 씻어 껍질을 벗기기도 한다. 청경채 아욱 고추 열무 텃밭에서 나는 채소들을 정성껏 다듬어서 어르신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를 하는 것이다. 맛나는 점심을 먹고 이제는 남광초등학교 어린이 보행 안전지킴이 활동이 이어지고 오후엔 특수학교인 영지학교에서 하굣길 도우미와 시각장애우와의 만보 걷기에도 동참하고 있다. 한 달에 두번 화목봉사회에서 독거노인 급식봉사, 일주일에 한 번 공항친절봉사단에서 제주도를 찾는 여행객들이 택시 타는 일도 도와주는 봉사는 내 자신을 힐링하게 해 준다.
나도 누구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봉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짠 해 온다. 이제 겨우 4년이 지나가지만 앞으로도 나의 봉사의 길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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