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서 아픈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시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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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서 아픈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시편들”
  • 김은희 기자
  • 승인 2018.12.05 14:3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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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택훈 시인, 시집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펴내
시인이 경영하는 시옷서점에서 만난 현택훈 시인

 

……
아주 멀리 가봤자 바닷가
까맣게 잊어봤자 구상나무가 기억한다
그리워하면, 만날 수 있다면 그리워하지 않는다고 나무 전봇대에게 귀뜸해요
……
염소 똥처럼 동글동글해져요
여름날 돌멩이처럼 따뜻해져요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귀뚜라미가 울면 복숭아가 익어요
넘기지 않은 달력처럼 어두워져요

-현택훈 시 “우정출연”의 일부분

 

제주불자들에게 좋은 시와 해설을 해줬던 친절하고 낯익은 시인, 현택훈 시인<사진>이 최근 네 번째 시집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를 펴냈다. 
이번 시집에서 현택훈 시인은 지금여기 제주에 사는 우리들 삶의 일상에서 만나는 많은 것들을 풀어놓았다. 
시 “성환”에서는 아직은 너무 젊은 친구의 죽음을 앞에 두고 그를 회상하는 부분이,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느낌을 자아내면서 더욱 슬퍼지게 한다. 
“우정출연”에서는 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처럼 살아온 우리의 모습을 슬쩍 비춰주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오는 좌절이나 쓸쓸함이 우리를 넘어뜨리지는 못한다.
“근교에서”는 중앙을 관통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존재의 모습. 하지만 때로는 근교가 우아하게 근사하게 여겨질 때가 있는 법. 그러한 근교의 삶이 갖는 의미를 새롭게 부각시켜준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그러한 근교의 쓸쓸함을 오히려 친근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4‧3의 기억이 강하게 각인된 듯한 잃어버린 마을 “곤을동”은 마을을 흐르던 물과 돌담과 집터의 을씨년스러움과 함께 아픔은 치유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실습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이민호 군 가슴 아픈 사건을 떠올리는 “겨울독서실”은 춥고 어두운 현실의 잔혹함을 드러내주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뇌하게 한다. 
그리고 “추억의 팝송” 같은 시에서는 선사시대까지 삶의 뿌리를 뻗어 가면 만날 수 있는 기억들. 그때 역시도 사람들은 지금처럼 꿈을 꾸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해준다. 
현택훈 시인의 발길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먼 선사시대부터 4‧3의 아수라를 지나 지금여기서 서성이고 있을 듯한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서귀포 논술학원 앞 버스정류장에서든 아라동 시옷서점에서든 낯익은 그의 모습과 마주칠 듯하다. 

 삼동을 먹고 우리는 입 속이 까마귀처럼 까매져서 까악까악 웃고 뱀딸기를 먹고 우리는 눈초리를 위로 올리고서 뱀처럼 혀를 낼름거리고 놈삐 서리해서 풀밭에다 슥슥 닦아 먹고 까마귀밥은 까마귀가 먹고 따뜻한 밥은 할아버지가 먼저 잡수시고 생일이면 국수를 먹고 잔칫날엔 성게국 멩질엔 빙떡과 지름떡을 먹고 푸른 바다를 가른 옥돔을 먹고 한라산 바람을 마시고 어른들은 산을 통째로 마시고 죽은 큰고모 같은 사람이 밥 한 사발 떠주는,
-현택훈  시“영주식당”전문

삼동과 뱀딸기와 놈삐와 국수, 그리고 성게국과 빙떡, 지름떡은 모두 제주사람들이 말하는 영혼의 음식 같은  것들이 이처럼 현택훈 시인은 제주사람에게 깊이 배인 정서를 자연스럽게 그대로 파헤친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시대를 대표해서 그가 모든 고민을 짊어지려 하는 것은 아닌지. 그의 네 번째 시집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와 함께 고통을 나눠지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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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택훈 2018-12-10 17:44:02
감사합니다. 자세히 써 주셨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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